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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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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대사이야기/고대사 잡설

어제 고대사학회 세미나에 다녀왔습니다..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4. 4. 13. 15:24

어제 고대사학회 세미나에 다녀왔습니다.

마침 춘천에서 열린 것이라 더더욱 가봐야했죠.

고고학쪽이 아니면 춘천에서 고대사가지고 행사 치룰 일이 없는지라..

(강원도는 고대사 연구인력이 매우 적습니다)

가서 발표자 분의 박사논문 하나 얻어오고

다른 한 분은 왜 안주냐고 졸랐더니(뭐 아는 분입니다) 

우편으로 보냈는데 안받았남? 하시더군요.(그건 체크 못했다!!!)

이래저래 재미도 있었고 이래저래 수확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공부를 해야하나에 대해 생각할 것이 많았습니다.


잠시 하나 재미난 일이 벌어졌습니다.

원래 이런 행사에 전업적인 연구자만 오는 것은 아닙니다.

약간 재야스런 분도 종종 오시고(나름, 단골도 있어요)

최근에 들어서는 일반인의 참여도 늘어납니다.

사람이 별로 없겠거니 하며 늑장부리다

가보니 발표요지문도 못받은 적도 종종 생겼고요.

학술회장이 교양강의를 많이하는 곳과 겹치면

원래 다니시던 분들이 가득 채우십니다.


한참 백제사 논문발표 후 토론 시간에 청중 한 분께서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사학과를 다니시고 다른 일에 종사하고 있다는 소개와 함께

세가지를 던지셨는데 아래와 같아요.

1. 백제 무령왕의 이름 사마와 일본말 사마(ex- 욘사마)와의 관계

2. 왜 백제에서 고위 귀족들이 일본에 많이 건너갓는가

3. 한일 월드컵 때 현 일본 천황이 자기 피에 백제의 것이 들어있다는 말을 했는데 사실이냐..


뭐, 1번은 좀 난감했죠. 

무령왕의 이름 사마는  섬에서 태어났다고 붙여진 이름이거든요.

섬=시마인데 한자표기하다보니 사마가 된거죠.

욘사마의 사마와는 다른 것입니다. -_-;;;

2번은 토론자 선생님께서 매우 간결하고 정확하게 말씀하셨는데

외교적 관계에서 일본이 백제를 필요로 하는 것보다

백제가 고구려와의 대결에서 일본의 역할을 더 절실하게 필요로 했다.

이렇게 푸시는데 여기에는 별 이견이 없었습니다.

3번은 정말 애매하게 넘어갔는데

일본의 역대 천황들 중에서 대제라는 호칭을 받는 건

헤이안 시대의 전성기를 연 환무천황입니다.

원래 정권에서 밀려난 방계(천지천황계)였는데

아버지가 천황이 되면서 그 뒤를 이었지요.

이 사람의 어머니가 백제 왕족의 후예인 고야신립입니다.

일설에는 무령왕의 후예라고 하지요.

이때 이미 황족들은 후지와라씨 등 고위 귀족들과 연을 이었지만

환무천황의 가계는 밀려나있었기에 백제왕족이 외가가 되는 일이 일어나지요.

현 천황은 황실 내에서도 온건파라 한일관계의 정상화를 위해

저런 발언을 하며 분위기를 더 우호족으로 만들려고 한 것이죠.

(뭐, 전가카의 외교적 실수중 최악이 천황 건드린 거였죠. 

더 최악은 미항모 서해 입성..)


보통 청중에서 질문이 나오면 좀 환단고기 삘이나는 것인데

어제 것은 좀 신선하기까지 하네요. 특히 1번.


다만 발표들에서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일본서기의 이용에 관한 문제와 연구사정리 문제인데

요즘들어 일본서기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하나의 추세입니다.

너무 소극적이고 방어적으로 대하던 어르신들 시대보다는 

한 발 더 앞으로 나간 건 맞습니다.

그런데 일본서기는 역사학 서술의 원칙같은 건 고민하지도 않고 쓴 한계가 있어

때로는 그 기년조차도 틀려먹은 부분이 있거든요.

(이른바 2주갑 인상론같은 이야기도 나오죠.. 특정 시기는 120년 올려 서술한 것이라..)

서술에서도 기묘한 편차들이 존재하고요.

물론 중국 정사나 삼국사기도 세밀하게 따져봐야 합니다만

일본서기는 그 서너배의 신경이 요구되거든요.

그런데 삼국사기 갖다 쓰듯 가져다 쓰면 곤란합니다.

할배들도 너무 방어적으로 임해서 그렇지 

매우 신중하게 접근한 건 다 이유가 있어서 그래요.

이거랑 연결되는 것이 연구사정리와 다른 시대는 보지 못하는 시야각.

그냥 자기 연구주제에 대한 것만 보는 것에서 비롯되고

과거에 어떤 연구가 있었는가를 기계적으로 검토한 한계도 나옵니다.

그냥 각 연구성과들 늘어놓고 너는 여기, 너는 저기..

이런 식으로 편가르듯 분류하기만 했다는 것.

왜 이 설이 어떤 입장이나 환경, 배경에서 나왔는지도 염두에 두어야 하는데

지나치게 편의주의적인 정리만 있었다는 것.

백제 무령왕대를 공부한다고 해서 무령왕에 대한 것만 봐서는 안됩니다.

사실 저 발표에서 나온 질문 모두 무령왕과 관련이 있죠.

왜 무령왕의 이름이 사마인가, 무령왕과 성왕 시대에 백제에서 많이 건너가기도 했고

또 일본에서 백제로 또 옵니다.

개중에는 관리가 된 이도 있고, 불교를 배우러 온 이들도 있지요.

고야신립은 무령왕의 후예라고 하지요.

그런데 정말 자기의 시야를 매우 좁혀버리니 

그 담장 너머의 것은 하나도 안보이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어요.

좀 다양하게 봐야하는 면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더군요.

(본격, 언니옵하들 디스하는 19세의 만용 포스팅!)


하지만 나름 득템도 했고 배부르게 얻어먹기도 했고

모처럼 집 앞에서 하는 행사라 편하기도 했고..

나름 재미도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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