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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오히려 오류가 더 많은 자료를 보게 될 때 일어나는 일 본문

한원이야기

오히려 오류가 더 많은 자료를 보게 될 때 일어나는 일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24. 3. 14. 16:46
왕씨(왕염손, 왕인지 부자)는 문장구조가 통일되지 않을 때마다 의심하여 유서를 가지고 옛 판본을 고쳤다. 유서는 당나라 이후 사람들이 지은 것인데, 그때가 틀에 딱 맞는 대구를 숭상하던 시기의 것임을 몰랐다. 그러므로 인용하는 김에 고쳐서 비슷하고 조화가 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옛사람들은 글을 인용할 때 대의만 취했기 때문에 구절의 많고 적음, 글자체의 같고 다름을 결코 염두에 두지 않았다. 왕씨의 말을 따르는 것은 도리어 지금의 것으로 옛것을 재단하는 것이니 그 잘못이 너무 크다. 

- 장순휘, 역사문헌교독법 중, 요영개의 글을 재인용

 

청나라 때 유명한 장서가이자 서적 교감자인 왕씨부자의 서적교감에 대한 지적이다. 25사를 비롯한 초창기 한문전적 중 상당수가 원본과 현존하는 글에 차이가 많다. 역사서를 기준으로 하면 송의 대대적인 판각 이후 상황이 좀 나아졌으나 원과 명의 판각본에서 오류가 더 증식하는 사례도 있었다. 자치통감도 무려 10수 글자가 사라진 문장(이는 글을 압축하는 과정에서 일부를 날려버린 경우도 있다)이 있을 정도다.

왕씨 부자는 이러한 책을 교감하는 과정에서 그 근거를 오래전에 나온 책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당 이후에 송까지 많이 편찬된 유서(類書 : 각종 자료를 분류하고 집성하여 검색에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종합백과사전격인 책이다)에 의지해서 책을 교정했는데 기실은 유서에 실린 문장은 편찬자가 자의로 수정한 부분이 많아 오히려 잘못된 내용으로 덮어씌웠다고 비판한 것이다.

사실 북송 초부터 꾸준하게 판각이 이루어져왔는데 사기부터 삼국지까지는 그 시점에 이르기까지 많은 손을 거치며 오탈자가 무수히 발생했다. 또 당시에는 이랬던 뜻이 후대에는 저런 뜻이 되어 교정자가 오해하는 일도 생기고, 필사를 하다보니 비슷한 형태의 글자로 오해하는 경우가 생겼다. 또, 위수의 위서는 이게 위수의 완벽한 저작으로 남은 게 아니라 후대에 망실된 부분이 있어, (위수의 책을 수정하라 해서 만든) 위담의 위서에서 가져다 합친 부분도 있다. 후한서의 지는 저자 범엽이 완성 전에 처형당하자 사마표가 쓴 속한서의 해당부분을 가져다 붙인 것이다.

여튼 그러저러한 일로 삼국지까지 오류가 수정되지 않은 상태로 내려왔는데, 한때 한국고대사학계를 괴롭힌 목지국이나 월지국이냐, 진국이나 중국이냐 하는 문제는 그런 탓에 생긴 것이다.

유서는 백과사전인데 기존의 책에에 나오던 내용을 짜집기하여 만든 책이다. 과거시험 대비용으로 사용되는 등, 중국 고전기 리더스 다이제스트라고 생각하면 더 쉽게 다가올라나? 여튼 여기에서 예전 사서를 인용한 부분이 있으니 그걸 가져다가 해당서적의 교정을 본 것이다.

청대 여러 학자들이 지적한 것이 유서야말로 더 부정확한 책이라는 점이다. 변려문에 맞게, 또는 인용하던 저자의 자의적이거나 무의식 중에 자기 필체로 손을 본 것이 많아 대개의 뜻은 맞으나 원문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러니까 과거 유행하던 고전소설의 아동용 축쇄판과 같은 것이다. 그것으로 원작을 평가하는 일이 벌어지면, 그걸 읽고 난 원작을 일거뜸~하면 맞느냐는 것이지. 

그냥 독자들이라면 '이런들 저런들 어찌하리'(지금 이 문장도 원작을 손본 것이다) 넘어갈 수 있겠지만 정밀한 교정을 하는 입장에서라면 매우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바다 건너 전해지는 유서의 일부(장초금의 "한원"이라고 하자..)를 교정하는 도중 오탈자는 물론이고 아예 앞문장의 후반과 뒷문장의 전반이 사라져 접붙여진 경우도 있었다. 그게 어떤거냐면 "고구마의 땅따먹기 대왕은 후연과 싸워 요동을 확보했고, 그 아들인 넘나 오래산 왕은 남쪽의 백제를 쳐서 왕도 한성을 빼앗고 그 왕을 죽였다"....는 문장이 "고구마의 땅따먹기 대왕은 백제를 쳐서 왕도 한성을 빼앗고 그 왕을 죽였다"로 남은 것이다. 이는 필사자의 실수로 한줄을 빼먹고 옮겼다거나, 아님 전해지는 도중 그 부분만 훼손되었는데 후대에 그걸 자연스레 수긍하고 넘어간 경우다. (??? : 우짜튼 고구마왕이 한성함락한 건 마짜나!!!)

또는 문장 안에 주를 달았는데 ()나<>을 붙이거나 혹은 색깔을 달리한다거나 글자색을 달리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구분했는데 긁어오기를 하는 와중에 그 설정이 다 날아가 하나의 문장이 되는 경우가 있다. 어디 웹에 글을 올렸는데 CTRL+C를 해버리면 CTRL+V했을 때 취소선같은 게 사라져버려 각종 드립을 쳤는데 정반대 어조로 전해지는 경우가 있는 것과 같은 일이다.

이 문제에 대해 각종 오류에 시달리는 현존판본을 기준으로 교감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거기에 따랐는데 생긱해보면 앞의 문장이 사라지는 마법을 보면 이 유서의 인용문이 더 많은 오류를 가진 것이 아닌가 싶다.

삼국사기의 정덕본과 주자본을 교감하는 건 또 다른 로사항이겠지만

삼국사기 정덕본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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