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중국인이 읽으면 감격스러운데 한국인이 읽으면 찝찝한 글.. 본문
파,촉, 월수(사천성), 울림(광서장족자치구), 일남(베트남 북부), 요동, 낙랑의 풍습을 살펴보면, 주나라 때는 머리를 뒤로 넘겨 묶었지만 지금은 관을 쓴다. 주나라 때는 거듭 통역으로 이해시켜야 했지만 지금은 "시경"과 "상서"를 낭독할 정도다. - "논형" 58, 회국편
처음 발견한 사료는 아니고 이전에도 알려진 사료입니다. 국편에서 나온 "중국고대사료집성"에도 인용되어 있죠. 어제 이성규 선생님의 낙랑에 대한 논문을 도서관에서 읽고 있는데 거기에서 다루고 있는 것을 처음 봤습니다. 마침 지근거리에 "논형"이 있길래 펴보니 위의 글과 같은 내용이군요.
중국출신들이 꽤나 있음에도 군 설치시에 속리로 쓸 사람이 없어(단순 문자이해도 문제가 아니라 중국정부 입장에서 일할 사람이 없는 겁니다. 애초에 진시황이나 한초의 혼란이 싫어 도망왔는데 전쟁에서 져서 또 황제의 지배를 받으라니. 아놔!!) 요동군에서 데려와 썼다는 기록이 "한서" 지리지에 실려있는데 시대가 지나 후한 초반의 학자 왕충의 "논형"에 보면 "시경"과 "상서"를 통해 고도의 정치적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고대 중국의 제국질서에 이보다 더한 찬사가 있을까요? 우리는 사람도 아닌 것같던 야만족의 땅에 사람답게 사는 법의 씨를 뿌렸고, 결국 그들을 인간답게 만들었다. 어쩌면 현대에 횡행하는 식민지근대화론의 시조새쯤 되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로마제국도 그렇고 근현대의 식민제국들도 그렇고 왜 그렇게 우린 엘레강스하고 고져스한데다가 지구 문명화에 숭고하고도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어염..하고 자랑을 못해 안달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시오노 나나미 할매가 그렇게 좋아하는 제국초반 그리스인 뭐시기의 찬양연설같은 것만봐도 저 논형의 문장에서 느껴지는 자기들만의 희열이 느꺼집니다.(자동 현자타임??)
도로가 생기고 새로운 시설이 들어오고, 보다 발달한 문명의 혜택이 들어온다는 착각을 부러일으키는데 그 도로나 새로운 시설은 우리를 양분삼아 또 다른 야만족을 괴롭히기 위한 도구입니다.(잘 알려진 철도망 말고도 새로운 도로는 일본 육군의 견인포가 지나갈 수 있는 폭을 확보하고 있었지요) 또 우리의 가족들은 그 성전을 위해 무기를 들어야했고 상대적으로 생산력이 떨어지는 지역에서도 젖과 꿀이 흐르는 중국 본토의 평야지대처럼 정기적으로 세금을 바쳐야 했습니다. 기록에는 현실적으로 헤아려 수취하라는 폐하의 하해와 같은 배려가 넘실대지만 실제로 그게 안되는 거 아시잖아요.
물론 단문구사에서 매우 함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발전은 그럴싸해보입니다. 최소한 모든 발음을 표현하지도 못하고 외워야할 문자 수가 두 배로 더 많은 일본어보단 나아보이긴 하는데.. 아! 아니죠. 한자는 최소 만단위는 암기해야 생활이 가능할 정도니. 하여간 제국에 들어가면 좋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 번 그렇게 살아보고나 지끼보시지..라고 혼자 중얼거려봅니다.
말꼬리 --------------
1.
맨날 듕궉사를 보지도 않고 그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한다고 디스를 했는데, 낙랑은 중국사를 안들면 건드릴 수 없는 주젭니다. 오늘도 그 논문을 이어서 읽다 정창원 촌락문서에서 이해가 안되었던 문제 하나가 이해되더군요.
2.
하지만 현실은 민족의 찬란한 역사를 부정하는 식민사학의 찌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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