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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책 소개] 이태진, 『새한국사』, 까치, 201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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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태진, 『새한국사』, 까치, 2012.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2. 5. 25. 17:00

저작권은 까치글방에 있습니다. 출처는 홈페이지(www.kachibooks.co.kr)


좀, 재미난 한국사 책이 나왔습니다.

재미난 한국사야 좀 거슬러 올라가자면 김당택 선생의 『우리한국사』(푸른역사)와 같은 책이 있습니다.

(좀 과격하다면 과격하지만 이 분의 책을 참 좋아합니다. 부끄부끄~ -_-;;;)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신명호 선생의 『한국사를 읽는 12가지 코드』(다산북스)와 같은 책도

나름 신선한 구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뭐 우주굇수같은 책이라면 김정 선생의 『국사시간에 세계사 공부하기』(웅진)도 있습니다.


최근 두 박스 분량의 책을 사놓고 미처 소화를 시키지 못하는 와중에

또 한 권의 재미난 책이 나왔습니다. 오늘 소개할 이태진 선생의 책입니다.

이태진이라는 이름하면 국사편찬위원장으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연식있는 전공자들은 조선시대 사회구성의 변화에 대한 연구성과들을 떠올리실 것이고

약간 최근의 전공자들은 고종과 대한제국 멸망의 불법성으로 알만한 분입니다.

오래전부터 외계충격설과 조선후기 사회변화에 대한 주제도 다루고 계셨는데

이것을 조선후기에 한정해서 보던 그동안의 연구와는 달리 

한국사 전체로 넓혀서 하나의 체계로 구성하셨습니다.

(모두다 조선시대 전공자가 될 것은 아니니 간단하게 읽고 싶으신 분들은

서울대에서 나온 『한국사특강』(개정신판)에 나온 

「16ㆍ17세기 장기 자연재난과 붕당정치의 전개」를 읽으시길 권합니다)


조선시대사연구자들 자랑이 실록 완독이라고 하던데(처음부터 끝까지 전부입니다)

이 분이야 그 부분에서는 상대가 없는 분이란 명성답게

실록에 나오는 기상재이와 전세계의 기상이변 현상을 비교 연구하여

16~17세기에 전지구적으로 기온 저하로 상당한 곤란을 겪고 

그것이 사회변동에 큰 요인이 되었다는 연구결과로 내놓기도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이게 뭔소린가 싶기도 하였는데

나중에 지구과학이나 환경사를 공부하다 보니 그렇게 만만치는 않은 내용이더군요.


기후라는 것이 항상 고정된 것은 아니고 태양이나 자전축 문제에 따라 

극단적으로 변하기도 하고 (6억 3천만년 전에는 영하 50도까지 내려가기도 했다지요)

국지적으로도 미묘하게 변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얼어있는 어느 섬이 그린란드라고 불리고 사람들이 상당수 거주했다는 것은

역사적 근거는 있는데 믿을 수 없는 상황이긴 했습니다.

지금보다 더 따뜻한 기후라 그 곳도 살만했던 것이죠.

그러다 다시 기온이 내려가니 그린란드의 거주지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습니다.

17세기엔가 영국 런던에선 7월에 템즈강이 얼어붙어 스케이트 대회가 열리고

날아가던 새가 얼어죽는 일도 있었답니요.

실록에도 여름의 기온이 극단적으로 내려갔다는 기록이 존재합니다.

이런 것들을 그동안 다른 정치적 변화를 은유한 것이라거나

기록 자체의 착오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것의 실존여부, 이것의 원인,

또 그것이 인류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를 명쾌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전공이 아니라 그 부분은 잘 모르겠지만

12세기(그러니까 의천과 이자겸, 인종과 김부식, 정중부의 시대입니다)에 일어난 다양한 사건과

기후변화에 대한 해석,

그리고 통일신라 중대에서 하대의 자연재난에 대한 부분은 충분히 수긍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고려시대 질병에 대한 책을 보니 유달리 그 시대에 전염병이 늘어나고

왕들은 병에 걸려 죽는 일이 잦았습니다.

고려사를 봐도 12세기 경에 중국 의학 수입에 열을 올린 기록이 많습니다.

한참 전에 나오긴 했지만 신라의 멸망과 자연파괴, 자연재해를 연관짓는 연구도 있었구요.


그런 점에서 신봉승의 조선왕조 오백년과 같이 오로지 인간에 의해서만

역사가 움직인다는 해석은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아직 그걸 느끼고 있지 못하고 있지요.

이러한 시각이 가미된 연구결과가 나오면 반응들이 좀 서늘합니다.

신진연구자라면 한 소리 들을 수도 있지요.

그런데 이태진 선생 정도의 학자가 이런 접근을 하면 다음 주자들의 짐이 줄어들지요.

솔직히 방어력 되시는 분이 몸빵을 해주시면 감솨~ 이런 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약간은 걸리는 면이 있습니다.

기후야 규모와 요인에 따라 다른 건 중ㆍ고등학교에서도 배우는 것인데

어떤 것은 급격히 일어나는 것이 있고, 또 다른 것은 매우 천천히 일어납니다.

그 요인도 인간이 개입된 것으로부터(이를테면 삼림벌채)

외계충격이나 지각변동 등의 다양한 요인이 발생하는데

조선 이전의 기록(적어도 고대사)에서는 그것을 구별해내기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현상을 겪고 기록한 사람들도 그 요인이 뭔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죠.

(이를테면 신라의 멸망원인 중 고전적 이론으로

경주가 배모양인데 큰 돌 모양의 무덤이 많아 배가 가라앉을 수 밖에 없다란 것이 있는데

지금이야 웃을 이야기지만 당시인들은 매우 심각하게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또, 1800년대 초에 인도네시아에서 화산폭발이 큰 게 일어났는데

외계충격과 상관없이 그 화산재로도 지구 기온이 전반적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말인 즉, 물론 기록에 나온 소행성충돌 말고도 요인은 매우 많아

일반화를 하기엔 아직 자료나 연구가 충분치 않다는 단점이지요.

아직 왕성한 활동을 하시는 분이니 충분히 연구 확대의 여지는 있고

이런 연구를 통해 눈을 뜨는 뒷세대들이 충분히 보강할 수 있는 것이긴 합니다.


하지만 맨 앞에 기술한 것처럼 이 책은 매우 재미난 책입니다.

그리고 또 앞으로 어떤 연구들이 있어야 하는가란 이정표도 되지요.

은퇴하는 시점에서도 왕성한 연구활동을 한다는 모범제시로도 기억할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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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은 어제 이야기의 연장선에서 쓴 리뷰입니다.

2. 국민카드(RGM-79 소유)의 협조와 영풍문고 종로점의 포인트 제공이란 혜택을 보긴 했으나 저자, 출판사와는 아무 관련 없음을 밝힙니다.

3. 선생이란 표현은 사실 동북아 문화권의 극존칭이고, 학계에선 꽤나 예의를 갖춘 표현입니다. 우리만 님자를 붙이길 좋아하지요. 원래, 글에는 존칭 생략하고 쓰고 실제 대화에서는 님자를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글은 연구논문도 아니고 또 이런 습관을 모르는 분들에게 오해받기 싫으므로 적절히 선생이란 호칭을 씁니다. 이러한 태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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