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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번외편 -01, 구석기 시대의 P2P, 집단지성 본문

역사이야기/세계사 뒷담화

번외편 -01, 구석기 시대의 P2P, 집단지성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2. 6. 26. 00:00

우선 질문 하나를 던져봅니다.

왜 구석기 시대는 유달리 길었을까요?

길게는 수백만년 이상 길고도 길었던 시대입니다.

돌도끼를 만들고, 불을 지피고, 동굴, 혹은 매머드같은 동물의 뼈로 만든 막집에 살았던 

사람들의 두뇌는 지금의 우리보다 열등했을까요?


정정합니다: 6월 26일 17시 수정


고고학개론서들을 다시 뒤져보니 적어도 300만년경에는 석기사용이 시작되었습니다.

현생인류뿐만 아니라 네안데르탈, 하이델베르크, 호모 에가스터, 호모 하빌리스는 물론이고'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의 마지막 단계부터 석기를 써왔으니 연대를 수정하지 않으면

이 글 자체가 쓸데 없는 소리가 되고 맙니다.

여기서는 글의 시간범위를 후기구석기시대, 즉 현생인류의 시대로 한정함을 알려드립니다.


처음 썼던 7,80만이란 연대는 80년대 한국고고학에서 구석기연대를 연구하다 나온 수치입니다.

잘못된 정보를 거의 하루 동안 올려놓아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언제나 그게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시절 사람들에게 물어볼 수는 없죠.

말이 서로 통하지 않음은 고사하고 만날 방법 자체가 2012년엔 없습니다.

(만약 타임머신을 가지고 계시다면 비밀글로 다음주 로또 2등 번호를 알려주세요. 

10년째 같은 번호로 해도 안됩니다. 아놔..)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하나의 사실과 다른 하나의 가설입니다.

우선 이미 알려진 것 하나를 이야기하죠.

제목에 구석기 시대의 P2P라고 적어놓았습니다. 

P2P, peer-to-peer

주로 디지털 미디어 파일의 배포를 위해 사용되는 컴퓨터 네트워크의 한 형태.(브리태니커)

이런 정의는 지금 이 글을 보는 분이라면 아실만한 이야깁니다.

(아마 이 블로그의 단골 중 상당수는 IT블로거들이시니만큼!)


1999년 냅스터로부터 시작된 이 P2P의 전제조건은 컴퓨터와 회선의 존재 유무니까

구석기시대의 이것을 이야기하면 대번 욕을 먹을 소릴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인간생활의 기본은 구석기시대부터 메소포타미아문명 붕괴 사이에 거의 완성이 되었죠.

사실 바뀐 것은 표현의 수사와 구현하는 기술의 깊이 정도가 될 것입니다.

회선이 없이도, 전산단말기가 없이도 P2P의 기본 원리는 구현되었습니다.

Face to Face, 직면하여 말하기라는 방식으로요.


메소포타미아를 비롯한 여러 문명의 탄생을 다룬 

찰스 레드만의 『문명의 발생』(1995)을 읽을 때 유달리 인상 깊었던 것이

터키에서 구석기 시대의 교역망이 무려 2천km 거리까지 이어져 있었다는 대목이었습니다.

사실 이 책을 읽을 때는 이 문제를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호주대륙 원주민에 대한 인류학책을 읽다보니 약간 남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교역망이라고 해서 지금과 같은 상업행위는 아닙니다.


매우 작은 규모의 씨족집단들이 인근지역의 집단들과 우호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선물이 오가고 그것이 가다가다 아주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가는 겁니다.

이를테면 부산에서 조개 하나를 줍습니다.

그리고는 양산지역의 친구에게 선물로 줍니다. 우리 앞으로도 잘 지내자고요.

그 양산의 친구는 밀양의 친구에게, 밀양의 친구는 대구의 친구에게..

이런 식으로 선물한 조개는 흘러흘러 만주지역까지 가는 것이지요.

누가 거기까지 보내라고 한 적도 없는 겁니다.

그것이 원산지에서 멀리가면 갈 수록 더욱 가치있는 선물이 되겠지요.



요 아래 위키백과 출처 흑요석 사진



아주 오래전에 부산에서 흑요석으로 된 석기가 나왔는데

그 석재의 성분분석을 해보니 백두산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흑요석에 대한 설명은 http://ko.wikipedia.org/wiki/%ED%9D%91%EC%9A%94%EC%84%9D)

신석기시대 유적인 부산 동삼동패총에서 흑요석으로 만든 석기가 나왔을 때도

이것이 어떤 경로로 전해지는 것인가에 대해선 아무도 알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인류학 조사를 이용하니 완벽히 일치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 유사한 방식으로 보여지는 것이지요.

석기시대의 인적교류란 이렇게 흘러갔을 것이고 

그렇게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술이 이렇게 전파되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모르리에 사는 말구씨가 말합니다. 아니면 말구)


이 석기시대의 P2P가 지금과 같은 속도와 용량을 갖진 못했습니다.

물론 그 시대는 다받아주어라..는 메가패스 장군만큼이나 쾌속이었겠지만요.

그런데 왜 기술의 진전에 수십만년이 걸렸을까요??


생각해보면 구석기시대의 인구분포가 하나의 해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마빈 해리스의 『식인과 제왕』(한길사, 2000)에서 구석기시대 인구 이야기가 나오다가

극가별 면적순위 42위인 프랑스에 1천 명 가량이 살았다고 합니다.

643,427㎢의 면적에 1천명이 살았다는 것입니다.

108위 남한의 면적이 99,720㎢이고, 98위인 북한의 면적이 120,538㎢인데 

합하면 220,258㎢이 되고 84위로 올라갑니다.

(국가별 면적은 http://search.daum.net/search?w=tot&q=%EA%B5%AD%EA%B0%80%EB%B3%84%EB%A9%B4%EC%A0%81%EC%88%9C%EC%9C%84)

그렇다면 한반도에 살았던 구석기인들은 산술상으로도 300명 내외였을 것입니다.

이는 그렇게 많은 수가 아닙니다.

더욱이 7만년 전에는 전세계에 인구가 10000명대 내외로 급격히 줄었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멸종단계까지 간 것만은 분명합니다.

뗀석기와의 씨름을 70만년 이상이나 해온 것은 바로 이 인구문제가 아니었을까요?


만약 70만년전에 연방씨족의 RGM-79가 간석기를 개발합니다.

그러나 완벽한 언어체계가 완성되기 전이므로 이것을 만드는 것에 대해

세세한 설명을 하기 힘들었습니다.

거기선 누구나 김성모 화백이 되었겠지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물론 아주 최첨단 기술이라면 안믿으시겠지만

지금과 달리 앞선 기술의 축적이 없던 시기엔 그것이 첨단기술입니다.

돌의 성격을 이해하고 용도에 따라 적합한 돌을 고르고

또 돌의 성격에 따라 가공방법도 다 다릅니다.

적어도 그 당시의 어른이 현재의 광물학자들보다는 이론은 없겠지만

돌 자체를 더 많이 이해하고 있을 겁니다.

그런 지식을 고정된 교재가 없이 하나하나 데리고 다니며 가르칩니다.

RGM-79가 RX-78이라는 자식을 낳아 자신의 지식을 알려주었겠지요.

그러나 이 자식놈이 아 바오아 쿠에서 박살이 나면 그 기술은 대가 끊어집니다.

(시작형과 양산기의 순서가 다르다고 토달지마. 이건 역사글이거덩!.. -_-;;;)


그래도 RGM-79에게도 친구는 있어 인근 지온씨족의 MS-06에게 알려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10년은 가리라던 놈들이 연말에 미노프스키 바이러스에라도 걸려 싹 죽어버리면 곤란하죠.

낙심하지 않고 이웃집 동생인 MSZ-006에게 이 기술을 전수시켰더니

그린노아에 품팔이 갔다가 정신병에 걸려 다 까먹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이야 높으신 분들이 기술을 갉아먹는 주 요인이 되고 있지만

그때야 그런 분들은 없을 것이니

매우 희소한 구석기 시대의 인구밀도가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무척 큽니다.


지금도 기술의 발전이나 문화의 만개, 경제의 활성화를 일으키는데

인구의 규모라는 것이 어느 정도 작용합니다.

이렇게 지식의 전달뿐만 아니라 개량과 발전에도 필수적이지요.

도시라는 것을 역사학에서 중시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아무래도 넓게 분산된 농촌보다는 한데 모인 도시가 그런 면에선 적합하니까요.


어쩌면 70만년이나 되는 구석기 시대의 기술발전의 역사는

마로 60년전 이땅에서 치열하게 벌어진 고지전 만큼이나 치열함을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무수한 인간의 아이디어가 원하지 않은, 그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요인들에 의해 사장되고,

기술적 축적이 거의 없던 시기에 수 많은 사람들이 처음부터, 처음부터

맨땅에 헤딩하듯 힘들게 시도하다 결국에야 성공한 것일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1만, 5천, 5백, 3십, 2회째에야 영원히 반복될 것 같았던

무한반복을 이겨낸 것일지도 모릅니다.


출사표를 읽으며 울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듯, 이 장면을 보고 울지 않는 자의 목을 칠꺼얏!!! 출처는 직캡, 저작권이야 원작자와 제작사에게..



끝으로 한때 수업 중에 인용하던, 이 글에 영감을 준 이야기를 인용하는 것으로 끝낼까합니다.

직립보행이 시작되면서 보행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잃은 앞발이 도구를 사용하는 손으로 변하며 인간의 부족한 면을 보완하기 시작. 직립보행은 매우 정교한 제어 프로그램과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골반구조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차츰 두뇌와 골격구조가 발전. 직립보행 후 후두부와 성대의 구조가 바뀜에 따라 복잡한 음절의 구사가 가능 여기에서 언어가 발생. 각기 하나의 특성과 아이디어를 가진 인간들이 모여 서로 부족한 면을 채우고 각자의 아이디어를 복합적으로 발전시킴. 결국 이것이 인간의 개체적 한계를 넘은 문명의 발전을 촉진시킴.

(‘인간의 아이디어는 서로 만나 짝을 짓고 성교한다’, 매트 리들리, 『이성적 낙관주의자』, 김영사, 2010에서 요약)


다음 주 화요일에는  “008. 작년에 왔던 좌빨 공자, 죽지도 않고 또 왔네~”로 찾아뵙겠습니다.

묵동서 교통과입니다. 당신을 체포합니다! You're under ar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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