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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004. 아빠, 진흙갖고 뭐하셔요? 본문

역사이야기/세계사 뒷담화

004. 아빠, 진흙갖고 뭐하셔요?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2. 5. 22. 01:00


오늘은 아버지 이야기의 마지막 토기 이야깁니다. 

아쉽지만 이번 이야기로 놓아드려야합니다.

선사시대의 아버지를 21세기에 너무 오래 머물게 하였더니 향수병에 걸리셨군요.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래 그 전에는 전혀 필요없던 것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우선은 장기적으로 머물 집, 농사를 짓기 위한 갖가지 도구들,

그리고 오늘의 주요 아이템인 토기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수확물을 옮겼을까요?


우선 사냥을 해서 얻은 고기는 그것의 양이 얼마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주로 사냥했을 설치류라면야 꼬리나 귀를 잡고 몇 마리든지 손에 들고 올 수가 있습니다.

아이들용의 선사시대 책에는 하나같이 거대 포유류를 사냥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실상은 사슴도 사냥하기 어려운 게 당시의 상황입니다.

사슴도 당시에는 뿔이 지금보다 더 큰 종류들이 많았구요.

그 뿔에도 쉬이 뚤릴만큼의 피부를 가진 게 인간입니다.

실제로 몇 년 전 독일의 어느 공원에서 아침 운동을 하던 여인이 

무언가에 찔린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범인을 찾다보니 그 공원에 풀어놓은 사슴이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라의 사슴공원에 가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슴은 성질도 좋지 않습니다.

안전을 위해 뿔이 잘려진 상태지만 그래도 만만한 상대를 보면 공격도 합니다.

하물며 그 이상의 동물들이야 함정을 파거나 다 죽어가는 녀석을 찾아내지 않는 한

매우 어려운 것이기도 하지요.

(저번에 보니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민들이 사자가 잡은 것을 단체로 위협해 빼앗아 오기도 하더군요.

깡도 좋지, 월남 스키부대용사들도 아니고..)

무기랍시고 박물관에 전시된 것들을 보자면 원 샷 원 킬은 꿈도 꾸지 마십시오.

그저 노킬 올데스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하여튼 평생에 그리 흔치 않은 거대 사냥감을 잡았다면 

그건 숨넘어갈 때까지 손자들 괴롭힐 이야기가 됩니다.

함정을 파던, 대규모로 공격을 하던, 절벽에서 지나가는 놈한테 돌굴려서 잡던

큰 놈을 잡았다면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는 부분까지만 잘라서

옷처럼 걸치거나 자루 매듯 들쳐업고 돌아오는 방법이 있습니다.

딱히 용기가 필요한 건 아닙니다.


주로 여성들이 맡았을 채집에서도 수확물을 품안에 안고 오거나

작은 망태에 담아오는 방식을 취했으리라 봅니다.

과일이나 풀 류 같으면 아이를 안 듯 안으면 됩니다.

개중에는 나무의 속을 채취해서 가공하는 경우(현재 뉴기니 저지대에서 그리 합니다)

그 자리에서 아예 가공을 해서 줄어든 부분만 담아오는 방법을 택했을 수도 있습니다.

단단한 열매의 껍질이라던가, 넓은 나뭇잎을 여러겹 겹쳐 소쿠리처럼 만들면 간단하죠.

하여간 여기서도 용기의 필요성을 느끼진 않았을 것입니다.

식재료의 가공도 자연상태에서 크게 가공하지도 않으니 조리시에도 필요하진 않았을 겁니다.

과일이나 풀 류는 그대로 먹고 고기야 뼈나 나무에 꿰어서 구워먹으면 될 일.

토기와 같은 용기류의 등장이 농경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말은 농경 이전엔 없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물론 간단히 담는 망태류는 있었겠지요.

그러나 토기는 4할은 못치고 그저 담기만 할 줄 아닌 쓰레기가 아닙니다.

토기는 과학입니다.


평소에 아이들에게 토기의 탄생을 설명할 때 하는 1인극이 있습니다.

그때 하는 이야기를 여기에 옮겨보고자 합니다.

그런데 말과 율동이 종이에 갖혀지다보니 맥빠지는 건 양해 바랍니다.


우리의 바보같은 아버지는 농사를 짓기 시작해 첫 수확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잘 익은 낱알들을 집에 가져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생각에 절로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밀과 보리가 자란다. 밀과 보리가 자란다~’

가지고 간 ‘망태’에 곡식들을 붓고서 어께에 매고 샬랄라 샬랄라 춤도 추며 집에 돌아옵니다.

집에는 어린 딸내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분이 날아갈 듯합니다.

‘아가~, 아빠가 농사지어왔다~~~’

달려온 딸내미에게 잔뜩 담아온 망태를 보여려고 땅에 내렸는데 기분이 이상합니다.

‘악! 누가 훔쳐갔어! 내 곡식들을 누가 슬쩍해갔어!!!’


그렇습니다. 망태는 텅텅 비어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뭠가 싶어서 자기의 뺨을 때려보기도 하고, 찬물을 뒤집어 쓰기도 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모릅니다.

딱 한 알 남은 알곡이 ‘다 떠났지만 제가 남아있는 희망이어요’라고 해줄리도 없고,

오는 중간에 누굴 만나지도, 다른데 들르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기쁜 맘에 집으로 날라온 기억밖엔 없습니다.

아니, 잠시 물을 버리고 싶어 동구 밖 아름드리 나무에 비료를 줄 적에

참새들이 날아와 다 먹어간 걸까?

조금 숨가쁘게 오다보니 이마와 등짝에 땀이 맺혔을 때

열을 식혀준 바람이 들고간 것일까?

그래서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과 살짝 걸어놓은 것일까?

별별 생각이 다 떠오릅니다.

그렇지만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가 울듯말듯한 얼굴을 한 딸 아이의 얼굴을 보니

이 사람도 한 사람의 어른입니다.

그래 결심했어! 범인을 찾아 곡식을 되찾아오자!


산 건너 물 건너 바다를 건너기 전에

아이의 손을 잡고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며 바람에게 물어보고, 새들에게 물어보고

들판의 꽃들에게 물어봐도 아무도 답해주지는 않았습니다.

누구냐, 우리가 먹을 곡식을 훔쳐간 녀석이. 반드시 찾아 혼내주리라

아버지는 이런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아버지의 우뚝 솟은 산과도 같은 의지는 햇님이 열을 내지 않더라도

팔월 한낮에 아이스크림 녹듯 흐믈흐믈 해져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아까 수확을 했던 장소에 곡식들이 그대로 쌓여있었거든요.

아버지의 얼굴과 등짝에 땀줄기가 이구아수 폭포처럼 흘러내리고

딸은 한심하다는 듯 쳐다봅니다.

말은 안해도 ‘부끄러워!’이런 의미란 거 다 압니다.

다음날  동네방네 소문 다 펴저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는 아버지는

숲으로, 들판으로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집에, 마을에 있으면 사람들이 자기를 바보라고 수군거리는 듯하여,


그렇지만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소낙비가 스쳐간 후, 말라버린 땅을 보고 뭔가가 떠오른 아버지는

저녁 무렵에 마을로 돌아올 때 뭔가를 들고 돌아왔습니다.

곡식을 담아도 줄줄 새지도 않고, 

넓은 돌덩어리를 얹고 집안에 모셔두면 오래오래 보관할 수도 있고,

물을 붓고 끓이면 날로 먹을 때 딱딱하던 알곡이 야들야들 잘도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어디에나 흔한 것은 흙이니 돌도끼처럼 쉽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본 척도 안하고 고개를 돌리던  딸도 ‘우리 아빠 천재임’하고 으스대며 다닙니다.

어쩌면 토기는 이런 이야기들 속에서 만들어진 물건일는지 모릅니다.


다음주 화요일에는 “005. 텔레토비 동산의 자유가 사라지는 날”로 찾아뵙겠습니다.

석기와는 다르다! 석기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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