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마르틴 반 크레펠트, 보급전의 역사(플래닛미디어, 2010) 본문
언제나 그렇듯 그래24님께는 항상 신세지고 있습니다..
1. 책소개라면 당연히 비중높은 전반부 : 이 책 읽어라, 두 번 읽어라.
저번에 영향을 준 책을 이야기할 때 언급이 된 책인데
다시 한 번 여기에 대해 글을 써야할 것 같았다.
뭐랄까 사람들이 그 맥락은 쫓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것에만 집중한달까.
그런 것이 그렇게 맘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로버트 앤슨 하인라인이 스타쉽 트루퍼스를 쓴 후
그런 작품 단 한 편 써놓고 군국주의 작가로 몰리는 현상을 보는 기분이랄까?
(그 소설은 한 소년이 어떻게 군인으로 성장하는가가 사실의 핵심이고,
덤으로 존 키건이 말한 연대주의-?-랄까 군대사회가 어떤 생각으로 움직이는가를 다룬 것이다)
우선 이 책은 전쟁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루트왁의 전략과 함께 반드시 봐야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전쟁이 벌어지는 것은 일견 화려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 말을 하면서도 토가 나오는 것은 사선을 넘는 자리에 직접 서보면 절대 못할 소리라 그렇다)
그 전쟁이란 현상을 지탱하는 하부구조는 무엇인가를 이처럼 확연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군대 다녀온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전방으로 갈 수록 물자의 부족은 심해진다.
어디서는 새로 보급받은 속옷에 매직으로 이름 써놔야 할 정도인데
어느 보급창에서는 보급병이 매일 갈아입고 버리기도 한다.
또 간부들의 삥땅도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서부전선 이상없다의 마지막처럼 그저 사령부의 장부에는 이상없이 돌아간다고 기록된다.
그걸 개인의 부정으로 전부 치환하는 것은
인간이 만든 제도 자체를 완전무결한 것으로 착각케할 우려가 있다.
이 책은 이것을 이해하게 해준다.
그동안은 전쟁을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한 관점에서만 이 책을 보아왔는데
이제는 사회를 움직이는 시스템을 움직이는 것에 대한 관점으로도 볼 수 있게 되었다.
당을 비롯한 동북아의 율령제를 이해하는데도
신라의 골품제에 기반한 관제조직을 이해하는데도 이 책이 준 영향이 컸다.
적어도 황제가, 왕이 전쟁을 명령하니 백만대군, 혹은 십만대군이 질서정연하게 전진하였고
승리하였다는 표피적 관찰을 면하게 해준다.
(아무나 왔노라, 싸웠노라, 이겼노라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적어도 그는 이런 카피문구를 날려놓고 뒤이어 아주 자세한-물론 자기입장에서만- 기록을 남겼다)
30년 전쟁이 어떻게 독일을 황무지로 만들어버렸는가,
나폴레옹의 전격전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왜 소 몰트케는 슐리펜작전을 고쳐서 후대의 욕을 먹는가,
그렇게 칭송받는 자인 에르빈 롬멜이 벌인 아프리카 전투의 실상은 어떤 것이었는가
이걸 읽어보면 그게 간단히 지껄일 수 없는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
나폴레옹의 "전쟁은 위장으로 한다"는 금언을 이처럼 잘 설명해주는 예는
북송 때 어느 관리가 서하와 상대하기 위해 감숙성으로 10만병력을 파견하는데
50만명 분의 물자가 필요하다는 분석을 내놓은 것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현대적인 분석으로 소모율까지 계산해내었다.
전쟁은 가급적 피해야 하는 것이지만 굳이 하려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의 손에 움직여야 하고
전쟁을 후일에 평가하는 사람들도 이걸 알아야 한다.
2. 약간 힘이 딸리는 후반부 : 아니 자네 지금 무슨 말을 하는겐가?
전반부에서는 마치 역사공부나 전쟁사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읽을만하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솔직히 요즘 인터넷에서 마구 날리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혀야 한다는 생각이다.
하부구조, 솔직히 칼 막쓰는 아저씨의 책을 읽지도 않고,
(선배가 공부하려면 그의 친구가 쓴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읽으라고 했는데
친구 말도 와이리 어렵노?? 포기했다;;;;;;;;;)
경제학은 정말 꽝이라 제대로 알고 쓴다는 말은 못하겠다만
적어도 드러난 빙산만 보지 않고 그 아래를 봐야한다는 정도는 어렴풋이 알고는 있다.
한국은 IT강국이라는 말을 하고 요즘은 강국의 위상이 무너진다고들 한다.
그저 컴퓨터 많이 쓰고, 신기종으로의 기변이 빠르고, 회선이 제일 잘 갖춰져 있고,
스마트폰이 전체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한다는 것이 강국이라는 이유다.
그래서 독자적인 OS도 못만들고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지 못하니 망하는 거라고들 이야기한다.
독자적이나 혁신의 개념부터 정립하자고 이야기했지만
과연 강국인가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단순 통계에 나타난 수치로는 주목해야할 나라이기도 하다.
야구에서 피타고라스 승률, 그러니까 총득점의 제곱/(총득점의 제곱+총실점의 제곱)으로 나오는 값은
그 팀의 진짜 실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쓰는데
이보다 승률이 높으면 잠재 실력보다 승리를 더하는 것이고
반대라면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고 한다.
다른 경제지표들과 비교해볼 때 한국의 IT피타고라스 승률은 꽤나 흥미로울 것이다.
어지간한 나라보단 높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상만을 분석해줄 뿐이다.
오늘 아침에 전규현님의 "고객이 전문가"라는 흥미로운 글이 올라왔는데
말로야 IT 강국이라는 나라가 하부구조에서는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단순히 물질적인 시설문제가 아니라
그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 기본적인 개념이 들어가있지 않다.
아주 악독한 갈고리 선배이던 시절 '안다'는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해왔는데
'니 대가리만 표피적으로 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발가락의 세포까지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10년간 봉인해둔(내 9살 때의 생활은 와일드했구나;;) 말을 해야할 때라고 본다.
그냥 게시글이나 남의 글에 댓글달며 허세 좀 그만부려라.
파리지앵 흉내내면 정말 파리지앵 되는거냐?
3. 다시 책 얘기 : 뜬금없는 넋두리
이 책은 1982년에 육군병참학교, 2002년에 육군대학에서 보급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을 했었다.
처음 접한 게 육군대학버전으로 화일을 구해봤는데
플래닛 미디어버전은 그 전보다는 매끄럽게 번역되었다.
그의 다른 작품인 과학기술과 전쟁도 이렇게 깔끔하게 나왔으면 좋았을텐데
적어도 하드리아누스의 성벽을 하드리아인의 성벽으로 오역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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