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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Last Exit To Brooklyn or 대학원.. 본문

역사이야기/역사잡설

Last Exit To Brooklyn or 대학원..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3. 1. 16. 23:12

아까 올린 글에 즈라더님이 글을 남겨주셨다.

지금 현재 뭔가 모색중이시라 하나의 길일 수도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물론 거의 전적으로 그 말에 동의한다.


한국사회가 너무 하나의 선을 그어놓고 모두들 그 길로 가라고 난리치니

다들 우루루 몰려가는 것이라

정말 제2, 제3의 길, 좀 더 진득하게 관조하는 선택을 도외시한다.

그렇다고 모두 서울대 나와 판검사나 의사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또 누군가 단도직입 단도 하나를 들고 돌입을 한다면

또 다른 누군가는 설렁설렁 우회로의 맛을 느끼며 서서히 갈 것이다.

진화도 하나의 길이 정답은 아니듯,

인생의 갈림길에서의 선택은 하나가 아니다.

그것도 나름의 자산이라는 생각엔 동의한다.


하지만 인문학, 특히나 문사철쪽에서는 그게 단순 경험이 아닐 수 있다.

그 점도 따로 이야기 해야할 것 같다.

그 전에 먼저 개인적인 이야기 하나.


중환자실에 실려갔다가(사실은 끌려서) 일반병실로 나왔을 때,

19세인데도 많은 생각을 했었다.

중환자실에서는 밤새 오늘 내일하는 분들의 숨소리를 들어야 했고,

일반병실에서 옆에 누워 계셨던 분은 나가서 다시 돌아오면 못나간다고 했다.

타고난 인간성이 확바뀔리는 없겠지만

그때 몇몇은 내려놔야 했다.

가질 수 없는 것, 바랄 수 없는 것을 이뤄내는 것도 좋겠지만

인간의 수명이 의외로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년 쯤 살 수 있다면 모르겠다만 

삶과 죽음이 예 있으매 나는 가나단 말도 못다 닛고 가나닛고..로 시작되는

제망매가의 첫대목이 정말 와닿았달까?


처음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쓰던 글들은 한참 후에야 내놓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뭐는 15년 후, 뭐는 20년 후, 뭐는 죽은 다음.. .

사소한 생활은 그야말로 무규칙 2종격투기지만 10년단위 계획은 정확한 편인데

느긋하게 보내다가 어느날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더라.

원래 가진 글쓰기 패턴까지 버려가며 여기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은 저문다..란 오자서의 말도 이해되기 시작했다.

대학원도 하나의 인생경험일 수 있지만

인간의 수명이 아주 길지 않고 수명에 비례해 정년은 줄거나 그대로인 현실을 봐도

그 헤메는 시간이 끝나면 곧바로 노년기를 바라본다는 것은

어쩌면 가족들까지도 힘들게 하는 일인지 모른다.

가끔 관악산에 목을 매다는 서울대 박사들이 이유 없이 줄을 거는 것도 아니다.

어린 나이인데도 며칠 누워있다보니 어른들의 이야기들이 이해되긴 하더라.

(누구처럼 마지막 잎새놀이나 하는 것이 미소녀 본연의 임무이거늘!!!!!!!!!!!!!!)


대학원에 가보는 것, 공부하는 자에겐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안거치고 독학으로 할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도로의 도움을 받는 것이랑, 산악도 하나로 산을 넘는 것의 차이랄까?

누군가의 사고의 매몰될 수도 있지만 

반면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좌표점은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혼자 공부? 그게 얼마나 힘든 건지 해봐야 알지.. .

앞 글의 기조를 이어가는 선에서 바라보자면

대학원 가는 길엔 출구가 없다.

정말 성공해서 어디 한자리 얻던가, 아님 고급 룸펜이 되던가..

좀 심각하게 말하면 그렇다.


IMF 이후 대학원생이 급격하게 늘었다.

마침 갈 곳도 없었고(물론 생명보험 영업직은 많았다지 아마...)

점점 좁아지는 문 앞에서 뭔가 하나 더 장착해야 

이 전장을 헤쳐나갈 것 같은 절박함도 있던 거겠지.

그래서 면바지나 등산복에 흙묻은 등산화가 즐비한 게 고고학 학술대회의 풍경인데

98년도 역사학대회의 고고학 분과 발표회장에 화장품 냄새 풍기는 아가씨들이 즐비해

늦게 들어간 사람들은 거기가 미술사 분과인줄 착각했다는 전설도 전해지는 것이고

(인문학의 건축학과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보단 덜 무섭다..만 남초파트란 점은 똑같다.

한참 위로 올라가면 고고학을 이해하는 여성 자체가 박제대상일 정도로 희귀했다)

그 이후 졸업을 유예하거나 대학원에 가는 인원이 늘어났다.

90년대 교육부의 지침은 이미 늘어난 대학원을 줄이자였는데

시장(?)이 그걸 막고 더 확장시켜버렸다.


그런데 그들 중 원래 굶기로 한 사람들 외에 인원들이 착각한 것이

(앞에서 말했듯, 금새 적응했거나 뒤늦게 학문에 눈을 뜬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는 말이 생각날만큼 열정적이었다. ㄷㄷㄷ)

대학원 석사 정도면 하나의 스펙이 되지 않을까란 것이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당신 생각이고 현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뭐 전공에 따라 틀릴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 역사학으로 좁혀보면 

오히려 대학원 학위가 개개인이 도달할 수 있는 선택지를 너무 좁혀버렸다.


아예 전공을 살린 전문적인 자리라면 모를까

사장이든 동료직원이던 당신의 석박사 학위를 그다지 반기지 않을 것을

어느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래도 대학원의 시간과 사회의 시간은 다르게 간다.

(요 말을 이해하면 당신은 머쨍이~)

그 시간 동안 축적된 것이 업무에 도움이 된다는 보장이 없고

(몇몇 특수 파트를 들어 반론은 하지 말자. 특수성의 바다에 빠뜨려버리겠다)

또 당신의 동갑내기들, 또는 약간 어린 친구들은 이미 온 몸으로 업무를 익혔다.

당신이 눈치를 주지 않더라도, 아니 뽑아만 주셔도 성은이 망극하여이다..라고 하더래도

고용주는 당신의 월급을 어디에 맞춰줘야할지 부터 난감해진다.

이놈의 학번, 빠른 생년까지 따져대는 한국사회에서

신입사원과 어떻게 족보정리를 해야할까도 고민이 될 수가 있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똑같이 일은 몰라도 대개의 경우

어린 것이 부리기도 편하고 적응도도 빠르다.

아버지 친구 중에 사장님이 계시지 않는 이상

아니면 호빠나 술집에서 사장님, 혹은 부인, 또는 남편분을 꼬시지 않는다면

대개의 경우 당신의 대학원 학위는 더 빠른 속도와 강한 화력을 보장해줄 

추가팩이 아니라 오히려 당신의 추진력 자체를 떨어뜨리는 데드웨이트가 된다.


물론 요즘 인문학을 다루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작고 할 일이 많은 기업들도 많지만 대개의 경우 장애가 많다는 걸 기억하자.

어느 고용주든 그 책상 위에 대학원 학위 실려있는 이력서는 꼭 나오더라.

그러나 그 언니 옵하들은 거기에 혹하지 않는다.

차라리 강남에서 양산품 개조시술을 받는 게 더 나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요건 장담 못한다. 캬캬캬)


정말 죽을 각오하고 고난을 돌파하던가

아예 아싸리 다른, 가지 않은 길을 찾아 떠나던가 해야지.

그냥 직장 안잡히니까, 혹시 스펙이 되지 않을까란 가벼운 생각으로 들어섰다가

나중에 어정쩡한 자리에서 헤메지 말란 말이다.

사실 이런 문제를 이야기를 주로 했지만

더 큰 문제는 들어가서겠지만.. 이미 각오한 사람이라면 알아서 이겨내겠지.


이걸 대학원 아예 가지 마라로 읽었으면 골룸.

그냥 국어공부부터 다시 하길 권한다.


말꼬리 ------------------------------------

아마 내일 글은 징기스칸(덩달아 티무르) 졸라까는 글이 올라가지 싶다.

물론 왜 그 개객기들이 그딴 짓을 했는지 배경은 설명하겠지만..

재미없는 글 하루에 두 편쓰는 어린 것도 참 한가한 인생이다. 훌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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