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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동천왕 8년 - 취수혼의 마지막 불꽃 Last flame of levirate 본문

삼국사기를 읽어보자!/고구려이야기

동천왕 8년 - 취수혼의 마지막 불꽃 Last flame of levirate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3. 4. 2. 13:04

원문

八年 … 秋九月 太后于氏薨 太后臨終遺言曰 妾失行 將何面目 見國壤於地下 若羣臣不忍擠於溝壑 則請葬我於山上王陵之側 遂葬之如其言 巫者曰 國壤降於予曰 昨見于氏歸于山上 不勝憤恚 遂與之戰 退而思之 顔厚不忍見國人 爾告於朝 遮我以物 是用植松七重於陵前


해석

8년(234) … 가을 9월 태후께서 돌아가셨다. 태후가 임종할 때, 유언하기를 "첩은 올바른 행실을 잃었으니, 장차 어떤 얼굴로 지하에서 국양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뭇 신하들이 구렁텅이에 밀어 넣으려는 것이 아니라면 즉 청컨대 나를 산상왕의 능 옆에 묻어 달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 말과 같이 (태후를) 묻었더니 무자가 말하기를 국양이 저에게 강림하사 말하시기를 "어제 우씨가 산상에게 가는 것을 보고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결국 그들과 다투었다. 돌아와 이 일을 생각하니 얼굴이 두꺼워도 국인들이 볼 것을 견디지 못하겠다. 너는 조정에 가서 고하여 나(의 능)을 물건을 써서 가려 달라. 이에 능 앞을 소나무 일곱 겹을 심었다.


언젠가 삼국지 위서 동이전을 읽을 때, 할아버지 선생님께서 고구려조의 왕릉 기사 이야기를 하시면서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도 이런 대목이 있으니 유심히 보도록 해라라는 말씀을 하셨지요. 삼국지의 기록과 삼국사기의 기록을 따로 보던 짐순이에게 그 날의 짧은 말씀은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지요. 덕분에 그동안 따로따로 분리시켜 놓고 보던 것을 이제는 같이 보려는 습관이 생기기는 했습니다만.. 잘 안되네요. 생각만큼은,


오늘 이야기는 또 전적으로 노태돈 선생님의「고구려 초기의 취수혼에 관한 일고찰」(『김철준박사화갑기념논총』, 지식산업사, 1983 : 『고구려사연구』, 사계절, 1999)이라는 논문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것입니다. 


동천왕 8년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풍운녀가 그 일생을 마감합니다. 그녀는 죽으며 자신을 산상왕의 옆에 묻어달라고 하지요. 실행失行, 즉 남편이 있는 여자가 딴 남자를 가까이 하는 비행을 저질렀으니 죽어서 어떻게 남편을 보겠느냐고요. 그냥 흐르는 듯 읽다보면 나름 납득이 가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참 전에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이 결혼은 형수랑 시동생이 놀아난 단순한 불륜사건이 아니라, 형이 다하지 못한 결혼관계를 동생이 채워넣는다는 것인데 이것이 어찌 부끄러운 일이겠습니까. 


그리고는 남편인 국양, 즉 고국천왕을 이야기하죠.(학계에선 장지명 시호에 쓰인 천川이나 양壤, 내內, 강崗 등의 단어는 다 같은 어휘라고 봅니다. 국양이나 고국천이나 그게 그겁니다) 이런 몹쓸 여자가 어찌 전 남편의 얼굴을 어찌 보겠어요라는 말을 하시는데, 그냥 읽으면 죽기 직전의 진심 같지만.. 이봐요. 태후마마, 당신은 이미 첫째 시동생도 건너뛰고 둘째를 스스로 남편으로 삼았던 분이시잖아요. 


고국천왕과 발기씨(아직도 이 이름은 좀 부끄러워요;;)가 

어떤 인간적인 면을 가졌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왕은 키가 아홉 척이고 자태와 겉모습이 크고 위엄이 있었으며 

힘이 능히 솥을 들 만하였고, 

일에 임하여는 남의 말을 듣고 결단하였으며 

관대하고 엄함에 있어 중용을 지켰다."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고국천왕 즉위년조의 기록밖에 없습니다. 

이도 어느 정도는 수사가 많으므로 어디까지 믿어야할지.. 

아! 키는 컸겠다. 

이 세 남자가 각각 어떤 인간적인 면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다만, 상상력을 약간 가미한다면, 

그녀의 선택은 스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요? 

왕비의 몸으로 스스로 남자를 고르고 

죽는 순간에도 영생을 같이할 남자를 고른다. 

평소에 매우 기계적으로 정치적 해석을 가하는 

짐순이도 홀릴 만큼 그녀는 매력적인 걸까요?


노태돈 선생님의 저 유언의 해석에 의하면 이미 형사취수제는 끝나고 있었고, 

서서히 부끄러운 관습이 되어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의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개가 사람을 문 것은 늘 일어나는 일이니 

사람이 죽는 정도가 아니면 신문에 실릴 일은 없습니다. 

또 갓난아이나 자기 주인을 물어 죽이는 게 아닌 이상 

개에 물려죽는 사건 수에 비해서도 적게 언론에 소개되지요. 

그러나 사람이 개를 물었다면 이건 반드시 기사에 실립니다.

(몇 년 전, 듕궉에서 실제로 그것이 일어났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파란만장한 여인의 결혼 이야기는 

서서히 저물어가는 카페 알파같은 이야기아닐까요?. 

고국천왕도 영원히 자신의 것이어야 할 여자가 동생을 선택하며 분노하였지만, 

이내 부끄러워 한다는 이야기가 나옴은,

 정말 고국천왕의 영혼이 등장했느냐는 1차원적 문제를 떠나 

그때 그 사람들이 느낀 인식과 감정의 테두리 안에서 나온 것이겠지요. 

결국, 전남편도 부끄러워하는 가운데, 하나의 시대는 이렇게 저물어갑니다.


이제 삼국지가 등장할 차례입니다. 

고구려조의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의 장례풍속을 기록한 것으로 

"그 풍속은 음란하며, 

남녀가 결혼하면 곧 죽어서 입고 갈 壽衣를 미리 조금씩 만들어 둔다. 

장례를 성대하게 지내니, 金·銀의 재물을 모두 장례에 소비하며, 

돌을 쌓아서 봉분을 만들고 

소나무·잣나무를 그 주위에 벌려 심는다"고 하였습니다.

(번역은 국사편찬위원회의 국역 중국정사조선전의 해석을 인용합니다)

마지막 부분의 돌로 쌓아서 봉분을 만든다는 것은 

흔히 알고 있는 고구려 적석총을 의미할 것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고구려사의 간단한 정리 3 - 집안에서 석촌동까지..에서) 

여기에 소나무와 잣나무를 둘러싸듯이 심는다는 대목과 

저 삼국사기의 고국천왕의 기사와 유사하지요. 

어쩌면 삼국지의 고구려 기사가 어느 시점에 쓰인 것인지

(진수의 편찬시기가 아니라 그가 이용한 원 기록의 작성연대)를 

짐작하게 할 수 있달까요?


말꼬리 -----------------

제목은 지온의 잔광Last blitz of zeon을 염두에 두었는데

생각해보니 그 제목에 맞게 갈려면 Flame이가 더 정확하겠군요.

아.. 마치 아나벨 가토, 코우 우라키, 니나 퍼플턴..

딴 건 몰라도 니나 퍼플턴은 딱 맞겠구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비련의 여인, 시마 중령은 주통촌의 여인인가..)


하지만 왜 그런지 태후 우씨를 생각할 때마다

안톤 체호프의 귀여운 여인이 떠오르는군요.


또 말꼬리 --------------

써놓고 읽어보니 귀여운 여인보다 창천항로에서

조조의 부인으로 나오는 변영롱이 더 어울리지 싶네요.

언젠가 회상으로 넘어가는 새 여인에 대한 질투나

뭔가, 자신과 함께 갈 남자를 고른다는 점에서

체호프의 수동적인 여인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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