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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앞서 삼국의 문화적 접근도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백제가 바다를 끼고 있어 좀 어려워 보일 수도 있지만황해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인적교류를 이어온 통로이기도 하지요.(관심이 있으신 분은 권덕영 선생님의 "신라의 바다, 황해"를 읽어주시어요)몇몇 기록을 들춰보면 재미난 것도 있습니다.오늘은 그 중에서 가장 앞서 나오는 인물을 다루어 보기로 하죠.낙랑군에 살았던 왕경이라는 중국인 이야깁니다. 王景字仲通, 樂浪䛁邯人也.[1] 八世祖仲, 本琅邪不其人. 好道術, 明天文. 諸呂作亂, 齊哀王襄謀發兵, 而數問於仲. 及濟北王興居反, 欲委兵師仲,[2] 仲懼禍及, 乃浮海東奔樂浪山中, 因而家焉. 父閎, 爲郡三老. 更始敗, 土人王調殺郡守劉憲, 自稱大將軍ㆍ樂浪太守. 建武六年, 光武遣太守王遵將兵擊之. 至遼東, 閎與郡決曹史楊邑等共殺調迎..
원문延優遣弟罽須 將兵禦之 漢兵大敗 罽須自爲先鋒追北 發歧告罽須曰 “汝今忍害老兄乎” 罽須不能無情於兄弟 不敢害之 曰 “延優不以國讓 雖非義也 爾以一時之憤 欲滅宗國 是何意耶 身沒之後 何面目以見先人乎” 發歧聞之 不勝慙悔 奔至裴川 自刎死 罽須哀哭 收其屍 草葬訖而還 해석연우는 아우 계수를 보내어 병사들을 이끌고 (발기의 군대를) 막게 하였다. 계수는 스스로 선봉이 되어 패한 자들을 쫓았다. 발기가 계수를 보고 말하기를 “너는 지금 늙은 형을 해하려 하느냐”고 하자 계수가 형제에게 무정할 수 없어 감히 해치지 못하고 말했다. “연우는 나라를 양보함이 없으니 비록 의롭지는 못하다. 그러나 당신은 한 때의 분노로 조국을 멸하고자 하니 이는 어쩌자는 것이냐. 육신이 죽은 후에 어떤 얼굴로 조상들을 대할 것이냐?” 발기가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