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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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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세계사 뒷담화

006. 상제님이 보고계셔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2. 6. 5. 01:00

“어머, 옷고름이 비뚤어졌어요.”


상제上帝님의 정원에 모인 정인貞人들이 

오늘도 천사같이 천진한 웃음을 띠고 높은 문을 지나간다.

더러움을 모르는 몸과 마음을 짙은 색의 관복으로 감싸고.

옷자락의 주름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얀 옷고름이 펄럭이지 않도록, 

차분히 걷는 것이 이곳에서의 몸가짐. 

물론 입궐시간에 닥쳐 아슬아슬하게 뛰어가는 등의 품위 없는 정인 따위 존재할 리도 없다.


성탕成湯(은의 건국자)시절에 건립된 이 관아는 전통있는 점술기관이다.

은, 박에 머물던 시절의 옛 모습처럼 나무가 많은 이 지역에 상제님께서 지켜보시는 가운데 

언제나 나라를 위해 점을 치는 정인들의 정원.

시대는 한참 을 변하고 변한 오늘날에도 상제님의 온실에서 

순수배양된 정인들이 점만 친다는 시스템이 아직도 남아 있는 귀중한 관아인 것이다.


그 정인, 우사祐巳도 그런 평범한 정인의 한 명이었다.


은행 가로수길 끝에 있는 두 갈래 길에서 누군가가 우사를 불러세웠다.

상제님의 정원이었으니까 순간 상제님께서 부르셨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곱고 맑은 목소리였다.

누군가 말을 걸면 먼저 멈춰선 후 ‘예’하고 대답하면서 몸 전체를 돌려 돌아선다. 

갑작스런 일이라도 허둥대는 모습을 보여선 안된다. 

더군다나 머리만으로 ‘돌아본다’ 같은 행동은 정인으로서 실격.

어디까지나 우아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그러니까 돌아서서 상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본 후, 가장 먼저 무엇보다도 웃는 얼굴로 

안녕하시옵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사의 입에서 ‘안녕하시옵니까’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

그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한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기 때문에.


“저기…… 소인에게 무슨 일이신가요?”

겨우겨우 자력으로 반쯤 해동한 후 우사는 반신반의하며 물어 보았다. 

“불러 세운 것은 저. 그 상대는 당신. 틀림없어요.”

틀림없다고 해도 ‘아뇨 틀렸어요’라고 대답하고는 도망쳐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 우사의 사정 같은건 알 리 없는 그 사람은 살짝 미소를 띄우며 똑바로 우사에게 다가왔다.

신분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가까이에서 얼굴을 뵐 일 같은 건 없었다.

제대로 목소리를 들어 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허리까지 늘어뜨린 긴 머리는 어느 시녀가 감겨주었냐고 묻고 싶어질 정도로 찰랑찰랑. 


그는 빈 양손을 우사의 목 뒤쪽으로 돌렸다.

“꺄악~!!”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순간 알지도 못한 채 우사는 눈을 감고 머리를 꼭 움츠렸다.

“옷고름이 비뚤어져 있어요.”

“엣?”

그렇게 말하고, 그 사람은 “안녕히”를 남기고 먼저 궁전을 향해 걸어갔다.

뒤에 남겨진 우사는 상황이 점점 파악됨에 따라 머리에 피가 몰려갔다.

틀림없어.

저 분은 임금님. 

아아, 성함을 입에 담는 것만도 과분하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평생의 광영이다.

부끄러움에 증발 직전이다.

‘이럴 순 없어’

우사는 한동안 망연히 서 있었다.

동경하는 임금님과 처음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이렇게 부끄러운 에피소드라니. 너무해.

상제님 심술쟁이.

분함 섞인 눈으로 올려다본 상제님은 평소와 다름없이 정결한 미소를 띄우고서 

작은 정원 가운데에 가만히 서 계시는 것이었다.


* 위의 닭살 돋는 글은 “마리아님이 보고계셔”(콘노 오유키 작, 서울문화사 간행) 1권 첫머리의 오마주입니다. 오마주!



출처는 마리미테 1기 홈페이지. 생각해보면 이 1기가 방영될 때가 애니 참 재미있게 볼 때였죠. 석사논문쓰던 시절의 거의 절대적인 낙이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를 고민하던 인간은 사후 세계를 상상하고,

왜 하늘은 갑자기 번개를 ‘내리찍을까’를 알 수 없어

스스로의 행동, 혹은 동료의 행동을 의심하던 인간들 중에서

거대한 대륙에 제국을 건설한 인간은 자신들의 성공을 남에게 알리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스스로도 이해할 수 있는 해답으로 하늘의 신을 상상하게 됩니다.

은殷, 아니 상商을 세운 이들은 그 신을 상제라 불렀습니다.

거대한 강의 홍수, 농사의 풍흉, 날씨의 변화,

더 나아가 상족이 세상을 다스리는 힘은 바로 상제에게서 나온다고 믿었습니다.


현대인은 그것을 사기라고 생각합니다.

남을 지배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남을 속이는 일을 할 수 밖에 없다고요.

그러나 그것은 모든 것을 그들보다는 더 많이 안다는 오만에서 나온 것이죠.

물론 번개가 내리친다해도 이불 뒤집어쓰고 하늘에 용서를 빌진 않겠지요.

허나 그들에게 있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도 그것을 진심으로 믿었다는 것입니다.

여러 현상을 상세하게 브리핑해주는 분석가는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나는 안 믿는데 남을 믿게 하려면 고도의 연기력이 필요하겠지만

나도 믿고 남도 믿는 일이라면 깊은 신심만 있으면 됩니다.

하늘이 이상한 모습을 보이면 그들 역시 괴로워 했습니다.


그래서 상에서는 두 가지의 일이 중요했습니다.

하늘에 존재하는 상제와 그가 보내 내려왔고 

죽어 다시 돌아가 하늘의 일부가 된 선조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과

무언가를 결정해야하는 순간마다 하늘의 의지를 묻는 행동이 바로 그것입니다.


제사는 지금처럼 모두 다 자기와 가까운 조상에게 지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핏줄의 우월성을 입증할 수 있는 자만이 참여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왕이나 왕족, 높은 귀족들만이 제사를 지내 스스로의 힘을 재확인하는 자리였고,

가까운 조상에서 먼 조상으로 갈수록 가문 내에서 힘없는 자는 걸러져

마지막 단계의 시조에 대한 제사는 요즘말로 하면 종손만이 지낼 수 있는

권력의 위치를 정기적으로 재확인하는 것이 제사의 의의였습니다.

조선시대 양반가문의 제사만 해도 제사상의 배치, 

식순과 진행의 강약조절에 대한 의견제시, 채택여부는 가문 내 권력의 지표였습니다.

특히나 상족의 왕은 하늘을 대신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자로서

그에게 위엄과 영광을 준 선조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세상에 설 수 있었습니다.

이 제사는 ‘정기적으로 면허를 갱신’ 받는 일이었습니다. 


상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후대 왕조와 달리 여러 씨족에서 돌아가며 왕을 배출하고 있었고

혈통의 짙고 옅음에 따라 다양한 층위가 형성된 분권화된 권력구조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 다양한 집단의 의견을 조율하여 하나의 행동으로 이끌어야 했습니다.

상에서는 그를 위해서 점술이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하늘의 의지를 묻는 행동이지요.

원리는 간단합니다.

소의 다리뼈나 거북의 등껍질의 특정 부위에 집중적인 열을 가하면

일정한 방향으로 갈라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점복을 행하는 자는 인두와 같이 뜨겁고 뾰족한 물체로 뼈를 지지며 질문을 던집니다.

예를 들어 A방향으로 갈라지는 쪽에 ‘저 야만족을 떼찌떼찌할까요?’라고 묻고

B방향으로는 ‘저 야만족과 사이좋게 지낼까요?’라고 묻습니다.

갈라지는 방향에 따라 긍정과 부정의 답변을 던져놓고 

“자, 상제님께서 떼찌떼찌에 찬성하셨고, 평화롭게 지내는 것은 반대하셨으니 전쟁하자!“

이렇게 전쟁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과 찬성하는 의견을 상제의 이름으로 통합시켜

단합된 행동을 이끌어나가는 것이 상의 행동방식입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은 의문을 품게 되실 겁니다.

앞에서 그들은 정말 믿었다면서 갈라지는 점괘를 조작하는 것은 사기가 아닌가.

다시 말하지만 그들은 진지했습니다.

그것은 하늘의 의지와 나의 생각이 같다라고 스스로가 강하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서 고대인과 현대인의 차이입니다.

제사와 점복에 관한 것은 거의 극소수의 인간만이 장악하고 있으며

거기서 벌어지는 모든 것은 다 상제의 뜻이라는 생각이 그들의 머리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늘의 의지를 믿고 두려움 없이 행동할 수 있었겠지요.


다음주 화요일에는 “007.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 앞에서 결투를 했다”로 찾아뵙겠습니다.

적이여, 너의 등짝을 보자!


한때 바탕화면으로 쓰던 그림입니다. 마리미테 그림 중 가장 좋아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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