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먹고 살기 힘든 세상 본문

한국고대사이야기/고대사 잡설

먹고 살기 힘든 세상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22. 8. 21. 12:43
보내주신 편지를 받자오니, 삼가 과분하옵니다. 이곳에 있는 이 몸은 빈궁하여 하나도 가진 게 없어 벼슬도 얻지 못하고 있나이다. 좋고 나쁨에 대해서 화는 내지 말아 주옵소서. 음덕을 입은 후 영원히 잊지 않겠나이다.

도판은 심상육・김영문, '부여 구아리 319유적 출토 편지목간의 이해', "목간과 문자" 15, 2015, 50쪽.


부여 구아리 319유적에서 2010년 발견된 목간 중에 나온 소위 442번 목간의 해석문이다, 나중에 다른 책에서 손을 본 문장이 실렸는데, 갠적으론 처음 나온 해석이 더 역사적인 상황에 더 부합한다고 본다.

고대국가, 아니 전근대 동아시아 왕조국가의 특징 중 하나가 매우 극단적으로 작은 정부라는 것이다. 시민의 상당수가 공무원 및 그 가족이라는 북유럽 국가 얘기를 당시 사람들이 들었으면 까무라쳤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통일 후 신라의 중앙정부 관리 정원이 3,600명이다.(여기에는 군 장교단도 포함) 삼국사기 직관지의 기록에 따르면 그 정도다. 그런데 실제로는 한 명이 여러 관직을 겸임했으므로 일시에 모든 관리를 모으면 3천명도 안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교육부 장관 겸 외무부 국장, 환경부 정책연구원, 서울특별시 도시계회국장, 경기도 대외협력관, 대전광역시 교육감, 6사단 참모장 아무개입니다~라는 식이다.

어느 책에서 보니 만력제 무렵 북경의 관리 수가 5만이라 하였다. 중국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매우 적은 수로 행정기구가 돌아간 것이다. 얼핏 보면 명이나 신라 같지만 시대가 위로 올라갈 수록 근무여건이 빡세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명이 더 관/밀/레를 한 것이다.

위진 이후의 중국이나 고려시대 기록에서 관리로 임용되는 것을 기가起家라고 표현한다. 집안을 일으켜 세울만한 일인 것이다. 요즘도 공무원이나 교사 임용의 관문을 통과하고도 실제로 일을 할 때까지 대기하는 것 이상으로 실직을 받기까지 시간은 한참 걸렸다. 고려시대 기록에서 7년이나 걸린 걸 봤던가 안봤던가.(이건 기억이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검교'니 '동정'이니 실제 일을 하지 않는 훈관이 나오는 이유가 된다. 킹치만 정원 초과로 뽑아버렸으니 뭐라도 주지 않으면 오니짱의 관심을 끌기 위해 불만 세력이 되어버린다고! 오이오이~! 와따시노 쵸 카와이 이모또여~~~!!

그렇게 기다림 끝에 얻은 관직도 마냥 붙어주지 않고, 운좋게 줄이라도 잘 타면 돌고도는 인사타임에서 다른 자리나 승진을 할 수도 있지만 잘못하면 취임식 겸 퇴임식을 치루고 집에서 쭈구려 앉아 개미 행렬이나 관찰하기가 되어버리는 걸. 줄도 돈도 없는 저 목간의 필자는 살 기위해 애원을 하는 거였고.

참,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라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바름 없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