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본문

어떤 미소녀의 금서목록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2. 8. 23. 21:29

누가 '당신에게 가장 영향을 준 책은 뭡니까'라고 물어본다면

우선 미야자키 이찌사다의『중국중세사』(신서원), 재래드 다이아먼드의『총,균,쇠』, 

그리고 야콥 부르크하르트의『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푸른숲)을 들겠습니다.

물론 그 외에도 여러 권 있지만 이들 책만큼은 아닐 겁니다.

총,균,쇠를 제외한 두 권의 책은 래너드 코테트의『야구란 무엇인가』와 같이

언젠가 쓰고 싶은 책의 모범이기도 합니다.


19세 청순가련 병약미소녀가 병역에 종사하고 있을 때

천반부는 다이아먼드와 같이 했다면, 후반부는 부르크하르트와 같이 했습니다.

아예 이 책을 베고 잤죠.

옆으로 누워자는 편이라 어지간한 놈으론 높이가 맞지 않으니 이걸 베개 아래 둔 것도 있지만

아예 이 책만을 베고 잔 날도 많았습니다.

처음에 종이 포장지로 쌌더니 거기에 기름이 배어 나중에 보니 원 표지까지 얼룩이 졌더군요.

계속 읽으니 뜯어지려는 책장은 딱풀로 보강을 하고

하여간 마지막날까지 삼국사기랑 같이한 추억 어린 책입니다.


사실 학교 다닐 때는 서양사는 거의 듣지 않고 수업 첫날과 두 번의 시험만 들어갔습니다. 

서양사 전필도 시험은 봐서 권총은 면하고 D-로 때울 정도였죠.

반이상 들었던 유일한 수업이 서양"고"대사.(뭐 중국사도 중세사까지만 들었습니다)

그러다 부대에서 책은 읽고 싶은데 학교처럼 책 열댓권을 한 번에 펴놓고 읽진 못하니까

어쩔 수 없이 서양사라도 봐야겠다고 잡은 게 르네상스였습니다.

그 와중에 이 책과의 인연이 생겼죠.

총균쇠와 함께 이 책은 한국고대사만을 바라보던 좁은 관점을 해소시켜주었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이상한 것에 집중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지만(-_-;;;;)

재미난 건 그 전에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세로줄 판본도 가지고 있지만

몸이 자유로울 때는 이 책을 사놓고도 그닥 관심을 주지 않았다는 거죠.

원래 세로줄 책에 익숙하지 않다면 그럴만 한데 의외로 옛날 책을 더 잘보는 체질인데 말이죠.


르네상스란 단어는 부르크하르트 이전에도 존재한 역사용어이긴 하지만

르네상스가 하나의 역사시대로 생명을 얻은 것은 이 책의 역할이 지대합니다.

어제 글에서 말한 것처럼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후대의 평가도 있지만

어정쩡하게 넘어가던 그 시대를 제대로 마주볼 수 있게 해준 것만은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이 책이 없었다면 베른손이나 호이징거나 퍼거슨의 책이, 

조르지오 바사리의 르네상스 화가들에 대한 생생한 증언은 빛을 보지 못했겠지요.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이것은 하나의 영광이 아닐까 싶네요.


왼쪽은 푸른숲판, 오른쪽은 한길사판


적어도 4종의 번역본이 선을 보였고, 현재 동서문화사판과 한길사판은 구할 수 있습니다.

(동서문화판은 『르네상스 이탈리아 이야기』라는 제목이라 심히 꺼려집니다.;;)

푸른숲판본은 절판된지 오래라 구하기 힘듭니다.

한동안 지방 수업 많이 한 이유가 이 책과 존 키건의『세계전쟁사』복본을 구하려는 것이었죠.

그러다 우연히 하나를 더 구했는데 얼마 전 종로3가 알라딘에 갔다가 아주 새것이 있길래

아무 생각도 안하고 사버렸습니다. 아놔..


한길사판은 볼만한데 이 판본 나올 때 광고가 주석도 완역했다는 것이었는데

그동안 아무 신경을 쓰지 않다가 오늘 문득 생각나서 두 판을 비교해보니 차이가 없군요.

푸른숲판은 미주로 처리했을 뿐, 주석도 다 달려있습니다.

좀 과장광고지 싶은데(사실 여기에 혹하기도 했지만.. 근데 주석은 안읽었죠;;)


그나저나 책 리뷰도 아닌 잡설인데 할 수 없이 금서목록 밖에 갈 곳이 없군요..

(이런게 그야말로 땜빵포스팅)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