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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온달 05 - 이 남자, 굴러들어온 호박에 슈팅! 본문

삼국사기를 읽어보자!/고구려이야기

온달 05 - 이 남자, 굴러들어온 호박에 슈팅!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09. 8. 11. 01:01

아~!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처참한 것이 어~었다~!


공주와 온달의 첫 만남은 아름답지도, 유쾌하지도 않았습니다. 나중에 자식들 앞에서 머리끄덩이를 잡혀도 할 말 없는 온달. 어찌보면 마누라 잘 만났다고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용케 결혼했구나 하는 심정으로 봐야할 것입니다.

- 원문
公主出行 至山下 見溫達負楡皮而來 公主與之言懷 溫達悖然曰 “此非幼女子所宜行 必非人也 狐鬼也 勿迫我也” 遂行不顧

- 번역문
공주는 (집에서) 나와 산 아래에 이르렀을 때 온달이 느릅나무 껍질을 지고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공주가 그에게 품었던 속내를 말하니 온달이 발끈하여 "여기는 어린 여자가 마땅히 올 곳이 아닌데(나타나니), 필히 사람이 아니고 (사람을 후리는) 여우귀신이구나. (너는) 나를 괴롭히지 말라"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갔다.


지난 글에서는 나무 껍질이라고 해석했는데 楡皮는 느릅나무 껍질이라고 해석해야 옳습니다. 느릅나무의 껍질은 이뇨제나 염증 등을 치료하는 약재로도 쓰이고 암에도 좋다는데 온달이 속이 좋지 않아 채취하러 간 걸까요?

앞에서 온달의 노모가 먹을 게 없어서 나무 껍질이라도 벗겨먹으러 갔다 했으니 배가 고파서 갔겠지요. 마침 속 껍질은 구황식물로도 쓰인다고 합니다. 물에 울거내어 소나무 속껍질 가루와 섞어서 먹는 방식이지요.(느릅나무에 대한 설명은
여기로)

하여튼 공주는 온달을 찾아가고, 온달은 채취한 느릅나무 껍질을 집으로 가져가기 위해 산을 내려오다 만나게 됩니다. 남녀의 첫만남이라 이 얼마나 애틋한 것입니까만은 두 남녀의 만남은 어긋나버리지요.

먼저 짚고 싶은 것은 공주의 돌격. 좀 멀고도 먼 이야기지만 일본 신화에서 창세신인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창공에서 만날 적에 이자나미가 '이토록 멋진 남자'라 말하니, 이자나기가 여자가 먼저 말했다고 화를 내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하지요. 다시 떨어졌다가 둘이 만났을 때, 이자나기가 먼저 감탄사를 던진 후에야 두 남녀는 하나가 됩니다.

여성의 가치를 남성에 비해 한 없이 낮게 보았던 시대인지라(물론 후대인 조선시대보단 매우 나은 편이지만요) 남자의 구혼이나 아버지의 결정이 중요하던 시대에 집나온 여자가 먼저 돌격을 하다뇨. 처음엔 온달보고 '줘도 못#는 色姬', '고자'라고 욕을 했다만 다시 보니 수긍할만한 상황입니다.

온달의 대응 역시 앞서 말한 것처럼 잘난 것은 없죠.
굴러들어온 호박을 넝쿨채 걷어차다니요.
정말 앞서 말한 욕을 먹어도 할 말 없는 상황이라 생각할만 합니다.
하지만 저 대사는 온달을 더 바보스럽게 보이게 하는 극중의 장치일런지 모릅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까 우습게 보이지 온달의 대응은 그다지 나쁜 것은 아니었습니다.
먼저 그의 말대로 공주가 나타난 곳은 어린 여자가 올만한 자리,
더구나 사랑을 고백하고 청혼하는 자리는 더더욱 아니었지요.

게다가 인간이 자연을 억눌렀다고 표현할 수 있는 지금과 달리
지금으로부터 천사백년 전의 자연은 인간에게 두려운 곳이었습니다.
산이나 고갯길에 여우나 늑대가 대낮에 나타나는 것은 수십년 전에도 있었으며
지금보다 개활지가 극히 적어 인간의 공간이 섬과도 같았던 시절엔
위험요소가 매우 많았습니다.
(지금은 숲을 편안한 쉼터라고 생각했지만 과거의 숲은 어두운 원시림이었습니다)
그런 요소들을 인간은 신비주의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지금보다 인간은 더 많이 떨어야 했습니다.

그러니 온달이 불쑥 튀어나와 '나랑 같이 살자'는 공주의 말을
내 뱃속에서 평생 살자는 말로 알아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겁니다.
어느 남자가 "감각의 제국"(혹은 빨간망토)을 찍자는데 좋아할까요?

나중에 결혼하고 애를 낳고 나서 둘이 배꼽을 붙잡고 떼굴떼굴 굴렀을 일이지만
두 사람이 만났던 그 시점에는 심각하고도 엉뚱한 만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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