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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불고기랑 고구려 사이에 관련성은 하나도 없다. 본문

한국고대사이야기/자료로 보는 고대사

불고기랑 고구려 사이에 관련성은 하나도 없다.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6. 7. 17. 23:49

초록불님의 페북 글을 보는데 신문기사 하나를 인용해두셨더군요. 불고기 이야기가 나오길래(고기다! 고기!!) 뭔가 보니 그동안 불고기가 고구려때부터 내려온 음식이라는 이야기가 널리 퍼진 것 같군요. 아니 짐순이는 왜 그런것도 모르는거야? 


불고기 원조=고구려 맥적? 역사로 둔갑한 낭설


위의 기사는 대략 이렇습니다. 위진남북조 시대의 "수신기"라는 책에 불고기라는 음식이 고구려의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기록을 보면 고구려의 고자도 안보이고 이건 유목민족의 통구이 요리를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불고기를 고구려의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이런 겁니다.


마침 수신기라는 책은 가지고 있지 않으니 기사에서 인용하는 것을 그대로 옮겨봅니다.(세설신어도 안갖춘 마당에 수신기까지!!) 

“호상과 맥반은 적인의 기물이다. 강자와 맥적은 적인들의 음식이다. 태시(265~274년) 이래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게 됐다. 귀족과 부자들은 반드시 그런 기물을 쌓아두고, 잔칫날 귀한 손님들에게 앞다투어 내놓았다. 이는 융적이 중국을 침입할 징조였다”

(胡床貊盤, 之器也. 羌煮貊炙, 之食也. 自太始以來, 中國尙之. 貴人富室, 必留其器, 吉享嘉賓, 皆以爲先. 戎翟侵中國之前兆也)


(물론 기사를 쓴 분이 정직하게 인용했다고 치고) 정말 기사처럼 고구려의 ㄱ도 없습니다. '胡床貊盤, 之器也. 羌煮貊炙, 之食也'*이라는 문장이 고구려와의 관련성 여부의 열쇠인데 翟이라는 글자는 고구려가 아닙니다. 그냥 오랑캐라고 풀고 고구려라고 보고 싶어할 분 많은데 고구려보고 이 글자를 쓸 일이 없습니다. 


후대에 와서 많이 귀찮아 졌는지 대충 글자맞으면 쓰는 경향도 있는데 적어도 이 시대는 성을 공격했다는 한자도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벽을 넘어 점령했는가, 문을 따고 들어갔는가, 내부에서 문을 열어 항복을 했던가에 따라 성을 함락시킨 것을 표현하는 글자가 다릅니다. 


가끔 중국인이 사방의 오랑캐를 북적, 서융, 남만, 동이라는 것을 섞어 쓰기도 하는데 차라리 蠻夷라고 붙여쓰는 경우는 있어도 융이나 적은 고유명사로 안쓰죠. 그냥 오랑캐라고 할 때 융적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그냥 보통명사처럼 쓴거고.. 게다가 북적 할 때 적은 狄이지 은 아닙니다. 적은 춘추전국시대 문헌에 보이는 종족인데 晉과 秦의 북방에 존재한 종족입니다. 이게 위치상 고구려와 연결될 일은 없고. 굳이 사방에 꿰어맞추자면 동이보다는 서융에 가까운데 어찌 이게 또 고구려인가여?


원문대로라면 저 위의 기사가 맞는 겁니다. 게다가 지적하는 것처럼 저 문장의 핵심은 '융적이 중국을 침범할 징조였다'에 있습니다. 고구려와 관련도 없으며(물론 맥이 고구려와 관련있다 하고싶으신 거 같은데.. 저 맥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처럼 쓴 겁니다. 래퍼들이 라임을 맞추듯 강과 맥을 늘어놓는 거죠) 저게 뭔가에 대한 설명이 하나도 없이 이름만 있으며 그마저도 음식 이야기가 아닌 정치, 문화이야기의 소도구입니다. 불고기 마시쪄.. 이럴려고 쓴 문장이 아니다 이겁니다. 게다가 당제국 시대가 아닌 담에야 중국에 고구려 문화(라는 것이 있다면)가 퍼지기엔 매우 이른 시깁니다.


요즘은 일본서기를 인용하는 것을 두렵지 않아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발표를 듣자면 '저 분의 선생님은 일본서기를 읽을 때 주의사항같은 건 이야기 안해주나' 그런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2주갑 인상론이라던가 7~8세기에 이르는 고대 일본의 세계관의 변화. 글쓰는 태도의 변화. 이런 것을 알고 읽어야 뒤탈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고구려 뽕을 맞으신 분들이 종종 위진시대 지리서나 사론집같은데서 자료를 끌어오시는데, 이건 일본서기보다 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죠. 그나마 파해법이라도 공유되는(이게 후학들에게 전달이 안되어 문제지) 일본서기는 그나마 낫지. 


위진남북조시대 글은 정교함과 약빨에 의한 환각이 한 책 안에서 공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얼마나 약을 쳐드셨나는 김인숙 선생님의 "중국 중세 사대부와 술, 약 그리고 여자"를 읽어보시길) 직접 다녀왔거나 가본 이에게서 직접 들은 정교한 증언과 산해경의 신비주의 서술이 처용 마누라와 역신처럼 한이불에 발만 내놓고 뒤엏켜 있습니다. 그냥 암생각 없이 ctrl+c, ctrl+v하면 되는 게 아닙니다. 동일사안에 대해서도 그게 북조냐 남조냐에 따라 또 엏키고.. 그래서 짐순이는 위진남북조에 대한 관심을 끊는 걸로 대응했죠. 참말로 귀찮은 냔. 그게 도전에 대한 대응이냐고 토인비가 땅을 칠 냔.


역사를 그냥 참고서 외우고 지 편한대로 사료 몇 줄 따다가 주장하면 되는 게 아닙니다. 한국사능력시험이나 고시 강사들 책만보면 역사 참 쉬운 거 같죠? 그게 쉬웠으면 뭐하러 대학원 가서 쉰내나는 책을 보며 청춘을 허비하겠나.


말꼬리 -------------------

1.

처음에 글을 쓸 적에 아크로뱃 설치를 하고 있었고, 다음팟 인코더를 돌리고 있었는데 중간에 컴 종료. 다시 켜니 윈도 업데이트.. 글쓰는 김 안샌 게 다행.

2.

저 기사에서 고구려의 부엌이라고 소개한 것도 고구려식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자꾸 고구려 고유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다른 모든 것이 너무 중국적이라는 게 문제.

3.

동북아역사재단(이라고 쓰고 동북아귀염재단이라 읽는다. 혼자서,)의 고구려 문화사 책에서 이런 대목을 찾았습니다.


그렇다면 사냥이나 사육을 통해 얻은 육류는 어떤 방식으로 조리되었을까? 고구려 육류의 조리법과 관련하여 『수신기(搜神記)』의‘맥적(貊)’이라는 요리가 주목된다. 『수신기』에 따르면 맥적은 오랑캐의 음식인데 예로부터 중국인들이 이 요리를 좋아하여 중요한 잔치에 반드시 내놓는다고 하였다‘. 맥(貊)’이라는 명칭은 중국 문헌에서 고구려족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적()’은‘고기구이’라는 의미를 갖는 한자이므로,‘ 맥적’은 고구려 특유의 고기구이로 추정된다. 맥적의 구체적인 조리법을 알 수는 없지만 짐승을 통째로 미리 양념한 후 불에 구운 것으로 보이며, 굽기 전에 미리 양념을 한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불고기 계통의 요리로 추정하고 있다.

- 고구려의 문화와 사상, 140~141쪽


저 원문을 보건대 어디가 귀한 음식으로 잔치에 내놓는다는 의미입니까? 그냥 넋놓고 외래물문에 빠지니 망한다는 얘기지. 그리고 또 어디에 맥적의 레시피가 있습니까?

4.

코딩 교육에 머리가 아프긴 한데 거긴 왜곡이나(블러그나 게시판 돌다보면 잡놈의 IT만물 천지창조설을 주장하는 앱등이도 있지만) 잘못된 정보를 가르치지 않아서 좋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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