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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설계두 - 서서히 끓는 물을 눈치채다.. 본문

삼국사기를 읽어보자!/신라이야기

설계두 - 서서히 끓는 물을 눈치채다..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3. 4. 9. 18:29

원문

<一本作薩>罽頭 亦新羅衣冠子孫也 嘗與親友四人 同會燕飮 各言其志 罽頭曰 "新羅用人論骨品 苟非其族 雖有鴻才傑功 不能踰越 我願西遊中華國 奮不世之略 立非常之功 自致榮路 備簪紳劒佩 出入天子之側 足矣" 武德四年辛巳 潛隨海舶入唐 會太宗文皇帝親征高句麗 自薦爲左武衛果毅 至遼東 與麗人戰駐蹕山下 深入疾鬪而死 功一等 皇帝問 "是何許人" 左右奏新羅人薛罽頭也 皇帝泫然曰 "吾人尙畏死 顧望不前 而外國人 爲吾死事 何以報其功乎" 問從者 聞其平生之願 脫御衣覆之 授職爲大將軍 以禮葬之


해석

<또는 살이라고도 한다>계두는 신라의 귀족의 후예다. 일찍이 친구 4명과 같이 어울려 마시길 즐겼는데, 각자 그 (마음에 품은) 뜻을 말하는데 계두가 말하기를 "신라에서 사람을 등용하는데 골품을 논하니 진실로 그 (높은) 종족이 아니라면 비록 빼어난 재능과 탁월한 공이 있어도 능히 그를 넘지 못한다. 나는 바라건대 서쪽 중화국으로 건너가 세상에 전하지 않을 지략을 떨쳐 흔치 않은 공을 세워 스스로 영광의 길에 도달하겠다. 관복을 입고 검과 장식을 차고 천자의 곁에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라고 하였다. 무덕 4년 신사년(621)에 몰래 배를 타고 당에 들어갔다. 태종문황제가 고구려를 친히 칠적에 스스로 자원하여 좌무위의 과의가 되었다. 요동에 이르러 고구려 사람들과 더불어 주필산 아래서 싸울 적에 깊숙이 들어가 치열하게 싸우다 죽으니 그 공이 1등이었다. 황제가 문기를 "그는 어떤 사람인가"라고 하자, 좌우에서 '그는 신라사람 설계두'라고 답하였다. 황제는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우리 당나라 사람은 오히려 죽기를 겁내어 두리번거리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데, 외국인으로서 우리를 위하여 죽기까지 하니 어떻게 그 공에 보답할 수 있을 것인가"라 따르는 자에게 물었다. 그 평생의 염원을 듣고는 어의를 벗어 (그 시신을) 덮어주고 대장군의 자리를 추증하고는 예로써 장사지냈다.


삼국사기 권47, 열전7..

오늘, 설계두를 다룰까 대세와 구칠을 다룰까 하다가 조금 짧은 것 같아 설계두를 골랐습니다. 둘 다 진평왕 대의 인물이고 또, 신라사회의 한계를 깨닫고 무언가를 시도한 사람이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신라의 신분제에서 특이한 것은 왕족인 진골이 국가의 요직을 모두 차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처럼 왕족과 양반이 어느 정도 같은 신분제에 묶이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왕족만 모든 것을 가진 체제입니다. 여기서 이야기할 6두품에서 4두품의 신분이 마치 조선시대 중인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실은 이들이 왕족에서 밀려난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는 일반 귀족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겁니다. 굳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시로 북한을 들 수 있습니다. 김일성의 가족과 소위 말하는 혁명후예라고 불리는 김일성 최측의 건국세력 후손들이 모든 것을 가진 국가체제와 유사하달까요. 고구려나 백제의 신분제를 골품제적인 신분제라고 하지만 오로지 왕족 중심의 체제는 신라뿐이라는 점에서 이 신분제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김일성의 직계 후손들을 백두혈통이니 뭐니 부르는 것과 주민을 단계별로 분류해 대우하는 것, 극단적인 평양중시를 생각해보면, 부카니스탄의 목표는 천년왕국 건설인가 봅니다.. -_-;;)


중고기의 금석문들을 보면 중고기 이전, 그러니까 지증왕 이전엔 소위 말하는 6부도 어느 정도 균형 상태는 존재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왕은, 왕의 기반은 강합니다만 다른 세력들도 어느 정도 대등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힘은 가지고 있었달까요? 어느 순간부터인지 각각의 세력들은 서서히 왕에게 종속되고, 한기부(아무래도 이들이 석씨랑 무슨 관련을 가진 것 같습니다만..)처럼 중앙정치판에서 소멸하는 집단도 생겨납니다. 내물왕 때부터 본격적인 김씨 왕계가 이어지면서 각각의 세력들은 서서히 왜소해지는 것이지요. 적어도 오늘 이야기할 설계두의 시대 이전에 그것이 정리되어간 듯 하지만 여전히 과거의 잔향이 남아있고, 또 그것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존재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설계두는 그의 집안을 설명하는 부분에 의관자손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의관자손이니 다리 따윈 장식이라는 것을 모르는 분의 후예란 말입니다. 설계두이니 설씨겠고, 이 성씨는 6두품에 속합니다. 이들을 대구 옆 경산에 존재했던 압독국의 지배세력 출신이라고 하기도 합니다만 이 시점에 와서는 왕족보다 아래에 놓인 것, 그것도 꽤나 밀려나기 시작한 것으로 봐야겠지요. 사실 신라 전체 신분제에서 본다면 설계두의 집안도 저 하늘 높이 어딘가에 위치합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30대 그룹 정도는 된달까요. 그러나 그 자리에선 아래가 보일 리 만무하고, 또 삼성이나 현대에 비해서 가난하고 약한 것은 맞지요. -_-;;


그런 그가 신라에서 사람을 등용할 때, 제일 높은 신분이 아니면 안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분명 이 시대는 통일기 이후처럼 아주 꽉 막힌 시절은 아닌데 서서히 뭔가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는 몰래 밀항하여 당으로 건너갑니다. 그는 신라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 바다를 건너 서쪽으로 가자. 거기서는 진골이니 6두품이니 하는 것은 없다. 불세출의 지략으로 찬란한 공을 세워, 영광의 길을 걷겠다. 고관의 의관을 착용하고 칼과 장식을 패용한 후 천자의 곁에 출입한다는 것. 그것이 나의 꿈이다..라는 것이죠. 칼을 찬다는 것을 보니 그는 무관의 길을 택했습니다. 어차피 과거를 통한 문신의 길은 어렵습니다. 그나마 민족을 가리지 않는 무관의 길이라면 신라인으로서의 제약이 적지 않겠냐는 것이지요. 그 당시로는 꽤나 합리적인 정보를 가지고 진로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645년의 당태종의 침입 때 좌무위의 과의가 되어 참전하고 

안시성의 포위전에서 고연수와 고혜진의 15만 군대와 싸울 때, 

용감히 싸우다 전사하게 됩니다. 

공을 세우고 전사한 이의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그가 신라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중국인도 아니고 따로 동원한 유목민 기병도 아닌데 

자원했다는 게 화제가 된 모양입니다. 

그를 따르던 사람들(나름 신라 귀족이니 가신이라고 해야 할지, 

좌무위에 배속된 부하들이라 해야 할지 요건 생각하기 나름이겠군요. 

전자의 가능성이 높습니다만..)에게서 그의 소원을 듣고는 

그를 대장군에 추증하고 입고 있던 옷을 시신 위에 덮어주고는 장례를 지냅니다. 

그는 이미 죽었지만 군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예우를 받은 셈입니다.


그는 왜 신라를 떠났을까요? 

그냥 저 글에 보이는 면만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라면 그 정도는 다 이해하실 겁니다. 

여기서 역사를 읽을 때 봐야하는 점은 그 표면'만'이 아닙니다. 

보다 더 아래쪽에 흐르는 물길도 봐야 합니다. 

그럼 넌 무얼 말하고자 하는건데라고 물으신다면

짐순이는 아마 신라사회는 서서히 끓어가는 냄비 속의 물과 같아 보인다고 할 겁니다. 

펄펄 끓는 물에 개구리를 넣으면 바로 반응합니다. 

그러나 서서히 데워지면, 모르고 있다가 삶겨진 개구리가 되고 말죠. 

그러나 어떤 개구리들은 그것을 일찌감치 깨닫기도 할 겁니다. 

한 역사적 인물을 감히 비유하는 게 허용된다면, 

설계두는 매우 빨리 깨달은 개구리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학계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갑갑한 신분제가 완성되는 것은 통일기라고 봅니다. 

심지어 전쟁 중의 왕은 대귀족을 숙청할 수 있는 힘을 가지기도 합니다. 

아직 통일기 이전, 

특히나 진평왕대라면 전통적인 체제의 잔광도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추는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커다란 흐름이 시작되는 과정에서 

설계두는 빠른 선택을 취한 것은 아닐까요?


말꼬리 --------------

중간에 언급된 좌무위, 그리고 과의와 대장군, 군공포상을 담당하는 부서에 대해서는

내일 자세한 설명이 따라가야 할 것 같군요.

(아싸~ 내일 쓸 거 생겼다~~)


당육전을 뒤져봐도 과의에 대한 내용이 없고,

아무래도 구당서, 신당서의 백관지를 뒤져야 할 것 같네요.

아.. 할 거 늘어났다. 날로 먹을 거라 생각했는데.. 우습게 봤어..(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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