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007. 고대 그리스의 전쟁은 신 앞에서의 결투다 본문
오늘은 약간 피튀기는 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무대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와 스파르타, 페리클레스, 소크라테스,
레오니다스와 테르모필레의 300용사로 잘 알려져있는 고대 문명의 황금기죠.
페르시아나 인근 민족간의 전쟁을 이야기 하자면 몇날 며칠을 다해도 부족할 것이니
그리스 도시국가간의 전쟁에 대해 한정해볼까 합니다.
전쟁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땅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 하죠.
그리스는 우리가 사는 한반도보다도 산의 비율이 높다고 합니다. 험준한 산맥도 많고요
그것이 그리스문명의 독특한 상황을 빚어내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고대 문명은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아직 인간의 사회조직력은 담장을 두른 큰 마을을 초월하지는 못했습니다.
설령 대제국을 건설했다 하더라도 각각의 도시를 묶은 정도였고
조금만 그 끈이 헐거워지면 손아귀에서 벗어났습니다.
개활지라던가(메소포타미아) 정치적 지도자의 종교적 권위가 매우 높은 경우(이집트)
비교적 견고한 조직을 가질 수도 있었겠지만
산이 많았던 그리스에서는 제국을 쉽게 묶을 수 있었던 교통통신망을 구성하기는 힘들었습니다.
(미리 말해두지만 자연환경이 인간의 질을 정한다는 고/전/적/인 이론을 믿지 않습니다.
다만 환경이 각각의 인간사회가 선택하는 것에 영향을 준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이러한 논지는 앞으로 역사와 지리를 이야기할 때 기본적인 전제사항이 됩니다)
또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올림푸스의 신계는 제국을 구성하는 데 방해만 되었습니다.
일리아드에 보이듯 인간이 싸우면 신들도 편을 갈라 싸웠으니까요.
다른 제국의 탄생지처럼 개활지가 많다던가 곡식농업 위주의 사회였다면
잔뜩 정복해서 자본(토지와 노동)을 늘리는 것도 좋겠으나
산간 지역의 좁고 척박한 곳에 있는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이웃 도시를 먹어봤자
투자비용이 수익을 따라잡지 못하는 손해를 보겠지요.
(그 찬란한 트로이 정복전이 그랬죠. 만원 벌겠다고 10년동안 매년 10만원 쓴 전쟁!)
국민이라도 많아 국가의 부담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되면 좋으련만
소수의 시민사회를 추구하는 상황에선 그것도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적국을 완전 복속시키는 것이나 적의 전쟁능력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형태의
전쟁은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적을 완전히 섬멸하는 전쟁을 수행하자니 같은 ‘문명인’이란 자각이 그를 막았습니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수행할 수 있는 전쟁의 형태란 한정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제한적인 결투 형태의 전쟁이죠.
게다가 적을 괴롭히려면 수확기에 쳐들어가서 추수를 방해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리스의 주된 농작물은 포도였습니다.
어느 포도농장집 아들이 전쟁사가가 되어 말하기를
포도나무는 억세서 베어버리기도 힘들고 불태우기도 힘들다고 합니다.
(빅터 핸슨의 이 책은 “고대 그리스 내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출판되었습니다만 아쉽게도 절판되었습니다)
적을 괴롭히는 수단을 가지려면 지구전을 꾀해야 하는데
소규모의 도시국가로는 전쟁을 오래 끌 수도 없었습니다.(전쟁은 규모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단기 결전의 결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상업이 발달하다 보니 어차피 각국의 이해관계는 충돌하고
전쟁을 대대적으로 벌이자니 그럴만한 체력도, 잡아먹을 위장도 없어 힘듭니다.
대신 신들이 보는 앞에서 도시의 사내들이 도시의 명예를 걸고,
또는 침략도시에게서 고향을 지키기 위해 한 판 대결을 벌이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그 결투는 아무나 담당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무장을 하고 나올 수 있고, 결투장에 나서도 가족이 굶지 않을 자만이
명예로운 전투에 참여할 수 있었고, 신들의 축복을 받으며 죽을 수 있었겠지요.
고대의 군역은 바로 몸으로 떼우는 세금이자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받는 자랑스런 표식이었습니다.
자기 도시의 운명을 지켜낸 자만이 도시의 미래를 결정할 자격이 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전투대열인 팔랑크스는 바로 그러한 상황의 산물입니다.
값비싼 청동갑옷, 여러 번 사용할 수 없는 무기들
(화살을 날려놓고 동네 야구소년처럼 ‘저기 화살 돌려주세요’라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전쟁 중에 먹어야할 식량 등을 자기 돈으로 낼 사람만이 참여 가능했죠.
거기에 아무리 돈이 많아도 천한 자와 타 도시 사람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보죠.
우리는 학교에서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여자, 노예, 외국인에게
매우 배타적인 민주주의라는 한계가 있었다고 배웁니다.
특히 외국인의 경우 부모 한쪽의 피가 달라도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냥 막연히 생각하기에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배타성의 한계가 있었다고 할 수 있고,
또 아직 민주주의가 성숙되기 전의 상황이니 그럴 수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맞는 말입니다.
아무도 여러분께 4살 때 미적분을 풀 것을 기대하지 않듯이
당시에 현대적인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없겠죠.
이 민주주의와 팔랑크스를 같이 놓고 보면 또 하나의 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아마 세심한 여러분은 이 글에서
고대 그리스와 아테네를 마구잡이로 섞어 서술하고 있음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테네가 민주주의의 대표처럼 알려져있지만
사실 민회는 어느 도시에나 있었고 아테네가 좀 유달리 극단적이었을 뿐입니다)
팔랑크스의 기본 속성은 집단이란 단어로 표현됩니다.
많게는 수백 명의 사내들이 어깨와 어깨를 맞대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적을 향해 돌진하여 어느 도시가 먼저 비명을 지르고 무너지느냐를 겨루는 전장이라면
서로 신뢰할 만한 이들끼리 뭉쳐야겠죠.
서로 창을 찌르며 인내력의 한계를 시험하는데
누구 하나 살고 싶어 대열을 무너뜨리면 모두 다 죽게 됩니다.
그러니 서로 믿을만한 녀석이 자기 옆에 있기를 바랄 껍니다.
귀화란 것이 없고, 자기 이름을 표현할 때,
‘사이드 7, 1번지에 사는 템 레이의 아들 아무로 레이입니다’하던 시절에
자기 도시가 아니면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극한의 상황에서 몸을 던지긴 어렵겠지요.
이러한 차별에 아무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모두들 그 이유에 수긍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You go, We Go!
그들의 정신을 이처럼 압축할 수 있는 말도 없을 것입니다.
싸움의 종결은 다양하지만 하나의 최종행사는 동일했습니다.
이 전투가 끝나면 상대편과 사자를 교환하여 전사자의 시신을 서로 추려
전장에 시신을 각각 매장하고 거기에 기념비를 세우면 끝납니다.
이긴 편이 상대방의 도시로 쳐들어가 죽이거나 노예로 매매하는 일은
그리스 도시 문명이 쇠퇴하기 시작한 후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점령해 지도급 인사들을 처형하고,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가 반항하던 그리스의 도시를 무너뜨리고
그 주민을 노예로 판 것이 최초였습니다.
그때 그리스 사회는 충격을 받았다니 그들의 전쟁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야만족 소리를 들었다는 마케도니아도 결국 그리스인들이긴 매한가지라
BC197년 로마와 마케도니아 사이에서 벌어진 키노스케팔라이전투에서
패배를 시인한 마케도니아 군이 승복의 표시로 들고 있던 창을 쳐들었음에도
결투에 익숙하지 않고 또 그리스인들의 전쟁관에 관심이 없던
로마인들은 마케도니아 부대를 궤멸시키고 그들의 시체를 훼손합니다.
고전시대 그리스의 결투는 그렇게 끝이 납니다.
이들은 그저 결투를 했을 뿐이고
이긴 자는 앞으로도 언제나 이긴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진 자는 다음에도 신들의 심판이 자기들에게 불리하다는 생각 따윈 하지 않습니다.
결투의 효과는 한 번입니다.
오죽하면 4년에 한 번 열리는 올림피아드 기간에야 휴전을 하고
승리자의 성벽 일부를 무너뜨리겠습니까.
다음 주 화요일에는 번외편 하나 나갈지도 모릅니다.
뭘까요? 아직 머리 속에 결정된 게 없습니다.
안쓸지도 모릅니다.
절망했다! 벌써부터 펑크낼 궁리를 하는 이따위 블로그에 절망했다!!
-------------------
말꼬리 :
실은 회심의 역작으로 생각했던 5,6편의 반응이 미지근한데에 반성을 했습니다.
가급적 오덕냄새 풀풀 풍기는 글은 지양해야죠.
실은 텔레토비 글이 지금 세기 들어와서 제일 잘 된 글입니다.
그러나 그거슨 니(RGM-79)생각.
다들 텔레토비가 뭔지도 몰라란 반응을 보입니다.
이젠 좋아하는 텔레토비 글도 적지 못하는 길동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호뽀호보라돌이를 허하라!!!
'역사이야기 > 세계사 뒷담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번외편 -01, 구석기 시대의 P2P, 집단지성 (14) | 2012.06.26 |
---|---|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7) | 2012.06.13 |
006. 상제님이 보고계셔 (2) | 2012.06.05 |
005. 텔레토비 동산의 자유가 사라지는 날.. (8) | 2012.05.29 |
004. 아빠, 진흙갖고 뭐하셔요? (6) | 2012.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