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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조선시대 지리지로 고대 사회경제사를 규명할 수 있을까? 본문

한국고대사이야기/자료로 보는 고대사

조선시대 지리지로 고대 사회경제사를 규명할 수 있을까?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5. 2. 9. 21:19

요즘 이 블로그랑 가장 거리가 먼 일을 두어개 하고 있어서 잠을 잘 못자고 있습니다. 며칠 전 "짐순은 잠 못이루고~"모드여서 멍때리는 상태로 앉아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새로 이러저러한 내용의 박사논문이 나왔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였습니다. 어느 정도 심신미약 상태로(어느 정도였냐하면 옆의 동성 지인에게 '네뇬에게 청혼할 정도로 정줄 놨다'라는 개드립을 할 정도로요) 듣는데 그에 대한 답변은 오늘 유일하게 말짱한 정신으로 존재한 순간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고중세사의 사회경제적 기반을 연구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료가 압도적으로 많다 못해 시대별 변화추이도 해석 가능한 조선시대와 달리 스냅사진 한 장 남은 상황도 행복합니다. 연구 노하우가 축적되기 전엔 그런 스냅사진 같은 사료 한줄로 수백년 단위의 상황을 해설하기도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지리정보를 다루는 자료의 경우 정치행정 분야의 서술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강원도 춘천에 대해 그 당시 인구 규모, 구성이나 산업현황 등의 자료를 보고 싶어도 고구려때는 뭐라 불렀고, 신라는 여길 뭐라 부르다, 언제 도청소재지가 되었으며 고려 때는 어떤 행정구역이었다. 이런 정보 밖에 주지 않습니다. 자료가 없다고 공부를 안할 수 없고, 불가능한 문제를 궁금해한다고 귀양을 보낼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때 눈에 들어오는 게 조선시대 지리서들이지요.


선 초에 나온 세종실록 지리지나 좀 뒤에 나온 신증동국여지승람만 봐도 눈물이 나지요. 명승지, 특산물, 지역이 배출한 주요 인물 등등 자료가 넘쳐납니다. 조선 후기에 나온 것들은 인구동향까지도 잘 정리해놓았지요. 고대사의 자료 부족을 생각하면 번개와 같은 속도로 채가고 싶은 자료이지요. 그리고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의 머리 속에는 전근대 사회의 발전은 상당히 완만하므로 어느 정도 보정치를 주면 조선 후기 지리서에 반영된 정보는 삼국시대에도 통용되는 자료로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물론 짐순이도 완만한 발전에 대해서, 또한 동양의 전근대사회는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에 집착하고 있음을 부정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규모의 차이가 큽니다. 또한 조선시대 사료의 정직성, 아니 정확성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 예를 들어볼까요?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는 당뇨로 인한 합병증으로 안질을 심하게 앓고 있었습니다. 그와 가까웠던 최우가 안질에 좋다는 약재를 선물합니다. 안식향이라고 불리는 그 약재는 동남아에서 건너온 겁니다. 이규보는 당연히 기쁜 마음에 의사에게 가져다 물어봅니다. 아마 이걸 어떻게 복용하느냐에 대해 알고 싶었겠지요. 의사는 이것은 가짜약재라는 판정을 내립니다. 약재를 외국으로부터 사올 수 있었고, 또 그것의 진위 여부를 가릴 정도의 수준이란 건 의학사 연구자들에게 맡깁시다. 그런데 재미난 건 조선시대 지리서에 안식향은 전라도 일원에서 특산물로 등록됩니다.


그놈이 그놈이냐. '갸가 갸갸가~?'하는 문제는 접어두면(만약 아니라면 짐순이는 부끄러움에 울고말 것이어요!)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죠. 기후의 변화가 식생의 변화로 이어졌다. 인근 가평은 유명한 잣 산지인데 10년 전에 어떤 농부는(전직 농업연구소 연구원) 앞으로 잣은 북한쪽으로 올라가니 사과농사를 준비한다고 했었지요. 어쩌면 기후의 변화에 의해 없던 것이 자랄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는 인간의 개발 범위입니다. 선사시대의 농업은 화전이었습니다. 빽빽하게 들어찬 원시림에 불을 지르고 재를 거름 삼아 농사를 지었지요. 뿌리와 자갈을 해치워야 했던 당시의 농기구는 크고 아름다웠지요. 강원도에서는 1970년대야 화전이 사라졌지요. 지금 우리가 농촌에서 볼 수 있는 산에만 숲이 있고, 평지엔 농경지와 민가가 있는 경관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닙니다. 숲도 휴양림처럼  여유있게 햇볕을 쬘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한 번 발을 들이면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검은 숲이지요.(점점 인간이 자연을 몰아내는 과정을 설명하는 작품이 원령공주입니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는 지금처럼 인구밀도가 높지 않았습니다. 특히 삼국시대로 올라갈 수록 사람들은 지표면 위 작은 점에 모여 살았고, 좁은 교통로를 제외하면 모두 숲이었던 적도 있지요. 삼국시대가 성과 성을 두고 벌이는 싸움인 이유는 지금처럼 넓게 퍼져 산 것이 아니라 그 성을 중심으로만 살았고, 국가의, 인간의 활동영역은 점과 선으로 연결된 수준이었던 시대입니다.(가끔 삼국시대 인구가 많다는 분들 볼 때 답답하죠. 그 말대로 하면 지금 한반도 인구는 10억이 넘을 겁니다) 어쩌면 특정한 산물은 접근하기 힘들었거나 아예 존재하는지도 몰랐을 겁니다.(요건 십이국기에서 볼 수 있는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에 쉬울까요?)


그리고 언젠가 김정호의 대동지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대동지지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가장 비옥한 초승달지역은 다름아닌 함경북도와 강원도 영서지역입니다. 나름 풍족하다는 경기-충청-전라의 서남부 지역은 물산이 없어요. 이건 과도한 수취를 피하기 위해 안나온다고 보고해버리는, 과거에 나오던 게 씨말랐다고 뻥치는 경우도 생각해야죠. 오죽하면 세금에 시달린 남자가 자신의 성기를 절단하는 일도 벌어지던 시대 아닙니까.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약간의 시대 보정을  가하면 쓸 수 있는 자료도 있지만, 항상 역사연구자들이 배우는 것이 있죠. 그 자료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 자료의 특성을 생각하지 않고 내용만 따다 쓰면 좀 위험한 결론을 낼 수 있습니다.


말꼬리 -----------------------

1. 

별로 삶에 도움이 안되는 작업만 동시에 너댓가지 진행중입니다. 머리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워낙 금방 질려하니 이것저것 다 하려면 길게 한 우물만 파는 대신 동시에 여러 우물을 교대로 팝니다. 하여간 지금도 짐순이는 실신 직전입니다. 다만 좀 있다 길게 자려고 버티고 있는 거죠. 근데 아프네요. -_-;;

2.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스 게임을 하다가 딱 한 명에게 꽃혔습니다. 짐순이처럼 청순가련 병약미소녀!!! 처음에 카드를 뽑고 얘 말하는 거 별루임.. 하다가 엔하위키 찾아보곤 엉엉엉 모드가 되었네요.(환자 사정은 환자가 안다고..) 한 번 모든 덱을 예로 도배해보고 싶지만 우리나라 판에서는 그게 쉽지 않아 보이네요.


"괜찮아, 당신이 키운 아이돌이야"..란 대사에 뽕갔습니다.


3.

일단 그 논문의 방향성만은 칭찬해야합니다. 다만 그 분석이 馬多朴家냐 M@STERPIECE냐는 일이 끝난 후에 찬찬히 확인해봐야겠군요.(근데 그게 언젠데!!!)

4. 

졸려요. 히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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