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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무시해도 좋을 옛사람의 뻥카.. 본문

한국고대사이야기/고대사 잡설

무시해도 좋을 옛사람의 뻥카..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2. 9. 29. 19:11

돌아가자! 전원이 장차 황폐해지려 하거늘 어찌 돌아가 않으리요?

이제껏 내 마음 몸뚱이에 부림 받아 왔거늘, 어찌 낙담하여 홀로 슬퍼하는가?

지난 일은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달았고, 다가 올 일은 올바로 할 수 있음을 알았으니,

실로 길 잘못 들어 더 멀어지기 전에 지금이 옳고 어제가 글렀음을 깨달았네.

배는 흔들흔들 가벼이 출렁이고, 바람은 표표히 옷자락을 날리네

길가는 사람에게 갈 길 물으며 새벽 빛 흐림을 한하네.

이내, 멀리 내 집을 바라보고는 기쁨에 달려가니,

하인들이 반겨 맞아주고, 어린 자식들 문앞에서 기다리네.

뜨락은 잡풀로 우거졌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여전하네.

아이들 데리고 방에 들어가니 술통엔 술이 가득하네.

술병과 술잔 가져다가 자작하면서 뜨락의 나뭇가지 바라보며 기쁜 얼굴 짓고

남창에 기대어 거리낌 없는 마음 푸니 좁은 방에 무릎굽혀 앉아도 편안하네.

뜰은 날마다 걸어다니니 마당이 돼 버리고, 문은 있을망정 항상 빗장 걸려있네.

지팡이 짚고 다니다 아무데서나 쉬면서, 때때로 고개 들어 멀리 바라보니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 피어 오르고, 새들은 날기에 지쳐 둥우리로 돌아오네.

해는 어둑어둑 지려 하는데도 못내 아쉬어 외로운 소나무 어루만지며 머뭇거리네.

돌아가자! 세상 사람들과 사귐을 끊자.

세상과 나는 서로 어긋나니, 다시 수레 몰고 나가야 무얼 얻겠는가?

친척들과의 정담을 즐기고, 거문고 타고 글 읽으며 즐기니 시름 사라지네.

농군들이 내게 봄 온 것을 일러 주면, 서쪽 밭에 씨뿌릴 채비하네.

포장친 수레 몰기도 하고, 조각배 노젓기도 하며,

깊숙히 골짜기 찾아가기도 하고, 또 울퉁불퉁한 언덕 오르기도 하네.

나무들은 싱싱하게 자라나고 샘물은 졸졸 흘러 내리니

만물이 철 따라 변함을 부러워하며 내 삶의 동정(動靜)을 배우게 되네.

아서라! 천지간에 몸 담았으되 다시 얼마나 더 살랴?

어찌 마음따라 가고 머무름을 맡기지 않고 무얼 위해 어디로 허겁지겁 가려하는가?

부귀는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요, 천당은 기약할 수 없는 것!

좋은 철 품으며 홀로 나서서, 지팡이 꽂아 놓고 풀 뽑고 김매기 하고,

동쪽 언덕에 올라 긴 휘파람 불어 보고 맑은 시냇물 마주하여 시를 읊기도 하네.

이렇게 자연 변화 따르다 목숨 다할 것이니 주어진 운명 즐기는데 또 무얼 의심하랴?



- 도연명, 귀거래혜사


도연명은 자꾸 찡찡대는 상관이 싫다고 짐을 싸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는 실업자가 되었을지는 몰라도 위대한 시를 남겼는데

그게 바로 이겁니다.


다른 시에도 그렇고 도연명은 한적한 시골로 돌아가 

가난하지만 정신적으로 풍족한 삶을 살꺼라고 이야기합니다.

눈만 감으면 호전한 전원생활 속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작가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뭐, '출세보다 행복해하는 당신 모습이 좋아요'라는 농군마누라같은 대사 하나 곁들이면 더 좋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는 그렇게 가난햇을까요?

지금 머리 속에선 리쌍의 어느 노래 제목이 둥둥 떠다니는데 그걸 말할 수도 없고

(혹시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힌트를 드리자면 조로 시작해서 신자로 끝납니다)

솔직한 심정이 그렇습니다.

이 블로그를 오래 보아오셨으면 아시겠지만 

당시 귀족들의 지위와 부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계속 말해왔죠.

저렇게 앓는 소리를 해도 도연명의 땅은 

요즘 우리나라에서 군단위였을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중앙정계에서 최고를 달리지 않아도 중국땅은 넓습니다. -_-;;;)

뭐 당시에 위진시대 귀족들은 여자가 젖을 먹인 새끼 돼지를 잡은 고기를 먹었고

황긍 장막을 집 주위에 둘러 치고는 밥을 먹고는 몇 억원짜리 식사를 했다고 자랑을 했지요.

물론 자기 영지 내에서 자급자족한 것이니 돈은 안듭니다.

그게 제일 잘나가고 부유한 귀족들의 돈지# 올림픽이었으니(누가 더 사치스러운가 경쟁을 햇습니다)

나는 가난하다는 도연명의 발언은 나는 (이건희 회장보다) 가난하다는 중견재벌급의 말일 뿐입니다.

최고위 귀족들보다야 가난하겠지만 그래도 도연명은 전체 중국인중 0.1% 등급이었을 겁니다.


언젠가 일본 헤이안시대의 관료 월급에 대한 글을 읽었는데

(마침 그 책이 지금 이 방 책장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 기억할 뿐입니다. 찾기 귀찮군요)

거기서 연봉 2억엔이라는 숫자를 보고 이거 원과 엔을 착각한 것은 아닐까 싶었지만

점점 공부를 할 수록 아마 20억원의 돈을 받았을 것 같긴 합니다.


아니 멀리가지 않고도 고려 때 이규보의 글만 읽어봐도

언제나 그의 청춘은 잿빛이었다고 우울을 떨지만

(이때만은 동국이상국집이란 제목이 동국이상국의 우울로 읽혀집니다)

그걸 그대로 믿고 어두운 문학청년을 떠올리면 곤란합니다.

이규보는 그런 글을 별장에서 썼어요,


한국학중앙연구원판 삼국사기 원문편 467쪽에서 따왔습니다.


삼국사기의 복식지만 봐도 진골이 아니라 5두품이나 4두품 같이

약간 아래로 보는 귀족들조차 바다 건너, 혹은 대륙 저편의 값비싼 호화품을 금지당했습니다.

(그 말인즉 그런 규정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그들도 소비했었다는 말이죠)


앞에서도 말했듯이 기업 몇 개 가지신 분이 '나는 (삼성회장보다) 가난해'라고 말한다고

그 분의 어께를 두드리며 힘내라고 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요.

간혹,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닦는 분을 봅니다.

99.9%가 0.1%를 걱정해주다니.. 이 얼마나 What a wonderful world 입니까!

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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