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왜 사기를 읽어야 하나.. 본문
언제나 그렇듯 그래24는 고마운 존재여요.
책을 하나라도 집고 싶었는데 눈에 띄는 게 없었습니다.
역사칸을 지나
유루유리 3권이라도 집어야지 했는데 잘 보이질 않아
과학칸까지 흘러흘러 갔습니다.
새로 나온 뉴톤 하일라이트 단행본도 나왔는데 그냥 와버렸습니다.
집에 오면 읽다 만 거의 모든 것의 역사나 읽어야지 했는데
이불 속에 웅크린 지금 손에 든 책은 정작 사기입니다.
눼, 좀 멘붕이어요.
산상왕의 에로사항, 스즈미야 발기씨의 우울 따위에 신경쓸 여유 없어요.
좀 읽어야 할 책은 많은데
역시 차가운 시절에 이 책만큼 좋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기는 좀 길죠.
열전만 따져도 어지간한 단행본 서너권은 나옵니다.
(왕년의 을유문화사 판은 두 권이었지만 요즘 추세로는 네 권 분량이죠)
까치글방에서 나온 완역이 있긴 하지만 좀 오래 전에 나온데다
그게 좋은 번역본이냐에 대해선 언급을 피하고 싶습니다.
오늘 손에 든 것은 서울대 이성규 선생의 편역본입니다.
사기 - 중국 고대사회의 형성이란 제목의 책입니다.
사기 전체에서 전국시대의 진이 강국으로 성장하여
중국을 통일하고 하나의 고대문명을 구축해가는 과정에 해당되는
부분만 따로 묶어 편역한 겁니다.
열전이면 열전, 본기면 본기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열전과 본기, 서를 시간과 주제에 따라 재배열한 겁니다.
그러니까 춘추 전국이나 한대의 일은 매우 적게 들어갔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 부분은 편역자의 박사논문의 주제기도 하고
(이건 구하기 매우 어려운 책입니다. 19세가 젖먹이 일 때 나왔죠;;;)
이 분 연구의 핵심이기도 하지요.
번역은 크게 3부로 나뉘는데 사기의 저술 배경을 다룬 태사공자서랑
그의 인간관과 역사관을 보여주는 백이숙제 열전 부분은 서론에 가깝고
나머지는 진의 통일과정을 보여주는 2부와
중국의 고대사회의 기반이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보여주는 3부가 기둥이 되지요.
정치적인 부분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2부가 재미날 것이고
하부구조나 지식기반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3부가 재미날 것입니다
이 두 부분은 지금 읽어도 무서울 정도로 들어맞는 것도 많죠.
원래 이성규 선생님의 글은 만만치 않습니다.
글재주가 형편 없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만 왜 그런지 좀 어려워요.
(이보다 더 어려운 걸 고르라면 고 강진철 선생님의 경제사 글.. 켁!)
하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습니다.
번역의 질이야 정평 나있고(전 이 분이 완역해주시면 좋겠어요)
100쪽에 달하는 사기 해설은 다른 걸 굳이 찾지 않아도 될 정도입니다.
1987년에 연두색 하드커버로 처음 나온 책이 소프트 커버본으로
지금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만하면 이 책이 녹녹치 않은 책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사실 오늘 이 책을 손에 든 이유는
지금까지 읽은 것 중 가장 절절한 편역자의 서문에
(이 이상의 것을 꼽으라면 고 최종식 선생님의 서양경제사론 뿐입니다)
그리고 열전의 처음을 여는 백이숙제 열전과
사마천의 태사공자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천도天道가 있느냐,
아니 그게 존재하기는 하냐는 의문에 대한 옛사람의 고민이 있어요.
훌쩍.
말꼬리 ----------------------------
1. 약간 멘붕이라 이번 주는 아마 금서목록만 쌓여갈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2. 결국 밤에 읽으려니 그 글이 눈에 들어오지는 않더이다(20일 아침 덧붙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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