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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지난 해 6월에 글을 올린 이후 접속을 못했습니다. 다음과 카카오 계정을 통합하는 와중에 제 계정은 통합에 실패했고 메일은 다음 구 계정으로 접속해야 하는 와중에 새로운 일로 정신이 없었고, 또 문의를 넣었는데 갔는지 안갔는지, 답변이 왔는지 모를 상황이라 혼자 앓다가 오늘에야 해결했네요. 간단합니다. 카카오 계정으로 접속하면 되는군요. 이 계정에 들어와서 한 일이 이 카테고리에 있던 글을 비공으로 돌리는 일이었습니다. 책이 나왔거든요. 2019년 초반에 나왔어야할 단해온이 이제야 나왔습니다. 아예 폐기할까 하다가 다음 작업을 위해 길은 터야할 것 같아서(그래도 책이 있는 냔이 원고를 가져가는 게 좀 낫습니다. -_-;;;) 구매할 수 있는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워낙 듣보잡의 책이라 대부분의 오프라인..
오늘 이야기할 것은 고대사 개설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작년인가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문제 때, 고대사 부분을 쓰신 그 개 뭤같은 분을 위해 읽어봐야할 책을 소개하기도 했었죠. 그리고 작년엔 노태돈 선생님의 개설서를 소개하기도 했지요. 올해 기묘한 데서 고대사 개설서를 추천해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한 번은 어어.. 어디였더라? 그리고 한 번은 결혼식장에서였습니다. 각각 이해도가 달라서 각기 다른 책을 추천해보았습니다. 그/그녀가 속한, 또 속할 학교의 성향에 따라 따로 골라주었습니다, 사실 이걸 보세요..라고 딱 잘라서 소개할 책은 없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진단학회 한국사도 있었고, 한구고대 연구가 폭발적으로 발전하던 80년대에는 이기백/이기동 두 분의 한국사강좌 고대편이 있었습니다. 좀 더 ..
한 때 이 나라, 이 민족의 역사를 바로 세운다던 사람들이저주하던 명단이 있었지요.언젠가 어느 중앙 일간지에는 그런 역사학자를 불에 태워 죽인다는그러니까 엑스파일의 영향을 받은 트릭을 구사하는 소설이 연재되었었지요.정권이 여러 차례 바뀌고, 이런저런 일을 겪고또 그 명단의 이름들이 하나둘 씩 고인이 되어가며 좀 조용하나 했더니요즘들어 상고사니 뭐니하며 다시 그 명단이 업그레이드 되고 있습니다.그중의 한 명 새로 등재된 인물의 고대사 개설서가 출판되었습니다. 노태돈 선생님은 서울대 국사학과의 고대사연구 중심축입니다.다량의 연구업적을 남긴 편은 아니지요.그러나 다소 적은 수량의 논문들 중에 문제작이 많은 편입니다.그런데 참 무서운 것은 학부 졸업 논문으로 적은 것이6세기 고구려사 연구의 기본 방향이 되어버렸..
얼마전에도 이와 관련한 글을 쓰다가 지워버렸습니다만 다시 쓰게 되네요. 삼국시대의 신분제를 연구하는데 있어 신라의 비중은 막대합니다. 네, 그럴 수 밖에요. 신라 자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기 때문이죠. 그래서 종종 한국고대사의 신분제를 신라의 골품제로 들어 설명하는 것을 봅니다. 틀리지 않아요. 고구려나 백제의 신분 역시 그러한 길을 걸어간 것은 맞거든요. 그래서 삼국시대의 신분제를 이야기할 때 골품제적 신분제라고도 부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골품제가 한국고대사회를 이야기하는 핵심 키워드라는 식의 인식입니다. 골품제라는 것이 신라의 신분제이고 어느 사회나 세세하게 신분 또는 가격家格(價格이 아닙니다)으로 나누긴 합니다. 조선시대에도 양반이래도 떵떵거리는 벌열가문이 있고 평민보다 못한 처지에 놓인 잔..
이기백 외, 『한국고대사론』한길역사강좌 12, 한길사, 1988. 이미 절판된지 오래고 중고로도 찾아보기 힘든 이 책이 여전히 소중한 이유를 들자면70년대부터 여러 곳에서 공격받던 한국고대사 연구자들이 그래도 대중과 함께 하겠다는 증거임이 첫째고70년대 접어들면서 양과 질적으로 팽창한 학계가 드디어 식민사학을 장례지내는 선언적 의미가 둘째입니다.어떤 분들은 아직도 한국고대사학계는 식민사학에 지배받는다고 욕을 하긴 합니다만분명 5,60년대는 여전히 그림자 속에서 허우적 거리던 땝니다.일본은 자국연구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사연구라는 틀이 잡혀 70년대에 들어서기 전까지한국인의 연구성과보다 더 많은 결과물을 내놓았습니다.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에 누가 감히 돈도 안나오는 풍월 놀이를 할 수 있겠습니까.그 당시 공부..
고구려는 시기적으로 기원전 37년에 혼강유역의 환인지방에서 건국했습니다. 북한에서는 광개토왕비에 적힌 왕대수와 삼국사기의 기록에 차이에 주목하며 200년 앞서서 건국했다는 것이 공식 견해입니다.또 중국기록에 고구려는 900년 된 나라라는 이야기도 나오지요.일부에서는 남한 학계는 식민사학 나부랭이라서 그딴 거 안믿는다고도 하지만(그에 대한 제 답변은 趙家之馬!입니다. 이놈의 19세는 욕도 잘해요~! 키랏!)아직 확실한 근거가 나오지 않은 상태라서 북한처럼 단정짓지는 않습니다.다만 북한처럼 완전한 고구려의 형태냐 원초적인 고구려적인 상태냐에 대해 조심스러울 뿐입니다.기원전 75년에 이 지역에 머물던 현도군이 만주로 이동하는데이를 고구려 국가형성의 중요한 분기로 보는 것이 공통된 견해입니다. 우선 본격적인 건..
한참 전에 대학원은 다른과로 가서 박사를 받은 선배가고구려사를 전공하기로 했다하니민족의 영광을 위해…(이하 생략)… 이런 식의 이야기를 꺼냈다.하도 많이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을 얘기라 짜증낼만도 했지만원체 순수하게 사는 양반이고, 또 나름 좋아하는 선배라 그냥 실실 웃고 넘어간 기억이 있다.어렷을 때는 환빠였던 시절이 있었지만 오늘의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바르르 떠는 19세.요즘에야 많이 부드러워져서 그냥 넘어가는 일도 많지만민족의 영광을 위해 복무하라는 말을 들으면 그다지 기쁘지 아니하다.이건 나뿐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이바닥 사람들이라면 다 가지고 있는 정서이기도 하다. 요즘에는 그닥 기억하는 사람들도 별로 없지만1970년대는 민족사학 논란에 1980년대는 국사교과서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