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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지난 글에서 조신이라는 승려 이야기를 하면서, 적어도 고대사에서 아내를 거느린 승려는 없었다고 말한 적이 있지요. 그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여인의 분냄새라도 맡았을 사람들로 원효와 광덕을 꼽았습니다. 원효야 파계를 하고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예욉니다.(물론 사고치던 시점은 아직 승려) 이런 예를 들어 아내를 가졌을 수 있다고 하기엔 무립니다. 개가 사람을 문 것과 사람이 개를 문 것 중 무슨 사건이 대서특필 되겠습니까? 그렇게 어쩌다 사고친 사람이 있다는 것은 대다수는 그러지 않았다는 것의 반증아니겠습니까? 문제는 광덕입니다. 삼국유사에는 그를 사문沙門이라 적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문은 출가한 승려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애초에 고타마 싯다르타가 불교 교단을 세울 적에 출가한 남녀 수도자를 각각 비구와 ..
일요일, 쟈브로경 해밝은 날에 뒤늦게 일어나 거실을 좀비처럼 노니는데 이불에 발은 없고(모빌아머냐!),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한참 삼국유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맨날 이 시간에 재미없는 이야기만 나온 것 같은데(중국경제 찬양론만 읊조리거나) 그래도 고대사 이야기하니 귀는 끌립니다. 그러나 어제 들이마신 미노프스키입자가 내부 기관을 자극하야 속청소를 하느라 잘 듣지 못하는데 순간순간 듣자니 고대사 전문 이야기는 아닙니다. 아래 이어질 인용문에 나오겠지만 조신을 재정만 관리하는 승려라 결혼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승만 정부 시절에 나온 이판승과 사판승의 싸움도 아니고(조선후기에 이판승과 사판승으로 분리되는데 이판승은 수도, 사판승은 재정을 담당하지요. 이것은 일본 불교의 영향으로 이판은 ..
문제를 읽다가 순간 정신이 멍했네요. 결국 삼국유사를 찾아봤습니다. 짐순이가 머리 속에 담아둔 게 진짜인지 회의가 들었거든요. 혹시 거대한 파이프관 속에 쳐박혀 짐순이는 가짜 삼국유사이야기를 머리에 담고 기계에게 약분을 내주고 있는 건 아닌가. 아 빨간약인지 파란 약인지를 먹어야 하는 건가. 짐순이가 이번 분기 신작 트리니티 세븐을 좋아했다고 해도, 그렇다고 매트릭스의 트리니티가 될 이유는 없잖아.. 답이 뭔지는 알겠어요. 그런데 엄밀히 말하자면 나머지 답도 하나 빼곤 다 틀린 답입니다. 그냥 문제로서 성립하려면 질문이 "적당하지 않은 것"에서 "적당한 것"으로 바꿔야 합니다. 문제의 질문도 틀렸고, 예시도 틀렸고.. 이 문제 누가 낸거냐.. 웅.. 문제가 요구하는 답은 3번입니다. 신석기 시대에 국가가..
아주 어릴 적부터 이 이야기를 익숙하게 여겼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삼국사기만 졸라 빨고 삼국유사는 쳐다도 안보던 19살의 여아는 지금까지도 그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있었겠거니하고 믿고 있었습니다. 기차안에서 노래를 하나 듣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마침 가지고 있던 박성봉 선생님 번역본의 한글 화일에서 F2로 열심히 검색해 봅니다. 원성왕 즉위 전 꿈 이야기의 무대로만 나옵니다. 이상하다 기이편의 김유신 이야기를 뒤집니다. 고구려 점쟁이의 원한 이야기만 나옵니다. 집에 돌아와 북한의 리상호 번역본을 뒤집니다. 가장 좋아하는 이민수 본과 주변에서 가장 좋아하는 이재호본은 안보입니다.. (여기까지 적던 중 이재호본의 초판 영인본이 보입니다. 아놔..) 이상하다 싶어 국사사전의 고전인 이홍직 선생님 책을 뒤집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짐순이는 삼국유사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고대사 공부의 중요한 자료 중 하나인 삼국유사를 부정, 무시한다거나미워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말은 이렇게 해도 머리맡에 두고 틈나면 읽던 책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삼국유사에 대한 과도한 애정을 가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 그랬나를 곰곰히 돌아보면 왕년의 환빠 극렬 김부식 안티가광적인 부식빠순이로 변하는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삼국유사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시길래완/전/히/비/뚤/어/진 것이지요. -_-;;(그렇다! 짐순이는 극렬 부식빠수니였던 것이었다!!그렇다! 매우 반항기 철철넘치는 동네 무서운 여아인 것이었다!!그렇다! 중2병이라도 삼국사기'만' 읽고 싶다는 것이었다!!)뭐 사상이나 문화보다는 정치라던가 대외관계에 치우친 관심 탓에 더더욱 ..
사람들은 고조선이라는 단어를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관련된 것으로 봅니다.이씨가 세운 조선이 생기고 나서 예전에 있던 조선과 이름이 겹치니까과거의 왕조 이름을 옛조선, 즉 고조선으로 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그러나 이건 기본적인 전제가 틀렸습니다.오히려 1392년 세워진 왕조를 후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습니다.조선시대야 당연히 자기 나라를 조선이라고 부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아조我朝라던거 금조今朝가 맞겠지요.요즘 사람들이 굳이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로 부르지않고 우리나라라고 부르듯)둘을 분리해서 이야기 해야한다면 이성계의 조선이 후조선이 됩니다.앞서 단군이 세운(그렇다고 넘어가지요) 조선은 전조선이라거나 조선이라고 불리는 겁니다.좀 이해가 안되실 분들을 위해 다시 풀자면 먼저 존재한 조선은 그 이름의..
생각해보니 지난 주에 두가지 새로운 소식이 나왔는데19세 청순가련 병약미소녀의 취향에 따라 한 가지만 주목하고다른 하나는 내일 써먹어야지 해놓고 까맣게 잊어버린 것을 이제야 생각해 내었습니다.(그 하나는 고구려 비석의 발견이지요)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략 아는 얘기고여기를 통해 저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신 분들도 슬슬 눈치 채신 것이 하나 있을 겁니다.얘는 삼국유사 얘기 정말 안하는구나...뭐, 다들 창덕궁을 좋아한다고들 말하는데 혼자서만 경복궁이 법궁이니까 좋다고 말하는 아입니다.역사서도 정사를 더 중요시하다 못해 거의 그것만 보는심각한 편식가입니다.그래도 이 사실만큼은 다루었어야 하는 것입니다.국보급 삼국유사 왕력편 조선초기 판본 공개 - 연합뉴스 1월 15일자 현재 완본으로 존재하는 삼국사기,..
사실 뒷북이긴 합니다.작년 연말에 국립기상연구소에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타난 기상기록을하나로 모아 자료집을 발간했었습니다.이 소식을 접하고 바로 다운받고, 학교에 갔더니 책이 와있더군요.이런 자료집은 공부를 할 때 매우 요긴합니다.사료 전체를 하나하나 뒤져서 카드를 만드는 작업은 선생님 연배나10년 위 선배들이 하던 일인데요즘 잘 나온 전산자료로 검색을 이용하면 그 분들이 빼먹은 것도 발견하게 되더라구요.이제는 그렇게 공부하는 사람들도 없지만, 또 그것만을 하기엔 시간이 부족하긴 합니다.카드 만들던 시절에 비해 읽어야할 논문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거든요.물론 사료를 1쪽부터 끝까지 읽다보면 남는 게 더 많은 건 사실입니다. 예전에 서울 인근에서 발굴작업을 하던 선배가 자료 좀 뽑아달라고 해서4~5..
2박 3일의 일정으로 경주에 왔습니다. 일정은 크게 정해진 건 없고, 개인적으로 안압지와 경주박물관만은 보고야 만다..만 확정입니다. 원래 여행이란 건 시간단위 일정을 짜는 것조차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정말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스타일입니다. 우선 오늘은 오릉, 나정, 포석정, 감은사와 감포를 오갔습니다. 전철 하나를 놓친 끝에 서울역에서 열차를 1분차이로 놓치고 다음 차로 점심 때쯤 신경주역에 도착했습니다.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고 나가서 버스를 기다리다 택시를 타고 찾아간 오릉. 이건 동행인의 강력한 요청탓인데 사실, 신라의 상고기에 대해서는 관심이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답사때도 여길 온 게 10년 전 한 번뿐이지 싶군요. 오릉은 신라의 시조 혁거세 거서간(박혁거세)의..
부치지 못한 편지라는 DJ. DOC의 신곡 하나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자기의 첫사랑이 다른 남자와 있었고, 또 그 다른 남자가 그녀와의 일을 떠벌린 것에 대해 분노하는 심정에서 나온 것인데 디스야 힙합의 한 문화요소이기도 하지만 다른 디스와 비교를 거부하는 파괴력이 있습니다. 그 개개인을 욕하기 보다 이런 노래로까지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뭐, 디스 문화가 그렇게 활성화하지 못한 대다수에게 낯 선 것은 사실이죠. 그런데 이하늘을 비난하는 목소리 속에는 쿨한 척하는 것이 보여 그다지 좋아보이진 않았습니다. 자기 일이 아니니까 쿨하게 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사람 일이 그렇게 쿨할 수는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게 자기의 현실으로 다가올 때 대체 얼마나 쿨할 것인지.. 그 점에..
1. 들어가며 삼국사기는 한국고대사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문헌기록입니다. 동시대의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한계를 가지고 있지요. 김부식은 자료수집의 과정을 거쳐 전시대에 기록된 문헌자료를 수집하였을 것으로 추측되고, 또 내부의 기록 속에 인용한 자료의 이름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 인용서적은 중국의 사서오경부터 일본의 기록까지, 시문집으로부터 불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함을 보여줍니다. 이 글은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어떤 방법으로 쓰고 있는가를 알아보는 입장에서 국내자료, 특히 고려시대의 저술과 문집을 어떻게 이용하였는가를 찾아내보려고 합니다. 과연 김부식은 어떤 자료를 보았는가를 넘어서, 동시대인들이 편찬했을 다른 자료들을 어떻게 취급했는가에 관심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지요. 2. 삼국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