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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0 21:48


※ 일단 이 이야기는 예전에 쓴 글 "역사적 맥락, 사회적 경제"의 후속글이다. 그리고 벼멸구같은 놈들을 위해 쓰는 글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읽겠지. 쩝..


요즘 한일관계의 악화로 인해 징용공이나 종군위안부(일본군 성노예)라는 단어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전자는 이번 관계악회의 도화선이 되었고, 후자는 한국의 일부 학자들(라고 자칭하는 …… .)이 그 존재를 부정해서다. 그 논지의 역겹냐 아니냐를 떠나서 한 번 화끈하게 짚고 넘어가야할 때가 되었다. 그 부분이야 현대사를 다루는 분들이 더 잘할 문제니 그 사실과 관련한 역사적 맥락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20세기 중반의 사건을 왜 21세기에 이야기하는가


어떤 이들은 왜 이제와서 위안부 문제를 이야기하느냐고 말하며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근거로 사용한다.


그냥 말그대로 읽는다면 이것은 하등의 문제가 없다. 이 문제에 공소시효가 있는지조차 의문이지만 여튼 사건의 주모자 및 실행자가 다 죽고 없을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 답은 안다. 모르는 척하면서 속으론 '그때 이야기하지, 왜 이제와서 이야기하는가? 혹시 노년에 돈타먹으려고 개수작거는 거 아녀?'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안그냐?


그래 짐순이두 늬덜이 모른다고 속/아/주/고 친절히 이야기해보자. 아무리 뇐네들이 지하철안에서 현대 한국사회의 성관념이 문란해졌네, 아니네 떠들어도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7080년간으로만 거슬러가도 여자가 성폭행을 당하면 판사가 이미 엎지러진 물, 가해자랑 결혼하라고 판결 내리던 시절이다.(결혼하면, 그러니까 사건의 "책임"을 지면 가해자는 처벌을 면할 수 있었다) 남자가 여자를 강간하려다 혀를 압 속에 넣은 걸 끊었다고 여자가 재판정에 서야하던 것이 영화로도 나온 게 지난 세기 후반이다. 왜 70년대 미워도 다시 한번같은 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을까? 이혼한 여성에게 양육권이 주어지지 아니하던 시대였다. 


그 때보다도 더 보수적인 시절에 태어난 여성들에게 그것을 고백하는 일이 쉬웠을까? 그나마 환향년 취급은 안받았겠지만 그 사실이 알려졌을 때 그 분들 중 상당수는 광목 한 단 들고 뒷산으로 갔을 거다에 네 목을 건다.(그래 낙성대에서 잎뜯는 벼멸구같은 너들 말야) 남편이, 아이들이 이해한다고 치자. 세상은 모두 따뜻하게 안아줬을까? 그 시대에 그 폭로를 한다는 건 지푸라기 들고 마왕성 쳐들어가기보다 더 빡센 일이었는데, 그 지옥에서 개고생하고 살아온 할매들보고 하라고?


늬덜이 모르는 척하는 그 고백의 시점도 알만한 사람들 다 죽고, 이제 나보다 더 윗사람 없다고 할 때쯤, 또는 이젠 입밖에 내어도 덜 치떨리는 시기가 온 뒤에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오늘 돌아가신 네덜란드 할매도 여기서 생존자들의 행동을 보고 용기를 냈다더라. 거긴 또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모르겠다만 적어도 우리가 아는 네덜란드는 우리보다 보수적인 데는 아니잖아?


이영훈과 그 일당들이 종군위안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예 몰랐을 리 없다. 일본군에게 몸을 주어야했던 여성들이 없었다는 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일본에 의한 강제성이 없었다는 게 주장이지. 그들이 제시하는 "사료"에는 그것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말대로라면 높으신 으르신이 중국집에 가서 "마음대로 시켜, 나는 짜장면" 이칼 때 삼선짜장을 외치고도 아무런 일이 없어야 한다. 그 주장대로라면 통일주체 국민회의를 스위스의 직접민주주의보다 더 민주적인 제도로, 부카니스탄을 진정한 사회주의 낙원으로 주장할 수도 있다. 5월의 광주에선 북한의 지령을 받은 폭도들이 빈탄창으로 나선 군인들을 뚜까패고 총을 뺏어서 실탄을 채운 다음 날 쏘지 않으면 니 등짝을 본 후 네 엄마도 보겠다고 협박한 거라고 말할 수도 있다. 


써놓고 보니 ㅂㅅ같네. 근데 늬덜 주장이 그래. 그럼 어느 식민지에서 모든 식민지인들이 그렇게 열정적으로 전투력, 노동력으로도 모자라 정조를 팔 수 있나. 뭐? 내선일체라고? 아~ ㅆㅂ, 할 말을 잃는다. 내가 졌소. I am a milk cow. 



2. 맥락을 부정하는 비인간적인 '항'문방법


앞에서 논의를 해야한다고 말했는데, 한국에서 역사학자들이 친일파의 찌꺼기 취급을 받는데는 대중이 원하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 면도 있긴 하다. 아주 속 시원하게 사이다 탄산을 터트려 버섯구름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거뜨리 아주 이거인듯, 혹은 아닌듯 이러고 있어. 그리고 실제로 매우 건조하게 연구를 이룰 경우 좀 욕먹을 상황도 온다고 본다. 환제국을 인정하지 않음 다 식민사학의 졸개야.. .


인문학으로서의 역사학과 사회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의 차이기도 한데, 자료에 접근하는 것이 다르다. 역사학은 객관적으로 보기보다 그 자료를 헤집고 아주 옘병을 떨어가며 오체분시를 하고 이야기를 하는 족속들이다. 왜냐하면 자료를 만든 것들이 그따위로 주관과 객관을 의식하던 무의식으로 그랫던 아주 범벅을 만들어 놓았거든. 경제학은 자료의 정직함에 무관심하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다만 역사학보단 더 건조한 자료를 본다. 어디가 옳고 어디가 그른 것은 아니다. 그냥 두 종자가 그렇게 키워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역사학에서는 그 방법론이 옳고, 경제학에서는 그런 접근이 가장 적합한 것이다.


문제는 그 둘이 만나는 지점이다. 원래 풀뜯는 방법으로 가야지, 초식이 육식하고 육식이 채식할 수는 없다. 다만 서로의 특성을 이해한 후 조심스레 접근해야지. 역사학의 자료는 경제학자의 자료보다 더 봅잡한 작성과정을 거친다.(다시 말하지만 복잡하니 더 고차원적이라는 게 아니다. 걍 태생이 다르다고!!) 그런데 그에 대한 맥락 이해없이 읽으면 오독이 나온다는 거다.


이를테면 어느 만화에선가 제갈량이 손권 앞에서 조조를 디스하며 '저 개객기가 권력을 잡으니 중원의 인구가 반으로 줄었다!'는 식의 발언을 한다. 여러 자료를 보면 인구가 준 것 같기도 해. 하다못해 삼국지 겜을 하더라도 황건적의 난부터 조조가 짱먹을 때까지 도시의 인구가 팍팍 줄지. 게다가 이 미친 유부녀 킬러가 서주에선 아주 작두를 휘둘렀지. 정말 조조가 그 사람들을 다 죽였나? 그랬음 지금 중국의 10억 인구가 어케 나오나. 그 전에 씨말랐지. 물론 전란과 인위적인 기근에 많이 죽긴 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인구가 호족들의 예속민이 되었지.(이같은 일은 팔왕의 난 이후에 다시 한 번 일어난다)


구놈의 조선 후기와 일정 초 인구 이야기도 하자. 인구가 대폭 늘어났단다.(아주 이놈의 조상들이 나라잃은 좌절감에 밤 일만 했구만. 으이구~ 짐승들!) 전근대에 동아시아의 왕조가 사람 머리 수를 세던 방식과 현대의 인구통계 방식에 대한 자료 많다. 조선 초 지리지, 조선 후기 읍지, 총독부의 통계. 모두 찾으면 다 나오니 함 제대로 읽어봐라.(그러고보니 짐순이는 특산물만 뒤지느라 인구 얘긴 안읽은 것 같다) 정말 밤일하다 그리 힘줘서 쑥쑥 만든 건지(병사를 밭에서 캔다던 제정로씨야도 그건 못했다) 조사대상이 아니다 들어간 건지. 앞서 말한 위진남북조와는 정 반대의 현상이 만든 결과다.


다시 말하지만 역사학도 때론 건조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는데 경제학에서 물기 없는 이야기 할 수 있지. 맘에 들던 안들던(어쩌라구~!) 나름의 엄밀성을 갖춘 연구에 대해선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존중받을 자격이 없다. 학문은 상대 입에가 총구를 물린 후 강요를 하는 것이 아니다. 걍 평행선을 그어도 공존하는 거지. 부체제가 정권잡으면 연맹왕국론 쏴죽이고, 대왕집권체제가 권력을 잡으면 부체제를 가스실로 보낼까?


이영훈과 그 일당의 연구는 다르다. 그냥 '자료를 실수로 오해했어요~! 데헷~☆'하는 수준이 아니다. 그런 짓 원데이 투데이 원이어 투이어한 것도 아니다. 혹여 순진하신 분들이 학문적으로 엄밀한 연구 아니냐고 속아 넘어가는데 그걸 믿는다면 한 손은 영상 100도 오븐, 다른 손은 영하 80도 냉동고에 넣으면 평균 20도니 모른다면 행복하다고 주장하는 꼴이다. 그 주장의 본질은 명백한 거짓말이고 무슨 목적을 위해 자기의 가치판단을 그리 주입한 후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용납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사료를 본다꼬? 사학과 학부생도 그따구로 자료 읽으면 머리 옆으로 국박에서 낸 중도보고서나 민중서림 자전이 날아가.(둘다 두꺼워 풍압을 느낄 수 있다) 


아.. 총알도 아깝다.


말꼬리 ------------------

1

더 늦기 전에 한국전쟁 당시 국군이 운영한 ……에 대해서도 모든 자료가 사라지기 전에 규명해야한다고 본다.

2

짐순이는 지은 죄가 조낸 많아서 지옥을 갈 거 같은데, 가도 늬것들과 같은 지옥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ㅆㅂ, 야이 개객들아, 고인패드립에도 법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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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3 22:50


오늘 서점에서 벙찌게 만든 책이 이건데, 그럴리도 없겠지만 누가 짐순이더러 이 책을 사거나 읽을 것을 강요한다면 360mm로켓포로 아다마를 날려버리겠다.


딱보기에도 조선전사3과 조선단대사5~7을 쓰까놓은 듯한 체제인데, 본문에 들어가는 지도가 거기 책의 지도를 오려서 붙였다. 인용으로서 넣은 거라면 어설프게 손 보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다.


짐순이두 복사본으로 가지고 있는 책인데 보는 것이 뭐가 문제냐. 특히 조선단대사는 교보에서도 팔았는데 말이다. 북한역사학이 보는 고구려사 소개라면 나쁘지 않다. 그런데 얼치기 레포트 쓰듯 편집하구선 마치 새로운 고구려사인양 내놓은 게 문제지. 정성껏 표로 정리하였으나 북한학계의 고구려 초기연대관을 그대로 실은 것은 좀 웃음이 나왔다.


이 책의 목표는 ‘우리 역사 바로 보기’다. 일제 강점기에 시작된 역사 왜곡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우리 민족의 위대한 역사를 ‘반도’의 역사에 머물게 하고 있다. 『새로 쓰는 고구려 역사』는 동아시아 최대 강대국이었던 고구려의 광대한 영토와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통해 우리 민족 고유의 호연지기를 되찾을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올라온 책소개를 보니 아찔하다. 편견을 갖기 싫은데 이 책은 87년의 미아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같은 죽은 열정을 되살려 다시 내놓은 결과물이다. 논장에서 나온 "고구려문화"같은 책이 다시 나온듯한 기시감.(사진을 찍어올리려고했더니 그 책이 안보인다. 몰래 월북이라도 한듯)


말꼬리 --------------------------------

1. 

부카니스탄에서는 고구려의 연대를 200년 이상 더 이전의 것으로 보고, 복원 왕계표까지 만들어 놓고 있다. 한국의 역사학이라면 치를 떠는 자칭 애국자들은 이 점을 들어 마치 식민사학의 졸개들은 삼국사기의 연대관을 무비판적으로 맹신한다고 지끼는데, 대다수의 고구려 초기사 연구자들도 고구려 건국연대를 기원전 37년 이전으로 올라갈 확률이 높은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이 전前/원原고구려냐, 아니면 확장가능한 고구려냐 알 수 없는 것이지. 대신 현도군 축출 연대인 기원전 75년 경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다만 근거자료가 전무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지 않을 뿐이다.

오녀산성과 국내성 인근에서 이 연대관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이 나와주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대놓고 주장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저 부카니스탄의 연대관도 삼국지와 광개토왕비, 삼국사기의 편린을 갖고 창작해낸 것이라 삼국지도 재검토하면 붕괴위험 가득한 기반 위에 설립된 가설이다.

2.

이 분, 예전에 고조선사도 쓰셨네. 그 책의 소개문에 더 자세한 이야기가.. 근데 아이구 아다마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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