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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31 15:48

한국의 역사학계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과 실상은 대우주의 저편 만큼이나 먼 것들이 많다.


1.
외부에서는 이 사람들을 매국노의 정신적 기반으로 보는 경우가 있지만, 실제로 역사학계의 대부분은 민족주의자/국가주의자에 가깝다. 나름 여기서 진보라고 불려도 전세계 역사학자들 모아놓으면 극우는 아니지만 꽤나 우파 한복판에 우뚝 선다. 관악산 아래 뾰족철문 학교도 사실 민족주의적이라고 하면 다들 '미대통령이 도람프라고 니도 도랐나?'하겠지만..

2.
한국의 고고학자들의 상당수는, 또는 일부는 고고학 없이는 고대사는 존립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중에 만들어진 문자기록 보다는 고고학 유물이 당시 현실을 더 잘 보여준다고. 가끔 유구 도면도 볼 줄 모르는 문헌학자들이 보고서 결론만 보고 지낀다고 불만을 토로하곤 한다.(물론 그 말은 맞는 말이다!!! 전적으로) 그런데 자기들은 삼국사기나 삼국지 위서 동이전이란 자료의 속성을 이해하고(유물이나 유구도 도면에 담기지 못하는 특색이 있다하지 않는가) 인용하고, 자기의 논점의 근거로 사용하는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3.
몇몇 사람들에 의해 일국사점 관점을 버려야한다는 주장은 끊임 없이 나온다. 동아시아사란 관점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그 말은 반은 맞는 말이다. 문제는 그 일국사적 관점, 민족주의 역사관의 반론의 근거를 유럽에서 가져온다는 말이다. 민족주의, nation의 번역 등등은 워낙 상용구가 된 거다만. 그들의 관점의 상당수는 유럽의 역사관이 인류의 역사관이 된다는 데 매몰된 것은 생각치 않는다.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의 역사는 지역사의 흐름도 갖지만 상당수는 국가단위의 상당히 자폐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 유럽의 시인이라는 릴케같은 이는 나오기 힘든 환경이다. 동아시아 국가에선 빠르면 기원전, 아무리 늦어도 10세기 전엔 상당히 촘촘한 국가체제를 갖추고담을 쌓았다는 건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고등학생인데 옆집 지역 유지네 세살짜리 얼라 성장과정에 따라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식으로 가자면 1970년대에나 마지막 남태평양의 원시부족도 문명화의 세례를 받기 시작했으니 그때 인류의 원시시대가 끝났다는 거랑 뭐가 다른가?

4. 
분명 한국의 역사학계나 고고학계는 지나치게 시야각을 좁혀온 문제를 안고 있다. 그점은 끊임 없이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그 것이 '엘라가~앙스하고 인텔레쟈안스~하고, 고져스한' 빠/리/지/앵의 관점에서 재단되어야 하는 것은 절대 수긍할 수 없다. 아직도 헤겔 이후 전승되는 아시아생산양식론의 21세기판 같아서 심히 거북하다. 인종주의적 관점에서 보는 사람들이 민족주의자라고 손가락질 하는 건 웃어야 하나 배라도 갈라 내장으로 줄넘기하며 사죄라도 해야하나.

5.
보편성과 특수성의 문제에서 개인적으로 보편성에 쏠린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특수성에 혼을 빼았겨 문제라고 생각하지만(그렇다고 뿔달린 빨갱이 로리놈처럼 액시즈를 떨궈야 한다고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특수성을 말살해야할 무언가로 보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보편성이 자기 우월함의 척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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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에 페북에 적었던 글인데, 아마 10년 후에도 상황은 같을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그냥 한식산 먹고 현자타임에 빠지는 게 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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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6 17:38

한국고대사연구에서 고대 언어를 활용할 수 있을까?

어떤 이들에게는 신선하게 들릴 수 있지만 고대사를 연구하는 이른바 '업계'에서는 오히려 진부한 주제입니다. 왜냐하면 지겨울 정도로, 비유하자면 항생제 사용은 아무것도 아닐 수준으로 남용하고 있었거든요. 

과거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해방 후 한국고대사연구의 기반을 다지는 초창기까지 긴 시간에 걸쳐 언어를 활용한 연구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특히 역사학계가 주목한 것은 위치비정과 같은 역사지리였습니다. 

일단 이해를 돕기 위해 사설을 풀자면, 소위 사람들이 상상하는 '고차원적'인 연구를 하기 위해선 가장 기초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무슨무슨 전투로 인한 국제관계의 변화같은 거시적 연구를 하기 위해선 일단 무슨무슨 전투가 어디서 일어났는지부터 이야기해야합니다. 

평양성이라던가 사비성이라던가, 서라벌에서 싸웠다고 하면 큰 문제는 없습니다. 다 아는 곳이잖아요? 그런데 고구려와 신라가 싸웠다는 니하泥河가 어디냐. 이런 곳이면 어디로 비정하느냐에 따라 그 해당 사안 뿐만 아니라 고구려와 신라의 국가전략의 지향점까지 달라지는 문제로 커집니다. 

흔히들 삼한하면 마한 54개국, 진한과 변한 각각 12개국이라 배우지만 고고학자료의 발굴같은 삼한연구의 기반이 부재하던 시절에는 각 국이 어디 위치하느냐를 연구하곤 했지요. 앞의 지명이너 뒤의 국명이나 이럴 때 사람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언어를 통한 지명연구입니다.

마침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통일신라를 기준으로 그 전에 삼국시대에 붙은 지명, 후일 고려 때 사용하던 지명 등이 상세히 기록되었죠. 특히 경덕왕 때 지명을 개정하기 전에는 원래 쓰던 발음에 따라 한자어를 붙인 지명이었으므로 고대 한국어를 연구하는데 유일무이한 위치를 차지하니까요.

이를테면 삼한의 모모국이 있었는데 신라 때 무무군의 옛 지명인 묘묘군과 흡사하다. 아마 모모국은 무무군에 위치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식입니다. 현재의 시각에서 보자면 황당하게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고고학 자료나 고대국가나 그 생태에 대한 연구 방법론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을 시점에선 충분히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삼한 소국들이 남긴 자료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던 시절에 삼한 소국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자료가 많았던 청동기시대 자료를 기반으로 이루어지기도 했죠. 사실 이 연구가 있은 후에야 후일 삼한 자체의 자료가 폭증할 시점에 학계는 그걸 어떻게 해석해야할 지에 대한 방법론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괜히 그 연구가 해방 후 50년 연구사의 최대 성과중 하나로 불리는 것이 아닙니다.  

여튼 80년대까지는 언어를 활용한 연구가 활발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용하는 일이 적습니다. 왜 그럴까요?

일단은 고대사연구의 자료가 늘어나고 그것을 해석하는 눈이 발전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삼한 위치비정같은 것은 사이 좋게 군에 하나씩 비정하는 정도였는데 80년대 이후 발굴이 대규모로 실시되어 자료를 재검토 해보니 그 이전의 연구성과와 매우 다르더라 이겁니다. 대구같은 경우 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정치적 중심의 변화상을 추적할 수 있을 정도로 세세한 자료를 얻었는데 이게 역사지리의 위치비정과는 상당 부분 일치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리고 타전공의 연구성과를 이용하는 모든 연구자들이 마주하는 문제인데 얼마나 그 이야기를 이해하느냐가 있습니다. 서구학계의 몇몇 천재들처럼 학문간 영역을 넘나드는 게 가능하지 않은 환경이라 상대적으로 타전공의 연구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결론만 가져오는 문제가 컸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연구분야가 겹치는 경우 저쪽도 우리처럼 최신자료를 보는 게 아니라 과거 자료를 토대로 보는 일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한국사신론 신수판을 지나 한글판이 나오던 시절에 한국고전문학 연구자가 76년판을 참고하여 논지를 편다던가..

그리고 가정 심각한 문제는 과연 현재 우리가 보는 자료로 고대한국어를 이야기할 수 있느냐입니다. 얼마전에 홍길동전에 대해 기존의 상식을 뒤엎을 수 있는 연구가 발표되었는데, 그에 따르면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의 작가가 조선 중기의 허균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예전에 한글판 홍길동전을 윤독하다 유일하게 기억에 남아 가끔 써먹는 "샹공이 대희하야 시븨 츈셤의 옥수를 니끌어 겻방으로"같은 대목의 발음값 연대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몇가지 근거를 믿고 또 그 짓을 하자고????

또 어느 말이 맞는지 현시점에는 모르니까 관망해야죠. 조선 중기의 한국어 발음을 연구하는데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지금까지의 연구와는 다른 방향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건 국어학, 국문학계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고, 역사학은 조용히 결론을 기다일 일입니다. 문제는 조선시대 한국어 발음도 모르는데 고대 한국어를 이용한 비정에 위험성은 없냐 이거죠.

연구하지 말자가 아닙니다. 연구는 게속 되어야죠. 자료도 계속 발견될 것이고, 무엇보다 해석하는 방법이 발전할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타전공의 결론만 가져오는 것의 위험성이 얼마나 큰지. 학계가 이해하고 조심할만큼 성숙했다는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진 않지만, 고구려의 형계 관등 연구에서 유목민족언어에서 ~형 관등의 기원을 찾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더 하다보면 더 확연해지는 것이 있겠지요. 다만 이거이거 유사하니 Hoxy?하는 건 이미 다해본 거다. 이거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1주 가까이 멘붕이 온 일이 있었습니다. 의견충돌이야 없으면 무서워 잠안오는 동네고, 이말저말, 이일저일 다 겪어본 터인데 전혀 생각치도 못한 곳에서 카운터를 맞은 건 첨이라, 태어난지 3일 만에 쟈브로 사령부의 동굴에서 세배나 빠른 로리놈에게 배빵 맞은 것만큼 타격이 컸네요. 어떤 연구던 그 연구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이야기는 언제나 위험합니다.


말꼬리 -------------------------

1. 물론 더 깊게 들어가면 평양이란 단어도 사람 돌게 만드는 지명입니다. 어느 시점이냐에 우라가 아는 그 평양일 수도 있고, 평안북도 강계일 수도 있고 , 황해도 재령일 수도 있습니다.

2. 연구의 권위를 다지면 앞서 이야기한 역사지리 방법론을 사용한 역사가들도 매우매우 권위자입니다. 그러니 반대하지 말까?

3. 솔까 그바닥 이야기는 짐순이가 더 짬이 오래된 건 안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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