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한국고대사이야기/자료로 보는 고대사 (53)
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475년의 파국에 대해서 대개는 한성이 함락되고 웅진으로 천도하였다는, 매우 건조한 문장으로 퉁치고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수도를 잃었다, 왕이 죽임을 당했다, 그 정도면 꽤 아팠겠다 싶은 인상을 받을 겁니다. 하지만 475년 한성 함락은 백제인들에게는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받은 사건입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한성에서 웅진으로 이어지는 연속성에 대해서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하는데, 사실 실상을 알고나면 어느 정도는 공감가는 일입니다. 현재 한국 사회의 고민 거리 중 하나가 지방소멸, 수도권의 비대화입니다. 그런데 고대에는 아예 머리가 8, 몸이 2인 상황입니다. 수도에 모든 것이 몰려 있는 정도가 극단적으로 심합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을 보여주면 서울은 아예 식물인간 수준이 아니냐고 할껍..
한국고대사연구에서 고대 언어를 활용할 수 있을까?어떤 이들에게는 신선하게 들릴 수 있지만 고대사를 연구하는 이른바 '업계'에서는 오히려 진부한 주제입니다. 왜냐하면 지겨울 정도로, 비유하자면 항생제 사용은 아무것도 아닐 수준으로 남용하고 있었거든요. 과거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해방 후 한국고대사연구의 기반을 다지는 초창기까지 긴 시간에 걸쳐 언어를 활용한 연구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특히 역사학계가 주목한 것은 위치비정과 같은 역사지리였습니다. 일단 이해를 돕기 위해 사설을 풀자면, 소위 사람들이 상상하는 '고차원적'인 연구를 하기 위해선 가장 기초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무슨무슨 전투로 인한 국제관계의 변화같은 거시적 연구를 하기 위해선 일단 무슨무슨 전투가 어디서 일어났는지부터 이야기해야합니..
오늘 아침에 고구려사 관련 두 건의 신문기사가 올라왔습니다. 광개토왕릉비의 신묘년조를 재해석한 기사,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에 대한 기사입니다. 두 건 다 학술대회에 발표되었거나 예정인 내용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광개토왕릉비 문제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젖먹이일적부터 다짐한 것이 광개토왕릉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관심을 끊자였습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수정과의 잣 정도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함부러 압에 담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뭐 공부하면 되지 않겠나 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어린 마음에도 광개토왕릉비는 베트남의 정글과도 같습니다. 발을 들이밀면 다시는 못나갈 것 같은 예감. 다만 빨리 교통정리가 되어 맘편하게 과실만 쪽쪽 빨고 싶을 뿐입니다.(교통정리가 될리가 있..
누구 책이더라 invitation to archaeology라고 고고학 개설서가 있다. 초반부에 토층 그려놓고 그것의 층위를 설명하는데 그땐 몰랐는데 지금보니 매우 도움이 된 책이다.(물론 첫장만 읽..읍읍!!) 정상적인 경우 가장 위에 쌓인 흙층이 가장 최근의 것이고 가장 깊은 곳에 쌓인 흙이 가장 오래된 시기에 퇴적된 흙이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뉴스에서 보는 어디어디에서 어느 시대의 어떤 유적이 나왔다고 하면 이 흙의 페스츄리를 걷어내어 찾아낸 것이다. 거기엔 언제 누가 왜 어떻게 묻었소..라는 친절한 표지판은 존재하지 않는ㄷ.. 아 가끔 비석이나 묘지명(무덤안에 묻는 글귀)이 있지. 하지만 개개는 그딴 거 없다. 아무렇게나 포크레인으로 땅을 후벼 파서 거기서 나온 유물을 눈짐작으로 이게 언제 물건..
일제강점기에 조선사를 만들며 자료집으로 내놓은 지나사료초가 있었고, 지난 세기 후반 단대 동양학연구소던가 이십오사 동이전에 대한 초록집을 내놓았지요. 여기까지는 원문만 실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국역함과 동시에 역주를 단 중국정사조선전을 내놓았습니다. 국내의 연구성과가 미비한 상황에서 참 많은 도움을 준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뭐, 조만간 동북아재단에서 중국정사 조선전 책이 나올 예정입니다. PDF로 나올 지는 알 수 없으나 나온다고 치고(외국전과 같이 보통 공개될 확률이 높죠) 번역은 완료되었고, 원래 지난 가을에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아시다시피 책 만드는 게 늘 정확하게 일정대로 가는 게 아니니 조금만 기다리면 되겠지요. 이건 국내의 최신 연구성과를 다룬 것이니 국편의 자..
춘천으로 돌아오기 전, 지인과 놀다가 오늘 마감한 원고 하나 이야기를 했다. 당나라 사람이 펴낸 책이 어떻게 일본에서 발견되었는가, 필사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닭다리를 뜯으며 그런 이야기를 했다. 가지고 있는 필사본의 사진과 그걸 어떤 작업을 하는가 블라블라. 지인은 중국 책이 일본에 필사본 하나만 전해진다는게 신기하다고 했다. 과거에 소위 애국지사들께서(퉷!) 김부식을 욕하던 논리 중에 하나가 삼국사기로 악의적 왜곡을 한 다음 진실 규명이 두려워 분서했다는 거다. 물론 삼국사기에 바탕이 된 고기들은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게 분서로 인한 망실이었다면 이규보의 동명왕편은 사실 라노베고 일연의 삼국유사도 웹소설이다.(귀, 귀여니, 일여니.. 응? 모에한 스님이닷!) 왜냐고 동명왕편과 삼국유사는 삼국사..
평소 지론이 안악 3호분의 벽화고분을 근거로 고구려 군사사 논문을 쓰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 그림을 토대로 병종분석하고, 무장 검토하는 것은 오래전엔 자료부족으로 어쩔 수 없었으나 2010년대에 이거 하면 재떨이 맞기 딱좋다. 하야시 미나오의 화상석 책을 보면 딱 물고기들이 무기들고 용왕의 행차를 시위하는 그림도 있고(화상석 그림이니 당근 안악 3호분보다 오래전이다) 이게 원래 고구려 사람도 아닌 얼마전에 망명한 전연의 관료 동수의 무덤이니 고구려 물이 들면 얼마나 들었겠는가. 물론 부카니스탄의 위대한 친구들은 이걸 고국원왕의 무덤이라 주장한다 하더라. 근데 평양 앞도 뚫린 판에 황해도에 왕릉? 미쳤냐? 국내성에 묻혀서 고국원이란 이름이 붙었는데.. . 시조이래 하늘에서 내려왔고 내 즉위 정통성이 주몽이..
짐순이는 천 권이 넘는 책을 짊어지고 다닙니다. 무슨 이데온만한 크기라서 그게 되는 게 아니라(에이 19미터 밖에 안되는 왜소한 기체지요) 전부 PDF로 된 형태의 책입니다. MICRO-SD카드 한 장에 그게 다 들어가지요. 공자가 봤으면 짐순이는 현자중의 현자로 보일 겁니다. 다섯 수레 따위로는 그 책을 셀 수 없거든요.(삼국사기를 읽을 때 만나는 한문 덮인 그림도 삼국사기 PDF에서 따온 겁니다) PDF가 아니라 E-PUB의 형태로도 많은 전자책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서양 방식의 제책방법으로 만든 책을 기본형태라고 인지하고 있을 겁니다. 양장본이냐 반양장본이냐로 나뉘어 지지만 2017년 현재 지구의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는 책의 형태이긴 합니다. 과거의 책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초록불님의 페북 글을 보는데 신문기사 하나를 인용해두셨더군요. 불고기 이야기가 나오길래(고기다! 고기!!) 뭔가 보니 그동안 불고기가 고구려때부터 내려온 음식이라는 이야기가 널리 퍼진 것 같군요. 아니 짐순이는 왜 그런것도 모르는거야? 불고기 원조=고구려 맥적? 역사로 둔갑한 낭설 위의 기사는 대략 이렇습니다. 위진남북조 시대의 "수신기"라는 책에 불고기라는 음식이 고구려의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기록을 보면 고구려의 고자도 안보이고 이건 유목민족의 통구이 요리를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불고기를 고구려의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이런 겁니다. 마침 수신기라는 책은 가지고 있지 않으니 기사에서 인용하는 것을 그대로 옮겨봅니다.(세설신어도 안갖춘 마당에 수신기까지!!) “호상과 맥반은 적인의 기물이다. 강..
파,촉, 월수(사천성), 울림(광서장족자치구), 일남(베트남 북부), 요동, 낙랑의 풍습을 살펴보면, 주나라 때는 머리를 뒤로 넘겨 묶었지만 지금은 관을 쓴다. 주나라 때는 거듭 통역으로 이해시켜야 했지만 지금은 "시경"과 "상서"를 낭독할 정도다. - "논형" 58, 회국편 처음 발견한 사료는 아니고 이전에도 알려진 사료입니다. 국편에서 나온 "중국고대사료집성"에도 인용되어 있죠. 어제 이성규 선생님의 낙랑에 대한 논문을 도서관에서 읽고 있는데 거기에서 다루고 있는 것을 처음 봤습니다. 마침 지근거리에 "논형"이 있길래 펴보니 위의 글과 같은 내용이군요. 중국출신들이 꽤나 있음에도 군 설치시에 속리로 쓸 사람이 없어(단순 문자이해도 문제가 아니라 중국정부 입장에서 일할 사람이 없는 겁니다. 애초에 진시..
요즘 이런저런 일로 "낙랑군 호구부"를 보고 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에선 낙랑군의 비중이 크지 않았는데 마치 목에 걸린 생선가시처럼 걸려버려 발목잡혔지요. 그래서 졸음과 싸우며 보고 있는데 재미난 것을 발견했습니다. 낙랑군이 최대 25개현이 있었지만(진번과 임둔군을 폐지하며 그 소속 현들이 낙랑군으로 이관되었지요) 그 정확한 위치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남은 조각의 사료와 지명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긴 했습니다만 현의 중심에 존재해야할 현성이 9개인가 밖에 안남은 것도 딱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없지요. 그동안 우리가 낙랑군의 현의 위치를 생각하는 것은 두계대마왕 이병도의 지명비정, 그리고 중국 역사지도였습니다. 마침 이병도의 책은 다른 곳에 있어서 일단 평소에 많이 이용한 담..
2016년 4월 27일 12:30[춘천=쟈브로통신] 안문호 기자25일 강원도 춘천시 중도 레고랜드 건설현장에서 공사도중 새로운 선사문화의 증거가 출토되어 학계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집자리에서 신석기 말기와 청동기 초기에 걸쳐 존재한 것으로 보이는 짐순문화의 토기 2점이 출토되었다. 1점은 짐순문화기 초기에 해당하는 시기의 것으로 보이는 작은 토기와 뚜껑이며 하나는 그것보다 뒷 시기의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짐순문화 연구의 권위자인 마 쿠베 박사에 따르면 초기의 토기는 작은 것으로 주로 식기로 쓰였으며 하나는 대접으로 쓰인 것 같으며, 이 문화권의 특징은 차츰 큰 형태의 토기를 선호하는 것으로 학계에선 이를 큰 것이 아름답다고 믿는 문화적 특성을 보여준다고 한다. 토기제작의 특성으로는 ..
앞선 글에서 좀 길게 썼는데 이번엔 짧습니다.(저번 글보다는요!) 앞선 글의 마지막에서 고구려 관등에 대한 각기 상이한 기록 중에 어던 것을 취해야하는가 고민한다는 부분까지는 썼군요.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앞서 저번과 약간 다른 표 하나를 올려봅니다. 위서주서수서북사신당서한원삼국사기1알사대대로太大兄대대로대대로대대로대대로?2태사태대형대형태대형울절태대형태대형?3대형대형소형대형태대사자울절주부4소형소형대로소형조의두대형태부사자대상5 의후사의후사의후사대사자조의두대형위두대형6오졸오졸오졸대형대사자종대상7태대사자태대사자태대사자상위사자대형대형?8대사자대사자대사자제형발위사자소상9소사자소사자소사자소사자상위사자적상10욕사욕사욕사과절소형소형11예속예속예속선인제형제형12선인선인선인고추대가과절선인13욕살 부절조의14 선인 좀 더..
관등이라는 건 쉽게 말해 9급 공무원이냐 장차관급이냐, 총리급이냐 하는 식으로 해당 공무원의 지위를 나타냅니다. 지금도 공무원의 등급은 그 권한의 차이를 보여주죠.(물론 봉급도 차이납니다) 지금도 공무원의 위계는 중요하지만 고대에는 더욱 중요합니다. 바로 그 시대가 신분제 사회기 때문입니다. 돌쇠라는 사람을 가정해보죠. 거기에 그가 6급 공무원이라고 해둡시다. 그가 평민이나 천민같으면 절대 오를 수 없는 위치입니다. 단순히 공무원 위계로 치면 1~5급보단 낮고 7~9급보단 높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는 하나가 더 붙죠. 만약 그가 신라 식으로 진골이라면 그냥 처음 임용된 직후에 받는 급수라고 해두죠. 아마 그는 꽤 젊은 나이일 겁니다. 만약 그가 6두품 정도의 신분이라면 평생 경력의 중간입니다. 앞으로 ..
얼마전에도 부여사에 관해 나온 책을 소개했지만(요기!) 수험업계를 제외하고 나면 부여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습니다. 짐순이 스스로도 부여에 큰 관심이 없었죠. 마침 써야 할 것이 있어 부여를 공부하려고 이것저것 펴보는데 1시간 전까지 날씨가 좋지 않을 때 부여의 왕을 죽이는 내용의 기사는 후한대 학자 왕충의 "논형"에 실려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가지고 있는 "논형"(물론 소나무판 국역본이지요)을 뒤져봐도 부여의 건국신화만 실려있지요. 웅.. 혹시나 싶어서 "삼국지" 위서 동이전을 펴니.. . 이봐! "삼국지" 위서 동이전은 너무나도 기본적인 사료잖아!!!!!!!!!!!!!!!!!!!!!!!!!!!!!!!!!!!!!!!!!!!!!!! 그제도 모처에서 강원도 대표 멍청이가 되었는데 정말 무식한 女..
사실 오늘 같이 이렇게 지나가는 글로 사용할 글감은 아닙니다. 책으로 치면 장 하나를 사용해서 이야기할 주제지요. 그러나 이 주제로 글을 써야지 맘 먹은지 1년이 지나고, 갈 수록 관심이 멀어지는 와중에 언제 쓰나 싶어 개략만 끄적거려볼까합니다.(지금 머리 맡에는 화랑에 대한 책이.. 다시 삼국사기의 화랑이야기 준비중임돠) 고대로 올라갈 수록 인구도 적고, 반면에 권력이 신적 권위에 더 많이 기대던 때라 후대 도시보다는 인위적이고 도식적인 면이 많습니다. 화약병기 도래 이후 전쟁사의 흐름은 병사들 사이의 간격이 넓어지는 것처럼, 후대로 내려올수록 인간의 거주 분포는 입체적입니다. 그런데 고대로 올라갈수록 인구도 적고, 인간의 자연개척 기술이 자연의 자체 수복력을 넘지 못할 때는 소수의 인간들이 좁은 공간..
연휴를 끝내고 간만에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들어 갔습니다. 원래는 강진의 전라병영성 자료를 구하려던 것인데 간 김에 보도자료도 보자.. 이런 식이었죠. 소식이야 날로 쌓이는데 고대사 관련한 소식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러던 중에 하나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네요. 사실 이 기사는 얼마 전에도 제목만 보고 넘겨버린 겁니다. 사실 제목만 봐도 머리가 아파서요. 신라 무덤의 비밀을 품고 있는 중앙아시아 초원 기마민족의 고분을 발굴하다 신라고분이 북방 알타이계 유목민족들의 무덤과 유사하다는 것은 꽤나 오랜 단골집 사골과도 같습니다. 일본의 역사학자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 이래로 잊을만하면 기어나오는 한민족은 북방에서 기원한 민족이라는 설과도 연결되어 그걸 증명하는 고고학적 증거로 이용되어왔지요. 호주의 레드야드 ..
요즘 이 블로그랑 가장 거리가 먼 일을 두어개 하고 있어서 잠을 잘 못자고 있습니다. 며칠 전 "짐순은 잠 못이루고~"모드여서 멍때리는 상태로 앉아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새로 이러저러한 내용의 박사논문이 나왔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였습니다. 어느 정도 심신미약 상태로(어느 정도였냐하면 옆의 동성 지인에게 '네뇬에게 청혼할 정도로 정줄 놨다'라는 개드립을 할 정도로요) 듣는데 그에 대한 답변은 오늘 유일하게 말짱한 정신으로 존재한 순간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고중세사의 사회경제적 기반을 연구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료가 압도적으로 많다 못해 시대별 변화추이도 해석 가능한 조선시대와 달리 스냅사진 한 장 남은 상황도 행복합니다. 연구 노하우가 축적되기 전엔 그런 스냅사진 같은 사료 한줄로 수백년 단..
짐순이는 탑을 좋아하지만 불상은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닙니다.아니, 그러니까.. 싫은 건 아닌 데 관심이 좀 적달까요?아주 엄밀하게 말하자면 열광하는 온도의 차이?굳이 좋아한다고 해야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라던가.. 또는 혼자서 이문세 불상이라 부르는 삼국시대 불상도 좋아합니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이미 몇 번 등장한 통일신라 시대 약사여래불이지요. 솔직히 아무리 좋게 봐줘도 멋지지는 않습니다.어떤 할배들은 바로 옆의 감산사 아미타여래 입상이 최고라고도 합니다. 에로에로 하다셨던가? 뭐, 허리를 약간 비튼 것에서 원조 인도의 향기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만그건 지금 짐순이에게 중요한 건 아니고.. 왜? 사람들은 이 불상을 조각했을까요?전지전능의 범용성이 아닌 단일 성능의 특수성을 갈구한 ..
아주 어릴 적부터 이 이야기를 익숙하게 여겼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삼국사기만 졸라 빨고 삼국유사는 쳐다도 안보던 19살의 여아는 지금까지도 그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있었겠거니하고 믿고 있었습니다. 기차안에서 노래를 하나 듣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마침 가지고 있던 박성봉 선생님 번역본의 한글 화일에서 F2로 열심히 검색해 봅니다. 원성왕 즉위 전 꿈 이야기의 무대로만 나옵니다. 이상하다 기이편의 김유신 이야기를 뒤집니다. 고구려 점쟁이의 원한 이야기만 나옵니다. 집에 돌아와 북한의 리상호 번역본을 뒤집니다. 가장 좋아하는 이민수 본과 주변에서 가장 좋아하는 이재호본은 안보입니다.. (여기까지 적던 중 이재호본의 초판 영인본이 보입니다. 아놔..) 이상하다 싶어 국사사전의 고전인 이홍직 선생님 책을 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