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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평소 지론이 안악 3호분의 벽화고분을 근거로 고구려 군사사 논문을 쓰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 그림을 토대로 병종분석하고, 무장 검토하는 것은 오래전엔 자료부족으로 어쩔 수 없었으나 2010년대에 이거 하면 재떨이 맞기 딱좋다. 하야시 미나오의 화상석 책을 보면 딱 물고기들이 무기들고 용왕의 행차를 시위하는 그림도 있고(화상석 그림이니 당근 안악 3호분보다 오래전이다) 이게 원래 고구려 사람도 아닌 얼마전에 망명한 전연의 관료 동수의 무덤이니 고구려 물이 들면 얼마나 들었겠는가. 물론 부카니스탄의 위대한 친구들은 이걸 고국원왕의 무덤이라 주장한다 하더라. 근데 평양 앞도 뚫린 판에 황해도에 왕릉? 미쳤냐? 국내성에 묻혀서 고국원이란 이름이 붙었는데.. . 시조이래 하늘에서 내려왔고 내 즉위 정통성이 주몽이..
서양사 수업에서 신문화사를 배울 때 기말과제물로 낸 것이 안악 3호분의 행렬도 분석이었다. 벽화에 그려진 병사들에 대해 분석하고 이 병사들이 행진하는 그림 뒤에 숨겨진 당시 군사제도의 변화상을 잡아낸...답시고 주절거렸다. 그땐 석사논문 주제로 잡지 않은 주제에 이걸로 박사 쓸꺼라고 다녔다. ( 왜 후배들의 우행에 태클걸지 않는가.. 지는 더했으니까!) 4세기대의 고구려의 군사제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나.. 한마디로 국가 공권력으로서의 군대탄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의 군대는 부(部)라는 지역공동체의 장, 또 국왕이 거느리고 있던 혼성적인 조직의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국가가 고도로 조직화되기 시작하면서 군대는 국가의 공적 무력으로 탄생하게 된다. 전면적인 징집으로 바뀌게 되어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