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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원문 七年 春三月 王以無子 禱於山川 是月十五夜 夢天謂曰 "吾令汝少后生男勿憂" 王覺語羣臣曰 "夢天語我 諄諄如此 而無少后奈何" 巴素對曰 "天命不可測 王其待之" 秋八月 國相乙巴素卒 國人哭之慟 王以高優婁爲國相 해석7년(203) 봄 3월, 왕은 아들이 없으므로 산천에 (아들을 낳기를) 빌었다. 이달 15일 밤에 꿈에 하늘이 이르러 말하기를 "나는 너의 소후로 하여금 아들을 낳게 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왕이 일어나 군신들에게 말하기를 "꿈에 하늘이 내게 이와같이 말하였다. 그러나 나에게 소후가 없으니 어찌해야하는가" (을)파소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천명은 가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왕은 그 때를 기다리면 됩니다"라 하였다. 가을 8월에 국상 을파소가 죽어 나라 사람들이 곡하기가 매우 서러웠다. 왕은 ..
지난 주말과 오늘에 걸쳐 약간의 시험이 있었습니다.토요일에 용산역에서 춘천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려는데 발치에 만원지폐 뭉치가 걸리더군요.그리고 오늘 아침 종각역에서는 오천원 지폐가 눈에 띄었습니다.원체 병약하지만 소심한 저라 그냥 지나치고는 아쉬움에 돌아보기는 하였는데(그거 다 줏었으면 한국군사사 1권, 혹은 은하영웅전설 소설판 4권 가까이 샀겠지요. -_-;;)그냥 속으로 이거 누가 몰래 시험하는 거였음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요.아아~ 너는 착한 아해로구나~!뭐, 혼자만의 망상이고, 그저 하루하루 어른들의 물이 들어가는 19세의 우울함입니다. 과거의 역사서에 태평성세의 표현으로 많이 애용되는 것 중 하나인 것이땅에 물건이 떨어져도(혹은 황금이기도 합니다) 하루가 가도록 줍는 자 없었다..라는 말입니다...
원문十六年 秋七月 墮霜殺穀 民饑 開倉賑給 冬十月 王畋于質陽 路見坐而哭者 問 何以哭爲 對曰 臣貧窮 常以傭力養母 今歲不登 無所傭作 不能得升斗之食 是以哭耳 王曰 嗟乎 孤爲民父母 使民至於此極 孤之罪也 給衣食以存撫之 仍命內外所司 博問鰥寡孤獨老病貧乏不能自存者 救恤之 命有司 每年自春三月至秋七月 出官穀 以百姓家口多少 賑貸有差 至冬十月還納 以爲恒式 內外大悅 해석16년(194) 가을 7월, 서리가 내려 곡식을 죽였다. 백성들이 굶주리니 창고를 열어 곡식을 풀었다. 가을 10월 왕이 질양에 사냥을 나갔다가 길에서 주저앉아 울고있는 자를 발견하고 ‘어찌하여 울고있는가’라고 물었다. 그가 대답하기를 ‘저는 매우 가난하여 매번 품을 팔아 어머니를 모셨는데, 올해는 그럴 수가 없어 품팔 곳이 없어 도저히 한 되, 한 말의 끼니도 ..
고구려사를 처음 공부를 시작하면서 했던 맹세가 있는데절대 광개토왕릉비에 대한 것은 건드리지 않는다..였습니다.100년의 광개토왕릉비에 대한 연구사만 추려도 책 몇 권이 나올 것이고세세하게 따지는 거 잘 못하고 큰 그림만 그리기 좋아하는19세 여아에게는 그야말로 베트남 정글로 M16 한 자루 들고 들어가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딱 한 번 비문을 통독해보고 다시는 안들쳐 봅니다.그냥 누가 지나가다 언급하면 그런갑다... 이러는 정도.그래서 이 글을 쓰는 걸 좀 주저했습니다.자세한 기사는 아래 링크를 참조해 주세요. 제2의 광개토대왕비'에 무슨 내용 새겨져 있나(연합뉴스 1월 16일 기사)처음 공개한 중국의 국가문물보의 기사는 여기 링크를 참조해주세요.듕궉 국가문물보 기사(1월 6일자 기사)단 듕궉 간체라 그냥..
원문秋九月 命有司 奉迎發歧之喪 以王禮葬於裴嶺 王本因于氏得位 不復更娶 立于氏爲后 해석 왕은 슬프기도 하고 [한편] 기쁘기도 해서 계수를 궁중으로 끌어들여 잔치를 베풀어 가인(家人)의 예로 대접하고 또 말하였다. “발기가 다른 나라에 군사를 청하여 우리나라를 침범하여 죄가 막대한데, 지금 그대가 그에게 이기고도 놓아주고 죽이지 않은 것은 족한 일이나, 그가 스스로 죽자 심히 슬프게 통곡한 것은 거꾸로 과인이 무도하다고 하는 것이냐?” 계수가 슬픈 얼굴로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대답하기를 “신이 지금 한마디 아뢰고 죽기를 청합니다.” 하니, 왕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계수가 대답하였다. “왕후가 비록 선왕의 유명으로 대왕을 세웠더라도, 대왕께서 예로써 사양하지 않은 것은 일찍이 형제의 우애와 공경의 의가..
요즘 한국사교재의 현대사 부분을 만드는 중이라현대사책이 필요했습니다.(한참 얄타, 포츠담, 테헤란, 카이로회담 부분을 쓰는데 보는 책마다 내용이 다 달라 오후에는 돌기 전이었습니다)언제나 그렇듯 영풍문고 종로점에 갔다가 이 책이 나온 걸 확인했습니다.다 나오는데 한참 걸리겠다고 생각했는데의외로 광속으로 만들어내고 있군요.지난 번에 1,2권 나온 걸 보고 포스팅한 게 얼마 전의 일인데다시 나오는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오늘 가보니 5권까지 나왔군요.봄이 다 가기 전에 52권 전권이 나올 것 같습니다. 왼쪽은 최초 복각본(2003년에 전질 70만원짜리로..),오른쪽이 방금 나온 복각 2쇄본입니다.95년에 나온 초판도 가지고 있지만 지금 여기 없는지라.. 초판이 4,200원, 하드커버본이 7,900원, 세번..
고구려 고분벽화는 1958년 고 김용준 선생의 책이 나온 이래 북한에서야 워낙 본토니까 몇몇 책이 나오긴 했지만학계에 기여한 건 고구려고분벽화라는 덩치큰 도록이고남한에서는 고 김원룡 선생의 책 이후 그닥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죠.자료가 중국과 북한. 아예 통관조차 안되었습니다.이쪽의 연구프로젝트는 죄다 공정, 공작 등의 단어를 쓰고,죄다 앞 머리에 모택동, 김일성의 교시란 게 적혀있으니 될 턱이 없습니다.실제 그쪽 책 펴보면 그 아스트랄함이 아주 크고 아름다울 정돕니다.그래서 일본을 통해 걸러진 것만 겨우 들어올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그나마 이것을 소장한 기관은 정기적으로 '회사'분들이 점검을 다녔죠.그냥 열람만 하려고 해도 좀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습니다.90년대에 역사학대회같은 곳에선 ..
원문延優遣弟罽須 將兵禦之 漢兵大敗 罽須自爲先鋒追北 發歧告罽須曰 “汝今忍害老兄乎” 罽須不能無情於兄弟 不敢害之 曰 “延優不以國讓 雖非義也 爾以一時之憤 欲滅宗國 是何意耶 身沒之後 何面目以見先人乎” 發歧聞之 不勝慙悔 奔至裴川 自刎死 罽須哀哭 收其屍 草葬訖而還 해석연우는 아우 계수를 보내어 병사들을 이끌고 (발기의 군대를) 막게 하였다. 계수는 스스로 선봉이 되어 패한 자들을 쫓았다. 발기가 계수를 보고 말하기를 “너는 지금 늙은 형을 해하려 하느냐”고 하자 계수가 형제에게 무정할 수 없어 감히 해치지 못하고 말했다. “연우는 나라를 양보함이 없으니 비록 의롭지는 못하다. 그러나 당신은 한 때의 분노로 조국을 멸하고자 하니 이는 어쩌자는 것이냐. 육신이 죽은 후에 어떤 얼굴로 조상들을 대할 것이냐?” 발기가 그 ..
원문發歧知難 以妻子奔遼東 見太守公孫度 告曰 "某高句麗王男武之母弟也 男武死 無子 某之弟延優與嫂于氏謀卽位 以廢天倫之義 是用憤恚 來投上國 伏願假兵三萬 令擊之 得以平亂" 公孫度從之 해석발기는 (일이 이루어지는 게) 어려움을 알고 저자와 함께 요동으로 떠나서 (요동)태수 공손도를 만나 말하기를 "나는 고구려왕 남무의 형제올시다. 남무가 죽고 자식이 없어 동생인 연우가 형수와 공모하여 즉위하였소. 천륜의 의를 저버렸으니 이에 화를 참을 수 없어 상국에 투항하는 바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데병사 3만만 빌려주셔서 그들을 쳐 난을 평정케 해주시오." 공손도가 이 말에 따랐다. 빨리 어서 이 시리즈를 끝내고 싶어요. 주인공 이름을 부르기 참 민망해요. 소드마스터 척준경이 드라마나 영화화 안되는 이유가 있어요. 오직 그의 ..
고구려를 구성하는 원래 씨앗 중 하나는 나라는 집단입니다.나? 我? I, my, Mine?자신을 가리키는 1인칭 대명사가 아니라 하나의 집단을 가리키는 고구려만의 어휘랄까요?저번에도 말했다 시피 고구려가 탄생한 지역은 산이 많습니다.산과 산줄기가 땅을 여로 조각으로 갈래갈래 나눠버리죠.아무래도 산과 산이 교통로를 막아버리기 때문에 이동은 제한적이고굳이 합쳐야할 필요가 생기지 않는 한 대부분의 시간을 고립적으로 보내기 딱 알맞은 환경이지요. 구글지도에서 가져온 고구려의 첫 수도 홀승골(오녀산성) 일대의 지형입니다.고전기 그리스에서 도시국가들이 하나의 국가로 합치지 못하고 항쟁만 거듭한 이유를 생각나게 하는 지형입니다.고대 그리스의 전쟁은 신 앞에서의 결투다 지형 얘기는 여기서 했으니 보실 분만 봐주시고요...
원문發歧聞之大怒 以兵圍王宮 呼曰 “兄死弟及禮也 汝越次簒奪大罪也 宜速出 不然則誅及妻孥” 延優閉門三日 國人又無從發歧者 해석발기가 그 것을 듣고 크게 노하여 병사들을 이끌고 왕궁을 포위하여 말하기를 "형이 죽으면 동생에게 미치는 것 (물려받는 것)이 예이다. 너는 순서를 뛰어넘어 찬탈하였으니 그 죄가 크다. 마땅히 바로 나온다면 즉 죽음이 처자에게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연우는 3일 동안 문을 열지 않았다. 나라 사람들은 또 발기를 따르는 자가 없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1990년의 3당 합당 이상의 사건입니다. 말이 좋아 합당이지 이것은 야합이라고 할만합니다. 野合, 말그대로 들판에서 들러붙는다는 말입니다. 이런 단어를 풀어놓으면 현대인이 고대인에 대해서 떠올리는 성적 방종을 연결지을 수도 있겠습니다. 어쩌..
원문優起衣冠 迎門入座宴飮 王后曰 “大王薨 無子 發歧作長當嗣 而謂妾有異心 暴慢無禮 是以見叔” 於是 延優加禮 親自操刀割肉 誤傷其指 后解裙帶 裹其傷指 將歸 謂延優曰 “夜深恐有不虞 子其送我至宮” 延優從之 王后執手入宮 至翌日質明 矯先王命 令羣臣立延優爲王 해석(연)우는 의관을 바로하고 (왕후를) 문에서 맞이하여 연회를 베풀었다. 왕후가 말하기를 “대왕은 죽고 자식은 없는데, 발기는 연장자로 당연히 왕위를 이어야 하는데 첩에게 이르기를 ‘다른 마음을 먹었다’고 합니다. 난폭하고 무례하니 그래서 도련님을 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연우가 예를 더하여 친히 칼을 칼을 잡고 고기를 썰었다. 실수로 그 손가락에 상처가 나니, 왕후는 치마의 띠를 풀어 그 상처가 난 손가락을 싸매주었다. 장차 (왕후가) 돌아가려 할 때, 연우..
고구리가 아니라 고구려라니깐! - 초록불님의 포스팅 오늘 그것은 알기 싫다 6회를 듣다가 이 블로그의 이름이 나와서 깜짝 놀랐습니다.저같은 사람에게야 그저 고마우신 분이고, 일부 분들에게는 이가 갈릴 초록불님의 블로그,초록불의 잡학다식이 잠시 지나가듯 소개가 되었지요.고구려사의 간단한 정리를 쓰면서 한 번은 고구려를 어떻게 불려야 하나를 다루어야 하는데사실 이 분보다 더 잘쓸 수는 없습니다.그래서 고구려사의 간단한 정리 2 - 고구려의 국호에 대하여..를 쓸 적에약간은 편한 맘으로 쓸 수 있었습니다. 저 포스팅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기본 배경을 이야기하자면중국어에서의 한자음은 시대에 따라 달랐습니다.영어에서 중세 고지 스코틀랜드어, 중세 저지 스코틀랜드어.. 등으로 다른 것이 나오듯 말이죠.오래전부터 현재..
뭔가 ‘간다무’스런 제목이긴 합니다만한 국가의 건설을 이처럼 잘 납득할 수 있는 제목은 또 없습니다.자매품으로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도 있는데이 두 말을 한 데 모으면 하나의 고대국가가 성장하는 국면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합니다.고대국가의 형성과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정도를 넘어서 무식한 수준에 있느니만큼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습니다.필요하시다면 고대사를 다룬 개설서들을 읽어주세요.제 고대국가 형성에 대한 이해도란 것이 아래의 기념비적인 그림 이상 넘어가진 않습니다. 앞에서 고구려사의 기원이 한참 위로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지만우선은 삼국사기의 기년에 따라 고구려의 건국과정을 이야기해보기로 하지요.이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37년에 부여에서 탈출한 주몽이 졸본지역으로 내려와고구려라는 나라..
원문初故國川王之薨也 王后于氏 秘不發喪 夜往王弟發歧宅 曰 "王無後 子宜嗣之” 發歧不知王薨 對曰 "天之曆數有所歸 不可輕議 況婦人而夜行 豈禮云乎" 后慙 便往延優之宅 해석처음에 고국천왕이 돌아가셨을 때, 왕후 우씨는 (죽음을) 비밀로 하고 상을 공표하지 않았다. 밤에 왕제 발기의 집에 가서 말하기를 "왕에게는 후사가 없으니, 그대가 마땅히 물려받아야 합니다"라 하였다. 발기는 왕의 죽음을 알지 못하고 대답하여 말하기를 "하늘의 운은 반드시 돌아갈 바가 있으니 가벼이 논할 것이 아닙니다. 하물며 부인으로서 밤에 돌아다니는 것이 어찌 예에 맞는다 하겠습니까"라 하니 왕후는 창피하게 여겼으나 다시 연우의 집으로 갔다. 고국천왕이 죽었습니다. 국가의 안정을 위해서 빠른 정권이양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왕비 우씨는 왕의 죽..
본격적으로 고구려사 이야기를 함에 앞서서과연 어떤 토양에서 자랐길래 고구려가 그런 역사를 가지게 되었느냐는 이야기를 먼저해야 합니다.과거 제국주의 시절에 백인들이 자기들의 우월함을 환경결정론으로 수식을 했었죠.그것은 결국 피압박민의 역사에도 적용되어 이런 환경에서 컸으니 이 모양이라식민지배를 받는 게 앞으로의 역사에 도움된다는 ‘걸왕의 개가 짖는’ 소릴 했다지만역시나 역사적 진화에 있어서 환경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환경이야기를 함에 있어 과거 제국주의 합리화 논리가 아니라재레드 다이아먼드의 “총ㆍ균ㆍ쇠”처럼 ‘인간이 환경에서 거둘 수 있는 자원은 무엇인가’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봅니다.왜냐하면 꼭 그 환경이라고 그렇게 흘러간다는 공식은 전혀 성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구려 건국기의 자연환경..
원문山上王 諱延優 一名位宮 故國川王之弟也 魏書云 "朱蒙裔孫宮 生而開目能視 是爲太祖 今王是太祖曾孫 亦生而視 人似曾祖宮 高句麗呼相似爲位 故名位宮云" 故國川王無子 故延優嗣立 해석산상왕의 휘는 연우이고 또는 위궁이라 하며 고국천왕의 동생이다. 위서에 이르기를 "주몽의 후손 중에 궁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태어나면서 눈을 떠서 볼 줄 알았다. 그가 바로 태조(왕)이다. 지금 왕은 태조의 증손으로 또한 나면서 볼 수 있었으니 사람들은 증조 궁과 같다고 여겼다. 고구려에서는 서로 같은 것을 일러 위라고 부르니 고로 이름을 위궁이라 한다"고 하였다. 고국천왕에게 아들이 없어서 고로 연우가 뒤를 이었다. 동천왕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그의 아버지인 산상왕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어쩔 수 없어요. 비록 국사책에 나오지 ..
"온달과 온군해는 중앙아시아에서 왔다" 지배선 선생님이라면 모용씨의 연만 가지고 평생을 파신 분입니다.특히 국내에 몇 분 되지 않던 위진남북조시대 전공자시기도 합니다.(요즘은 좀 늘어난 것 같군요)이분의 연구는 4~5세기 고구려사를 연구하는데 필수적인 것이기도 합니다.아무래도 미천왕대부터 장수왕대까지 전연~북연까지 이르는 이 국가군國家群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나중에는 고선지에 대한 연구성과도 남겨주셨지요.특히 이 분야에 대한 책은 거의 없던 상황에서 매우 귀한 가치를 갖습니다.(당장 떠오르는 다른 자료래야 룩 콴텐의 유목민족제국사-민음사, 대우학술총서-에서 약간,수잔 휫필드의 실크로드 이야기-이산, 2001- 정도?)다만 '유럽문명의 아버지, 고선지'란 괴랄한 결론의 책도 있습니다만(탈..
지인들 중에는 역사학 전공자보다 고고학 전공자가 많습니다.석기랑 토기랑 뒹굴링도 오래 하고 그랬는데도(쿠라시나 카나 이전에 먼저 굴렀어요)매번 볼 때마다 외계문물을 보는 것 같습니다.고고학 논문은 아예 외계 문헌이라고 하죠.그래서 국가형성에서 이론 쪽은 좋아해도 세부 각론은 하나도 모릅니다.정말 모릅니다.이 간단한 정리를 기획하며 되도록 문헌사적 정리 위주로 가자고 했는데한 열 편이면 고구려사 글 나오겠지..라고 했는데아뿔싸!! 프랑스 비웃으며 베트남전 참전한 미국애들 심정이 딱 지금 이해됩니다.아무리 문헌사쪽 이야기만 하자고 해도 건국 환경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데문제는 정말 솔직하게 자연환경이라면 모를까 고고학적 환경은 하나도 모른다는 것!(내가 괜히 후기사 전공하는 게 아냐!!!!!) 다음 주쯤이면 ..
원문三年秋七月 王田于平儒原 白狐隨而鳴 王射之不中 問於師巫 曰 "狐者妖獸非吉祥 况白其色 尤可怪也 然天不能諄諄其言 故示以妖怪者 欲令人君恐懼修省 以自新也 君若修德 則可以轉禍爲福" 王曰 "凶則爲凶 吉則爲吉 爾旣以爲妖 又以爲福 何其誣耶" 遂殺之 해석가을 7월 왕이 평유원에서 사냥을 할 적에 흰 여우가 따라오며 울었다. 왕이 그것을 활로 쏘았으나 맞추지 못하였다. 무당에게 물었더니 답하기를 "여우란 것은 요망한 동물로 상서롭지 못한 것입니다. 하물며 흰 색이라면 더욱 괴이할 따름입니다. 그런즉 하늘이 능히 고운 말로 타이를 수 없기에 요괴란 것으로 보이고자 하는 바는 임금님으로 하여금 두렵게 하여 (자신을) 성찰코저 하는 것이니 스스로 새로워지란 뜻입니다. 임금님이 만약 덕을 쌓으시면 즉 가히 화가 복으로 바뀌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