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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번역은 반역인가.. 본문

역사이야기/역사잡설

번역은 반역인가..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3. 3. 10. 17:35

사실 번역으로 아주 골머리를 썩은 적은 없다.
약간 안 맞거나 지나친 영어식 표기에 대해 좀 짜증을 내지만
(이를테면 독일의 빌헬름 2세를 윌리엄 2세라 한다거나
디아도코이 이후 등장한 셀레우코스왕조를 셀류시드라고 한다거나)
있어봐야 어느 아줌마가 번역한 『갈리아 전쟁기』처럼
로마 군제를 다시 공부하게 만들고픈 번역이나
마르틴 반 크레펠트의 『과학기술과 전쟁』처럼
하드리아누스 성벽을 하드리아인의 성벽으로 바꾸는 초월번역만 아니면 된다.
(하지만 독자 100명당 城壁을 性癖으로 착각하는 사람 1명은 나온다는 것에 500원 건다!)
뭐 어지간한 오류들은 머릿속에서 알아서 수정해서 입력한 달까..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마리미테 방영 시에
그녀들의 존칭어를 잘 살리는 자막을 찾아 자막제작자들의 블로그를 헤맨 적은 있다.
(노리코가 시마코에게 존댓말을 쓰는지 반말을 하는지는 마리미테 덕에게는 민감한 문제라구!!)
최근에 빙과를 보다가 에루의 존댓말이 살아나지 않는 자막에 짜증낸 적도 있긴 하다.
이러저런 발번역에는 화를 내진 않는다.

사실 하다 만 사료번역이 하나 있기는 한데
당나라 때 나온 책을 여럿이서 번역하는 작업에 몸을 담았는데
하필 다루는 파트가 그 파트인지라
가장 분량이 많고도 중요한 부분을 맡았다.
그런데 병원 다녀오고 병약미소녀가 되는 바람에 중단되었는데
점점 돌아보니 번역이 아닌 번역이 되어 있더라.
가끔 어떤 책들에서 몇몇 대목만 해석한 걸 보는데
그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그야말로 어느 뿔달린 빨간 로리 말마따나
‘인정할 수 없군. 내 어림으로 인한 과오(발번역)란 것을’에 가깝다.
가뜩이나 네 뇬의 번역은 반역이냐는 소리를 들었는데
아프기 전에야 네 뇬 몸의 팔 할은 담덩어리..란 인생으로 살다가
10대도 저물고 아프고 하니 아예 소심덩어리가 되었달까..
그냥 아주 잘하는 누가 해주었으면 싶겠다는 생각도 해보기도 하고.
우리와는 별개로 한 사람 중에 당당하게 모처에 발표한 사람도 있는 거 보면
(그 품질을 절대 기대할 수 없다는 게 개그)
좀 비양심적으로 살아도 되는 걸까나란 생각도 든다.
때론 비겁하면 세상살이가 즐겁다는 말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도 짐순이의 번역은 이정도는 아닐꺼야.. 엉엉엉, 훌쩍..


쉬는 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그 유명한 모모C의 명성을 듣게 되었는데
약간은 번역의 어려움에 공감하면서도
창작자의 의도까지 무시할 수 있는 번역이란 존재하는 가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편집자나 번역가에게 그럴 권리란 없다.
창작자의 명백한 실수나 타국어로 변환함에 따른 약간의 애로점을 수정하는 것 외에
창작자의 의도를 해칠 수도 있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앞에서 든 사소한 오류도 창작자에게 연락을 취하고 의견교환을 한 후,
연락이 불가능한 경우(죽거나, 그럴 여건이 안 될 때)
이러저러한 문제에 대해 손을 보았다고 밝히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이다.
그래서 초반에 일러두기나, 각주, 또는 역자 주라는 장치를 빌린다.
그것도 아닌 의도나 입장의 차이일 경우라도 손대지 않고
따로 거기에 대해 의견을 다는 것이 기본이다.
번역은 반역인지 충성인지 이 어린 것은 미루어 헤아리지도 못한다,
그저
조낸 어렵구나.
타인의 생각을, 타인의 언어를 내 언어로 바꾸어
남들에게 읽기 좋게 내놓는 것은..

이런 생각을 할 뿐이다.

말꼬리 -------------------------
1
19살 인생, 최악의 번역서가 있었던 것 같은데
얼마나 데이터 봉인을 잘했는지 기억에 나질 않는다.
최근에 봤던 크레펠트의 책조차도 제목이 기억나지 않은 걸 보면..

2
어디까지나 발로 해석하는 삼국사기 읽기에 태클이 안걸리니
오히려 이게 더 불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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