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통일신라시대 논 유적에서 사람 발자국 확인 본문
이 사진 이후 유적사진의 저작권은 가경고고학연구소에게 있습니다.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서 농경지를 포함한
통일신라시대 생활유적이 확인되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신문기사와 보도자료를 읽어주세요.
특히 문화재청 보도자료에서는 유적에 대한 사진도 제공합니다.
우물단면입니다...
이 유적 발견의 의의는
아마 통일신라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느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삼국사기 정도만 해도 아주 정보가 적은 것은 아니고
또 동시대 여러 나라들만봐도
중국이나 일본 정도를 제외하면 이 정도도 많은 것이긴 합니다.
그러나 세세한 생활정보를 담는다는 인식은 존재하지 않아
그에 대한 부분은 많은 부분이 공란으로 남아있어요.
정창원에 소장된 촌락문서도 한 단면만을 보여주지요.
그런 점에서 일개 변방 마을의 실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번 발굴의 의의가 클 것 같습니다.
藤原京と京 63쪽의 일본 동북지방 마을 복원 사진입니다. 이런 느낌일까나..
기둥을 쓴 주거지와 땅을 파서 만든 수혈주거지(움집)가 공존을 하고 있고
또 이들이 어떤 비율로 공존하냐, 배치가 어떻게 되어있냐는
공개자료에 나오진 않았군요.
뭐, 25일에 현장설명회를 하니 거기 오라는 거죠.
물론 그런 문제는 일반인들에게 큰 관심거리가 되지 못하므로
논에 사람 발자국이 이쩌여. 뿌우~..라고 할 수 밖에 없죠.
아마 무슨 그시대 체형에 관심이 없다면
마을과 우물에 관심을 보일 겁니다. 대다수의 연구자들은..
파란 선으로 그은 것이 발자국, 하얀 선은 이랑과 고랑의 표시선입니다..
이 지역은 고구려 때는 매홀(군)으로 불리다가
신라가 지배함에 따라 한주 소속의 수성군으로 불립니다.
지금의 수원과 화성 봄담면을 포함하는 지역인데
군의 중심은 화성이었지요.
아마 이 마을은 수성군의 군청소재지 인근의 마을이었을 것입니다.
조만간에 논문이 나오면 그걸로 궁금증을 해결해야겠군요.
한국학중앙연구원,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에 실린 사진.(구판의 것이라 이번 신판에 있는지는 확인 안함)
그리고 융건릉이 인근에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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