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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동천왕 20년 - 관구검은 기록을 남겼다.. 본문

삼국사기를 읽어보자!/고구려이야기

동천왕 20년 - 관구검은 기록을 남겼다..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3. 6. 6. 01:16

원문

是役也 魏將到肅愼南界 刻石紀功 又到丸都山 銘不耐城而歸


해석

이 전역 때 위나라 장수가 숙신의 남계까지 이르러 돌을 깍아 그 공을 기록하였다. 또 환도성에 이르러 불내성에 (그 내역을) 기록하고 돌아갔다.


하하.. 분량은 윤복희 여사의 미니스커트만큼이나 짧은데, 모자이크는 묵직하군요. 비율 짱!!

언젠가 다루고 싶은 이야기인데 역량의 부족과 노력이 없음에 도전하지 못하는 것이 초기기록의 속성인데, 이걸 이야기하자면 삼국사기의 원전론과 삼국사기 편찬의 성격문제까지 건드리니 쉬운 주제는 아닙니다. 동아시아 여러나라들의 초기기록, 적어도 삼국사기나 일본서기같은 역사기록은 단일한 원전에 기초한 것은 아닙니다. 일본서기야 국가체계를 잡으며 천황가의 공식기록과 각 귀족세력들의 전승기록을 하나로 모았다는 건 알려져있지요. 삼국사기야 구삼국사로 칭해지는 고려 초의 역시기록물도 중요하게 쓰여졌지만 매우 다양한 기록들을 참조해서 만들었습니다.


아예 자체 기록이 없다면 자치통감이나 중국사서까지 긁어오기까지 하였지요. 삼국사기를 읽다보면 각 국가의 본기 내에서 편찬자의 분담을 알 수 있는 문체의 미묘한 변화도 있고요. 또 원전의 속성에 따라 다른 시각에서 본 자료들이 들어가있기도 합니다.


적어도 오늘의 짤막한 기록은 하나의 일관성을 가진 관구검의 침입 기록에서 뭔가 미묘한 문장입니다. 앞 부분의 원전과는 다른 것이지요. 그게 무언가 짐순이도 모르고 아무도 모를 겁니다. 그저 패닉 노래의 가사 한 줄을 되뇌일 뿐이지요.

""이게 무슨 냄새야?" 뭔가 썩고 있는데 그게 뭔질 모르겠어"(2집 intro 냄새)

앞 문장을 이렇게 적어놓고 자치통감과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조를 훓었지만 숙신의 남쪽에 공을 새겼다는 말까지만 나옵니다. 혹시나 싶어 관구검전을 읽으니 위의 대목이 나옵니다. 최소한 이 부분을 담당한 집필진은 관구검전을 읽었다는 것이로군요. 그러나 환도성을 함락하고 수천 명을 잡아가고, 또 동천왕을 쫓아오며 8천여 명을 잡거나 죽였다는 기록을 옮기지는 않았습니다. 적어도 김부식을 비롯한 삼국사기의 집필진들이 골수 사대주의자라는 일반의 평과는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정말 이들이 사대주의자였다면 "듕궉의 대국에게 대듬. 열라 쳐맞음. ㅋㅋㅋ 그거 쌤통. 자업자득임. ㅋㅋㅋ" 이런 대목이 들어갔을 겁니다. 개나소나 종북이 되는 세상에 개나소나 사대주의자가 되는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어느 분들에게 짐순이도 개나소나 일빠, 식민사학 추종자가 됩니다. 실제로 니 고향 니뽄으로 가란 말도 들었어요. 캬캬)


이때 비석을 두 번 세운 게 되지요. 숙신의 남쪽 경계에 한 번, 환도산 불내성에 한 번. 그 비석이 대체 뭘까는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백여 년 전 1906년에 집안 소판차령에서 도로 공사중에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소판차령이 어디있는지 찾아보기도 함들고 마침 자료도 없습니다. 대신 일본의 고구려고고학 연구자이신 아즈마 우시오와 한국고대사 전공자인 다나카 도시아키의 "고구려의 역사와 유적"(동북아역사재단, 2008)에 따르면 북쪽에서 환도성을 배후공격할 수 있는 요충지라 하는군요. 하여간 이 비가 발견되면서 머리 아픈 과제들을 던져주기도 하였지만 고구려 초기 왕도의 위치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 비석입니다. 




위의 비석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正始三年高句驪反」

督七牙門討句驪五」

復遺寇六年五月旋」

討寇將軍巍烏丸單于▨」

威寇將軍都亭侯▨」

行裨將軍領▨」

▨裨將軍」


이 비문을 풀자면

정시(正始) 3년(242년)에 고구려(高句驪)가 반(反)하자,

7장군(將軍)을 거느리고 구려(句驪)를 토벌하였다. 5(年에)

(고구려가) 다시 구략(寇略)하자, (토벌하고) 6년 5월에 (군사를) 돌이켰다.

討寇將軍 巍烏丸單于▨

威寇將軍 都亭侯▨

行裨將軍領▨

▨裨將軍

(위 사진과 판독문, 번역문은 전부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의 해당항목에서 인용하는 겁니다)


관구검의 침입이 몇 차례에 걸쳐, 

어느 기간에 이루어졌느냐에 대한 골칫거리가 생겼는데

(짐순이는 이런 위치&연대비정에 매우 약합니다) 

요건 문헌기록들과 상충되는 것이라서요. 

다만 위에 의해 침입이 이루어졌다는 것, 

그리고 이 공격으로 인해 후의 작위를 받은 자만 

100명이라는 문헌기록을 뒷받침하는 것입니다. 

오환족에서도 일부 참전한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조조가 오환족을 자기 것으로 삼은 후 참으로 요긴하게 사용했다는 증거이고, 

또 앞에서 이야기한 관구검의 대군이 상당수가 궤멸상태에 빠졌는데도 

어떻게 수행하였는가에 대한 힌트를 제공해줄 수도 있습니다.

(앞에서 한 이야기들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할 지도 모릅니다)


말꼬리 ---------------------

1.

좀 머리가 아파옵니다. 

아직 요 문제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데 하다보니 갈수록 알아야할 것이 늘어나네요. 

2.

앞 글에서 삼성 슬레이트라는 단어가 나오기는 한데 갑자기 삼성카드 검색어가..

대체 그 글에서 어떻게 삼성카드가 얻어 걸리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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