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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아주 오래간만에 삼국사기를 읽어보는군요. 이 블로그의 존재의의가 무색한 상황입니다. 그래도 짬을 내어 글을 써보는데, 정말 반년만의 글이로군요. 이런저런 일들로 고대사 글을 쓰기는 커녕 읽기도 어려울 정도였으니 어쩔 수 없긴 합니다. 과연 새해에는 여유가 날런지.. . 원문十五年 夏五月 吐含山崩 泉水湧 高三丈十六年 夏五月 王薨 해석15년 여름 5월 토함산이 무너지고 샘의 물이 솟구친 것이 5장에 이르렀다.16년 여름 5월 왕이 돌아가셨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유학자의 역사책이라고 불립니다. 때로는 유교적 합리주의에 의한 역사서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신화적인 이야기는 많이 제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남겨진 구삼국사의 동며왕편을 보면 괴상하게 여겨질 이야기는 많이 줄여놓았습니다만,..
현재 대한민국은 과거의 망령을 고이 저승으로 돌려보내지 못해 산 사람이 사는 세상에 과거의 의지가 혼란을 던지는 꼴이랄까요. 사소하게는 개개인의 꼰대질부터 크게는 국가와 사회의 압축 퇴행의 모습까지.. 아, 그러니까 뭐 이렇게 질질끄나 싶을 정도의 문장을 쓰는 지금 어떻게든 화를 안내려고 비비꼬아 말하려는 짐순이의 마음을 아실라나요. 짐순이가 역사를 좋아한다고 해서 과거 짱짱이라고 주장하지 않음을 몇 번이라도 오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고대사를 공부하고, 그 중에서도 고구려사를 좀 많이 들여다 보지만 그 시절이 아름답다거나 이상적인 사회라고 한 적이 없다는 것을요. 마침 며칠 전에 한국사를 대표하는 명군의 목록에 광개토왕을 올려놓은 것을 보고, 이런 글 쓴 저능아 色姬는 영구격리시켜야 한다고 길길이 날뛴..
삼국사기 읽기의 초창기 글을 보면 원문의 양이 매우 적습니다. 짐순이나 여러분이나 수준이 올라간 것은 아닐텐데(혹시라도 계실지 모를 분들에게 사과해!!) 이렇게 늘어나는 건, 요즘 끊기가 참 힘들다는 것이죠. 마치 변비환자 화장실에서 명상하듯 뭔가 길어집니다. 원문眞平王建福十九年壬戌秋八月 百濟大發兵 來圍阿莫城 王使將軍波珍千乾品・武梨屈・伊梨伐 級干武殷・比梨耶等 領兵拒之 貴山箒項 並以少監赴焉 해석진평왕 건복 19년 임술, 가을 8월에 백제는 대병을 일으켜 아막성을 포위했다. 왕은 장군인 파진간 건품・무리굴・이리벌, 급간 무은・비리야 등에게 병력을 주어 막게 하였다. 귀산과 추항도 소감으로 삼아 따라가게 하였다. 602년의 가을, 신라가 소타성, 외석성, 천산성, 옹잠성 등 4개의 성을 쌓았습니다. 그것이 전..
드뎌 다음 주로 안넘기고 이어서 씁니다!!!(뭐, 별걸 다 자축하고 그래? -_-;;) 원문法師曰 佛戒有菩薩戒 其别有十 若等爲人臣子 恐不能堪 今有世俗五戒 一曰事君以忠 二曰事親以孝 三曰交友以信 四曰臨戰無退 五曰殺生有擇 若等行之無忽 貴山等曰 他則旣受命矣 所謂殺生有擇 獨未曉也 師曰 六齋日春夏月 不殺 是擇時也 不殺使畜 謂馬牛雞犬 不殺細物 謂肉不足一臠 是擇物也 如此唯其所用 不求多殺 此可謂丗俗之善戒也 貴山等曰 自今已後 奉以周旋 不敢失墜 해석법사가 말하기를 ‘불계에는 보살계가 10종류가 있지만 너희들은 다른 이의 신하된 자로 (그 계율을) 능히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 세속에서 지킬 수 있는 다섯 가지 계율을 내리니 첫째가 군주를 섬김에 충성을 다하라(사군이충), 둘째로 부모를 모심에 있어 효를 다하라(사친..
아주 오래간만에 삼국사기 글이 나옵니다. 이러저러한 일로 잠시 손에 놓았는데 그 동안에도 이런저런 시도들이 잇엇지요. 다만 나오지 못한 것일 뿐. 원래 진행하려던 김양은 잠시 접고(아마 다른 방식으로 나갈 것 같습니다), 최근에 관심을 가진 어떤 주제에 대해 하려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미로에서 갑자기 두어번 선회를 하다보니 오늘의 이야기로 나왔습니다. 그동안 오뒤세우스의 모험의 1/1000은 떠돌았던 것 같네요. 원문貴山 沙梁部人也 父武殷阿千 貴山少與部人箒項爲友 二人相謂曰 我等期與士君子遊 而不先正心修身 則恐不免於招辱 盍聞道於賢者之側乎 時圎光法師 入隋遊學 還居加悉寺 爲時人所尊禮 貴山等詣門 摳衣進告曰 俗士顓蒙 無所知識 願賜一言 以爲終身之誡 해석귀산은 사량부 사람으로 아비는 무은 아간이다. 귀산은 어려서부터 ..
지난 주에 내물왕 즉위년 조의 결혼을 이야기하고다음엔 거기에 대한 김부식의 논평을 이야기 해보자고 예고를 했습니다만이미 한참 전에 이 사론에 대해 쓴 것이 있군요, 사론 02 - 나물왕즉위년조의 사론 엄훠낫, 지가 돈이 얼마인지 자식이 몇인지 몰랐다는 분도 아닌 뇬이글을 써놓고 안썼다고 생각하다닛!!!뭐, 약간의 생각이 바뀐 것도 있지만 그래도 사론에 대한 것은 위의 글을 봐주셨으면 합니다.단 원문과 해석글 빼고 5번째 문단까지는 지난 주와 겹치니그 다음부터 읽어주시길..일단은 설명에 앞서 사론을 다시 인용해 봅니다. 논하여 말한다. 아내를 맞이함에 있어 같은 성씨를 취하지 않는 것은 분별을 두터이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노공(魯公)이 오(吳)나라에 장가들고 진후(晉侯)가 사희(四姬)를 취한 것을..
원문奈勿尼師今立 姓金 仇道葛文王之孫也 父末仇角于 母金氏休禮夫人 妃金氏 味鄒王女 訖解薨無子 奈勿繼之 해석내물이사금이 즉위하였다. 성은 김씨로 구도갈문왕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말구각간, 어머니는 김씨 휴례부인, 왕비는 김씨로 미추왕의 딸이다. 흘해이사금에게 아들이 없어 내물이 뒤를 이었다. 교과서에 참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나왔습니다. 이를테면 초중고교 각각 5학년, 2~3학년, 1학년에 배우는 교과서에 항상 등장하는 고대사의 인물이기도 하지요. 고대국가 성립기의 중요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빌어먹을 교학사 고교한국사 교과서에도 이 왕의 이름은 걸려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범하는 오류를 제외하면 이 대목은 멀쩡하군요.(참고로 여기 인용된 것은 작년 가을에 공개된 부분입니다) 미래앤컬쳐(구 국정교과서)의 고교한국사..
지난 달에 글을 거의 쓰지 못했습니다. 뭐, 이런저런 일들이 머리를 아프게 해서 이래저래 책을 볼 여유가 없더라구요. 연료가 안들어가니 글도 안나오고 또 그럴 맘도 안되고.. . 그 와중에도 딱 하나 읽고 있는 게 있습니다. 언젠가 한 번 소개한 기상청의 고대 기상 자료집입니다. 자료안내 - 한국 기상기록집① -삼국사기ㆍ삼국유사로 본 기상ㆍ천문ㆍ지진 기록 김양의 글을 준비하는 와중에서 하나 건진 게 있어 아예 자료집을 처음부터 읽는 중입니다. 그 와중에 건진 한 토막의 글로 다시 삼국사기 읽기의 발동을 걸어볼라 합니다. 다만 원문과 해석은 자료집의 것을 그대로 가져옵니다. 1. 신라 파사 이사금 29夏五月 大水 民飢 여름 5월에 큰물이 나서 백성이 굶주렸다. 2. 고구려 태조왕 56春 大旱 至夏赤地 民饑..
원문 金陽 字魏昕 太宗大王九世孫也 曾祖周元伊飡 祖宗基蘇判 考貞茹波珍飡 皆以世家爲將相 陽生而英傑 해석 김양의 자는 위흔으로 태종대왕의 9세손이었다. 증조부는 이찬 주원이고 조부는 잡찬 종기, 부는 파진찬 정여였다. 모두 대대로 명가로서 장상이 되었다. 양은 태어나면서 빼어나기 이를데 없었다. 먼저 인물에 대한 접근을 할 때, 특히나 역사적 접근을 할 때는 이른바 족보에 대한 접근을 해야 합니다. 어린왕자에 보면 이런 식으로 말하지요. 코끼리를 삼킨 보아구렁이를 모자로 보는 어른들은 자식들의 친구에 대해 그 집에 어떤 꽃이 피었는가를 묻지 않고 아빠는 뭐하시니, 집은 얼마나 좋냐, 돈은 얼마나 버느냐를 물어본다고요. 그런데 그걸 알아야 하는 분야도 있습니다. 바로 역사학이 그렇습니다. 김양의 집에 어떤 꽃을..
짐순이가 퀸Queen의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은 A KIND OF MAGIC였지만진짜 좋아하게 된 노래는 Another One Bites the Dust였지요.가사도 잘 몰랐지만 뭔가 끌리는 게 있어선지..뭐 드럼비트를 좋아하는 편이라 그게 끌린 건지..어린 눈에도 프레리 머큐리는 매력적이면서 신기한 사람이었어요. 퀸 특유의 화음 잔뜩 들어간 노래도 있었지만하필 이 노래를 좋아했을까나..또 한 놈이 쓰러지고, 또 한 놈이 쓰러진다는 가사의 리듬감이 좋았달까.. 그냥 이 노래가 듣고 싶어 틀다 알송의 가사 번역 올라온 거 보니 꽤나 과격한 노래였군요.가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Let's Go!출발 하자! Steve walks warily down the street스티브가 조용히 거리를 걷고 있다. with ..
원문 冬十月 立憲康王庶子嶢爲太子 初憲康王觀獵 行道傍見一女子 姿質佳麗 王心愛之 命後車載 到帷宮野合 卽有娠而生子 及長體貌魁傑 名曰嶢 眞聖聞之 喚入內 以手撫其背曰 "孤之兄弟姉妹 骨法異於人 此兒背上兩骨隆起 眞憲康王之子也" 仍命有司 備禮封崇 해석 가을 10월, 헌강왕의 서자 효를 세워 태자로 삼았다. 처음 헌강왕이 수렵을 나갔다가 길 옆에서 한 여인을 발견하였는데 자태가 매우 고와 왕은 마음 깊이 사랑에 빠졌다. (왕은) 명을 내려 (자기가 탄 것의) 다음 수레에 태워 장막으로 세운 행궁에 이르러 야합하였다. 금새 태기가 있더니 아들을 낳았다. 자라매 모습이 매우 뛰어났으므로 이름을 이르러 효라고 하였다. 진성(왕)이 듣고 궐 내로 불러들였다. 손으로 그 등을 쓰다듬으며 말하기를 '과인의 형제자매는 뼈의 생김새가..
원문 旣定日引其人 薛氏固拒 密圖遁去而未果 至廐見嘉實所留馬 大息流淚 於是嘉實代來 形骸枯槁 衣裳藍縷 室人不知 謂爲別人 嘉實直前 以破鏡投之 薛氏得之呼泣 父及室人失喜 遂約異日相會 與之偕老 해석 그 정한 날에 그 사람을 불러들이니 설씨녀는 굳게 저항하여 몰라 도망가려 하였으나 성공치 못하고 마굿간에서 가실이 남기고 간 말을 보며 크게 탄식하며 울 뿐이었다. 이때 가실이 교대하고 돌아왔다. 몰골이 몹시 야위었고 옷은 낡고 헤져 집안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였다. 가실이 앞으로 나와 깨진 거울을 던지니 설씨녀는 그것을 줍더니 울음을 터트렸다. 부친과 집안 사람들이 크게 기뻐하였다. 다른 날 서로 모이기를 약속하고 더불어 해로하였다. 어떻게 첫 문장을 시작할까요? 왜 이 글은 늦어지고 있는가? 짐순이는 어쩐 일로 땜빵글..
원문會國有故 不使人交代 淹六年未還 父謂女曰 "始以三年爲期 今旣踰矣 可歸于他族矣" 薛氏曰 "向以安親 故强與嘉實約 嘉實信之 故從軍累年 飢寒辛苦 況迫賊境 手不釋兵 如近虎口 恒恐見咥 而棄信食言 豈人情乎 終不敢從父之命 請無復言" 其父老且耄 以其女壯而無伉儷 欲强嫁之 潛約婚於里人 해석마침 나라에 위급한 일이 생겨서 사람을 교대할 수 없었기에 6년을 머물게 되어 돌아오지 못하였다. (설씨녀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말하기를 "처음 3년을 약속하였는데 지금 이미 한참을 지났구나. 이젠 다른 집안에 시집을 가야겠다"라 하였다. 설씨녀가 답하기를 "아버지를 편케 하기 위해 가실과 더불어 굳은 약속을 맺었는데, 가실은 그것을 믿고 몇년째 종군하고 있어요. 춥고 배고픈 고생을 하고 더구나 최전방에 있어 병장기도 못풀고(쉬지 못하고..
원문薛氏甚喜 入告於父 父引見曰 “聞公欲代老人之行 不勝喜懼 思所以報之 若公不以愚陋見棄 願薦幼女子 以奉箕箒” 嘉實再拜曰 “非敢望也 是所願焉” 於是嘉實退而請期 薛氏曰 “婚姻人之大倫 不可以倉猝 妾旣以心許 有死無易 願君赴防 交代而歸 然後卜日成禮 未晩也” 乃取鏡分半 各執一片云 “此所以爲信 後日當合之” 嘉實有一馬 謂薛氏曰 “此天下良馬 後必有用 今我徒行 無人爲養 請留之 以爲用耳” 遂辭而行 해석설씨는 매우 기뻐하며 그의 부친에게 고하였다. (그녀의) 부친은 가실을 불러 말하기를 “그대가 노인의 일을 대신하고자 한다고 들었소. 기쁘면서도 걱정이 듦을 이길 수 없소이다. 이걸 어떻게 갚을까 생각해보았는데, 만약 그대가 어리석고 가난하여 꺼려하지 않는다면, 어린 여식을 권하니 비질이나 시키게 해주면 좋겠소만.” 가실이 다시 ..
원문薛氏女 栗里民家女子也 雖寒門單族 而顔色端正 志行脩整 見者無不歆艶 而不敢犯 해석설씨녀는 율리의 민가의 여자다. 비록 빈한한데다 단촐한 집안이었으나 얼굴빛은 바르고 단정하였고 생각과 행동은 잘 닦였다. 보는 자마다 그 고움을 흠모하지 않는 자 없었으나 감히 범접하지 못하였다. 길고 긴 사랑이야기에 들어가기 앞서 좀 딱딱한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바로 신분에 대한 이야기지요. 오늘 들어가는 부분은 주인공에 대한 간략한 소개부분이라 딱히 길게 할 이야기는 없어야겠지만. 이 블로그가 어디 그렇습니까. 한 단어에 집착해서 정나미 떨어질 때까지 나불나불대는 게 특징이니.. . 어제 글에서 신분에 따른 결혼이야기를 했습니다. 결혼은 각각의 신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요. 높은 자는 높은 자와, 낮은 자는 낮은 자와..
원문五十一年 秋八月 王遣大將軍龍春·舒玄 副將軍庾信 侵高句麗娘臂城 麗人出城列陣 軍勢甚盛 我軍望之 懼殊無鬪心 庾信曰 “吾聞 振領而裘正 提綱而網張 吾其爲綱領乎” 乃跨馬拔劒 向敵陣直前 三入三出 每入或斬將或搴旗 諸軍乘勝鼓譟 斬殺五千餘級 其城乃降 해석51년(629)년 가을 8월에 왕은 대장군 용춘과 서현, 부장군 유신을 보내어 고구려의 낭비성을 치게 하였다. (고구)려인들은 성을 나와 진을 쳤는데 군세가 사뭇 성대하여 우리 군사들은 그것을 보고 두려움에 싸울 맘을 잃었다. 유신이 말하기를 "소매를 펼치면 갗옷이 단정해지고 벼리를 끌면 그물이 펼쳐진다 들었다. 나는 소매와 벼리가 되고자 한다"라 하였다. 이어 말에 올라 칼을 뽑고 적진으로 곧바로 나아갔다. 세 번 들어가고 세 번 나오메 매번 돌진할 때마다 적의 장수..
원문大唐開洪業 巍巍皇猷昌 止戈戎衣定 修文繼百王 統天崇雨施 理物體含章 深仁諧日月 撫運邁時康幡旗何赫赫 鉦鼓何鍠鍠 外夷違命者 剪覆被天殃 淳風凝顯 遐邇競呈祥 四時和玉燭 七曜巡萬方 維嶽降宰輔 維帝任忠良 五三成一德 昭我唐家皇 해석대당(大唐) 큰 왕업(王業)을 개창하니 높디 높은 황제의 포부 빛나도다. 전쟁을 그치니 천하가 안정되고 전 임금 이어받아 문치를 닦았도다. 하늘을 본받음에 기후[雨施]가 순조롭고 만물을 다스림에 저마다 빛나도다[含章]. 지극한 어짊은 해 달과 짝하고 시운(時運)을 어루만져 태평[時康]으로 나아가네. 깃발들은 저다지도 번쩍거리며 군악 소리 어찌 그리 우렁찬가! 명을 어기는 자 외방(外方) 오랑캐여 칼날에 엎어져 천벌을 받으리라. 순후한 풍속 곳곳에 퍼지니 원근에서 다투어 상서(祥瑞)를 바치도..
원문三十年 王患高句麗屢侵封埸 欲請隋兵以征高句麗 命圓光修乞師表 光曰 “求自存而滅他 非沙門之行也 貧道在大王之土地 食大王之水草 敢不惟命是從” 乃述以聞 해석30년(608) 왕은 고구려가 계속 영토를 침입해오는 것을 걱정하여 수나라에 병사를 청함으로써 고구려를 치고자 하였다. 원광에게 명을 내려 걸사표(군사를 청하는 표문)를 만들라 하였다. (원)광이 말하기를 ‘나의 안전을 구하기 위해 타인을 멸하려는 것은 사문의 길이 아니지만 빈도(승려가 자신을 낮추는 말)가 대왕의 땅에 살면서, 대왕의 물과 곡식을 먹으니 감히 이 명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 하고는 이에 (표를) 지어 올렸다. 한국의 불교를 말할 때 흔히들 호국불교라고 합니다. 고려 말에 유학자들에게 욕이란 욕은 다 먹어 결국에는 신국가에서는 강하게 ..
원문薛罽頭 亦新羅衣冠子孫也 嘗與親友四人 同會燕飮 各言其志 罽頭曰 "新羅用人論骨品 苟非其族 雖有鴻才傑功 不能踰越 我願西遊中華國 奮不世之略 立非常之功 自致榮路 備簪紳劒佩 出入天子之側 足矣" 武德四年辛巳 潛隨海舶入唐 會太宗文皇帝親征高句麗 自薦爲左武衛果毅 至遼東 與麗人戰駐蹕山下 深入疾鬪而死 功一等 皇帝問 "是何許人" 左右奏新羅人薛罽頭也 皇帝泫然曰 "吾人尙畏死 顧望不前 而外國人 爲吾死事 何以報其功乎" 問從者 聞其平生之願 脫御衣覆之 授職爲大將軍 以禮葬之 해석설계두는 신라의 귀족의 후예다. 일찍이 친구 4명과 같이 어울려 마시길 즐겼는데, 각자 그 (마음에 품은) 뜻을 말하는데 계두가 말하기를 "신라에서 사람을 등용하는데 골품을 논하니 진실로 그 (높은) 종족이 아니라면 비록 빼어난 재능과 탁월한 공이 있어도 능히 ..
원문六年 春二月 王親定國內州郡縣 置悉直州 以異斯夫爲軍主 軍主之名 始於此 해석6년 봄 2월 왕은 친히 국내의 주군현을 정하였다. 실직주를 설치하고 이사부로 하여금 군주로 삼았다. 군주라는 명칭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매번 하는 소린데 이 문장 한 줄로도 은하영웅전설의 외전 한 권 분량이 나옵니다.(그만큼 대단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가 아니라 외전 한권 분량의 내용이 나온다는 겁니다. 오해 없으시길) 신라의 국가제도의 한 획기가 되기도 하려니와 한국고대의 제도사연구에서 이 제도가 갖는 것의 의미가 크거든요. 고구려나 백제는 너무도 단촐하여 이게 어느 시점의 것인가 구체적으로 어떤 구조로 움직이는가에 대해서 그리 나오지 않습니다. 고구려로 가면 아예 관부가 있었는지 조차도 알 수 없을 정돕니다. 신라 지증왕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