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삼국유사 새로운 판본 발견.. 본문
생각해보니 지난 주에 두가지 새로운 소식이 나왔는데
19세 청순가련 병약미소녀의 취향에 따라 한 가지만 주목하고
다른 하나는 내일 써먹어야지 해놓고
까맣게 잊어버린 것을 이제야 생각해 내었습니다.
(그 하나는 고구려 비석의 발견이지요)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략 아는 얘기고
여기를 통해 저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신 분들도 슬슬 눈치 채신 것이 하나 있을 겁니다.
얘는 삼국유사 얘기 정말 안하는구나...
뭐, 다들 창덕궁을 좋아한다고들 말하는데
혼자서만 경복궁이 법궁이니까 좋다고 말하는 아입니다.
역사서도 정사를 더 중요시하다 못해 거의 그것만 보는
심각한 편식가입니다.
그래도 이 사실만큼은 다루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국보급 삼국유사 왕력편 조선초기 판본 공개 - 연합뉴스 1월 15일자
사진 출처 - 조선초기 간행된 ‘삼국유사’ 판본 공개(불교신문, 1월 21일 기사)
현재 완본으로 존재하는 삼국사기, 삼국유사는 중종 때 나온 목판본입니다.
명나라 정덕제 연간에 나왔다고 하여 정덕본이라고도 부르지요.
삼국사기야 고려 후기 목판본도 나오지만 그건 일부만 남은 겁니다.
삼국사기 발문에도 보면 조선 초에 극히 드물게 남았다고 하니
이거라도 안나왔으면 고대사연구는
아직도 진단학회 한국사 이상의 성과물은 지근도 힘들었을 거라고 봅니다.
정말 고고학 유물과 몇 개의 금석문만 가지고 이야기를 했을 것인데
그나마 기준이 될만한 좌표점이 없는 관계로 정말 뜬구름 잡는 얘기뿐이었겠죠.
그나마 삼국사기는 여러 기록들이 남아있어서
해당 판본의 오차가 있어도 바로잡을 수 있기는 한데
아무래도 삼국유사는 참고 자료들이 다 사라지고 유사한 책이 없어서
문제를 수정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비록 왕력(요즘 역사책의 연표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중요한 것입니다)과
기이편(이건 주로 정치적인 이야기죠)만 남았다 하더라도
최소한 기존의 정덕본보다 더 오래된 판본이 나오게 되면서
몇몇 착오들을 바로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 대한 사항이야 신문기사를 보시면 될 듯합니다.
역사학자에게 사료는 총알과도 같습니다.
단 한 글자만 나오더라도 그 가치는 충분합니다.
지금 보고 있는 정덕본의 오자 하나만 고칠 수 있어도
우리는 모두 행복해 할껍니다.
말꼬리 ----------------------------------------------------
1.
현장에서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아니 불호쪽이 더 강한가??)
연합뉴스의 김태식 기자의 글입니다.
조금 시각이 다른 면도 있지만 적어도 기초지식은 가지고 접근하는 기자입니다.
(실제 석사과정까지 밟으며 공부를 했습니다)
2.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나온 삼국유사 교감역주본을 사야지 마음 먹은지
수 년이 지나도록 안사고 있습니다.
정말 삼국유사에 애정이 없어!!!
삼국사기는 복본으로 사면서 말야!
3.
기사 마지막에 진흥왕모의 족보 이야기가 나오는데
각간(角干)과 백구(伯口)라고 했는데
각과 백은 자형이 약간 유사성을 가지므로
요즘 책에서 나오는 오자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口라는 글자는 진짜 입 구口인지 아니면 안보이는 글자를 사각형으로 표시한 건지
기사를 봐선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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