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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1회 4급 6번 문제 본문

한국고대사이야기/한국사능력시험

1회 4급 6번 문제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5. 7. 27. 08:47

오늘은 광개토왕릉비에 대한 문제입니다.



약간 난이도가 높죠? 이 지문의 글은 광개토왕릉비의 영락 9년(399)과 영략 10년의 기사 중 일부입니다. 비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왕이 얼마나 고귀한 혈통을 가졌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주몽의 건국신화를 간단히 서술하고 왕은 주몽의 17세손임을 밝히는 대목과 바로 이 왕의 이름인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의 근거라할 땅따먹기 전적을 소개하고, 마지막으로 왕의 무덤을 관리할 자들에 대한부분입니다.(사실 분량은 마지막 이 부분이 가장 많지요) 지문은 그 중에서 가야와 관련한 대목을 따왔습니다.


먼저 생각하야할 것은 이 비문이 당대에 쓰여진 최고의 자료이긴 하나 완전히 정직하진 않다는 겁니다. 이 비문은 고지식한 사관의 기록이 아닙니다. 아들인 장수왕이 "우리 아빠 욜라 쎔!"이라고 대내외에 밝히는 글입니다. 오로지 울 아빠는 대단하에 맞춰져 있습니다. 백제를 박살낸 것, 신라를 도와 가야를 밟은 것, 그리고 왜를 물리친 것은 원래부터 걔들이 고구려의 우리 빵셔틀이었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백제와 신라가 원래 빵셔틀이었을리는 없습니다.(물론 백제 왕실은 우리의 곁가지-가출한 色姬들..-라고 봤을 수는 있죠) 물론 바다 건너 일본의 위대함을 기리기 위해 비를 세운 건 더더욱 아닙니다. 100여년간 지겹게 이어져온 논쟁에는 왜 이걸 세웠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저런 주장을 하는지에 대한 고려가 너무 부족했습니다. 그냥 자기 입장에서 비문을 난도질 했지요. 뭐, 지난 세기 전반부에 정인보 선생이 이 문장의 주어는 고구려의 광대토왕이다라고 주장한 후에도 아주 많이 나아지진 않아보입니


1번의 북한산비는 신라 진흥왕입니다.

2번, 보통 광개토왕의 나들이로 김해의 구야국(금관가야)이 쇠퇴하고 내륙의 대가야가 성장한다고 봅니다.

3번, 이건 칠지도가 아니라 광개토왕릉비지요.

4번, 무령왕에선 중국의 양나라의 영향을 받은 유물이 나오지요.


그러므로 정답은 5번!


말꼬리 ------------------

그런데 짐순이네 집에도 광개토왕릉비가 세워져 있습니다.(니네 집이 집안에 있냐!) 사실은 이거 보러갔을 때 샀어요.


왕릉이 옆에 없는 건 안자랑


하지만 글자가 있을 건 다있는 건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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