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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001. 인간, 말을 하다. 잘났어 정말! 본문

역사이야기/세계사 뒷담화

001. 인간, 말을 하다. 잘났어 정말!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2. 5. 1. 11:48

미리 일러두기 :

0. 이 글은 원래 팀블로그 만공(http://historymangong.tistory.com/)에 올리던 글입니다.

1. 매주 화요일 찾아뵙겠습니다. 아니면에 사는 말구씨가 말합니다. “아니면 말구”.

2. 먹고 살기 바쁜 관계로 답글은 보통의 3배 느린 속도로 답니다. 

    (가면 뒤집어쓰고 뿔 달린 빨갱이 타고 다니는 로리콘과는 다르다! 로리콘과는 달라!)

3. 가급적 순서는 시대 순에 맞추겠지만 상황에 따라 가끔 역주행도 합니다.

4. 정말 지조때로 쓰겠습니다. 사실과 다른 내용이거나(히틀러와 처칠이 내연기관적 관계라던가) 

    지구를 침략하러 온 개구리도 안믿을 얘기가 적혔다면 과감한 태클을 날려주시옵소서. 

    그러나 까고 싶어, 잘난 척하고 싶어 태클 거는 분에겐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去底주세요.


태초에 인간과 침팬지가 각자의 길을 선택했던 이유로

아프리카 기후의 변화를 들고 있습니다.

영장류가 살기 좋은 환경인 밀림이 사라져 갈 적에 

다른 숲을 찾아 떠날 것인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것인가의 기로에서

무식한 것인지, 용감한 것인지, 아니면 둘 다였는지 

인간의 조상이 과감한 도전을 택한 것이

누구는 동물원 창살에 갇혀 있고, 누구는 그것을 구경하는 상황을 낳았습니다.

(개인적으로 학생들에겐 인간이 게을러 이사를 안 갔다고 설명하고 있죠.

자, 태초에 귀차니즘이 있었습니다. 만세!)


다윈의 진화론이 발표되자마자 비난을 받았던 것이 

인간이 침팬지에서 나왔다는 터무니없는 오해가 그것이죠.

사실은 하나의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것인데

예나 지금이나 인터넷의 유무와 상관없이 남의 말 제대로 안 듣는 사람은 어디나 있습니다.

그때 이후 많은 학자들이 인간이 다른 동물과 

뭐가 다르고 뭐가 위대한가를 설명하기 위해 머리를 짜내야 했습니다.

인간 외 모든 것은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라던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시대,

르네상스의 낭만적 관념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난제였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첫째, 직립보행

둘째, 도구사용

셋째, 언어구사


이 세 가지 장점이었습니다.

이 요소들이 모여 인간만이 이룬 문화를 형성했다고 설명하게 되죠.


좋은 해답을 찾았으니 이제 연구자들은 편하게 잘 수 있었을까?

현실은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동물들을 관찰하다보니 여러 동물들이 부분적이나마 직립보행을 한다는 반론이 나왔습니다.

이를테면 곰도 부분적으로 직립이 가능하죠. 심지어는 망구스도 망을 볼 때는 직립을 합니다.

원숭이 과의 속한 녀석들치고 두 발로 걷지 못하는 놈은 없습니다.

물론 직립보행이 앞발을 손으로 변화시켜 동물들과는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보족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다른 요인이 없나 두리번거렸습니다.

아! 그렇지. 한가해진 앞발이 손으로 변한 다음에 정말 대단한 발전이 있었지.

그래서 학자들은 다음 대안으로 도구의 사용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혹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란 영화를 아십니까?

우주선 날아다니고 외계인 춤추는 SF인줄 알았더니

원숭이들이 꺅꺅거리다 동물 뼈들고 설치는 장면만 나와서 사람 황당하게 했다던 그 영화.

(다행인지 그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소설을 보았기에 놀라진 않았습니다)

처음 원시인 장면의 핵심은 인간이 처음으로 도구를 이용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냥 땅에 떨어져 있던 동물의 뼈를 휘두르다 이것으로 동물을 때리면 어떨까를 상상하고,

정말 그것으로 사냥을 한 다음 자기들을 괴롭히던 무리들을 혼쭐내고

기쁨에 하늘로 던진 뼈 몽둥이가 우주선으로 변하는 장면은 

그 어떤 교과서의 설명도 대신할 수 없었죠.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프리카에서 제일 만만한 음식거리인 인간이

지금의 자리에 이르게 한 요인으로 도구의 사용이 빠질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연구자들 사이에선 한동안 인간만이 도구를 사용한다고 믿었습니다.

동물들도 자연물을 자기의도대로 이용하기는 합니다.

수달이 돌로 조개껍질을 깬다던가, 

원숭이가 풀잎이나 가지를 개미굴에 집어넣어 딸려 나오는 놈을 먹지만

인간처럼 가공을 해서 사용하진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하지 않으니 엄밀하게 말하면 뭔가 부족한 것이었죠.

그런데 제인 구달이라는 연구자가 침팬지들을 유심히 관찰하다보니

나무 몽둥이를 만들어 자기보다 더 큰 짐승을 사냥하고

부부싸움을 할 때도 몽둥이로 배우자를 구타하는 장면이 종종 나나오더랍니다.

그래서 인간만이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맞느냐에 대한 의문이 생겨났습니다.

분명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느 생명도 이루지 못한 문명을 만들어낸 인류지만

도구만 가지고 다른 동물들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기엔

뭔가 허전해진 것일까요?


금기의 상자를 열어버려 세상에 온갖 잡것들을 풀어놓아 상심한 

판도라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준 희망처럼

과연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것이 무언가를 고민하던 연구자들에게

언어의 구사란 것이 떠올랐습니다.

인간이 직립을 하게 되면서 생겨난 변화는 앞발에서 손으로의 진화,

자유롭고 다채로운 유희가 가능해진 성행위,

(그와 동시에 1년 365일 내내 발정기를 겪습니다!)

신체제어프로그램의 폭주로 커진 두뇌 외에도 후두부의 구조 변화가 따랐습니다.

직립을 하자마자 언어를 구사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인간의 목에서 나는 소리는 단순한 신호를 넘어서기 시작합니다.

동물들도 소리를 내던가 몸을 움직여 상대방에게 정보를 전하는 일 정도는 수행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엄밀하게 따져서 신호일 뿐

다양한 정보와 그 개체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해주는 역할은 수행할 수 없습니다.


동물들의 커뮤니케이션이란 적이 나타나면 ‘적이다!’,

먹을 것이 있으면 ‘먹을 것이다!’라는 정도의 의미 밖에 알리지 못하죠.

범죄를 목격한 사람이 범인의 자세한 묘사라던가 상황설명을 하는 것 같은

복잡하고도 추상적이며 미묘한 표현을 전달하는 것도 어렵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다른 개체에게 전달하는 것은 꿈도 못 꿉니다.

필수적인 최소한의 정보만이 그저 유전될 뿐입니다.

그렇다면 동물들은 저열한 존재라서 언어사용을 못하는 것일까요?

부모가 사살당하고 상아를 적출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아기 코끼리가 보여주는 반응은

바로 인근에서 부모가 게릴라에게 학살당한 아이의 그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침팬지의 경우 교육시키면 5살 정도의 언어구사능력을 보여준다 합니다.

돌고래는 사람이 물에 빠지면 도와주기도 합니다.

범고래가 자기보다 더 큰 고래를 사냥하는 모습은 매우 지능적인 범법자로 보이게도 합니다.

심지어는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식물까지도 감정과 타 개체와의 의사소통 수단이 있다고 합니다.

(나무꾼이 나타나면 숲 전체가 방출되는 경보신호로 동요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다만 그 것을 표현할 성대구조가 뒷받침 되지 않고 

그것을 대신할 문제체계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양한 음절을 발음할 수 있게 된 인간의 성대를 적절히 사용할 두뇌의 발달이 동반되면서

새처럼 날지도 못하고, 물고기처럼 헤엄치지도 못하고, 곰처럼 맷집이 좋지도 않고, 

사자의 이빨도 호랑이의 주먹도 치타의 빠른 다리도 코뿔소의 단단한 껍질조차 가지지 못해

동물의 왕국 대형마트 내 도시락 코너에서 절찬리에 판매되던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의 간격을 은하계 간격만큼이나 넓혀줄 그 무엇보다 강력한 무기를 손에 넣게 됩니다.

이제 인간은 자신의 특이한 아이디어나 지식, 기억을 타인과 공유할 수 있게 됩니다.

공각기동대나 매트릭스와 같은 사이버펑크 SF에서 보이던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공유하는 세계는 이미 수백만 년 전에 일어난 것이죠.

이것이 바로바로 활용되지도 않고(모든 학생이 좋은 학생은 되지 못하듯)

때로는 다 망실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수만, 수십만, 수백만 년에 걸쳐 복리이자 붙듯이 점점 쌓이고 쌓인 

인간의 성과물은 문명을 낳게 됩니다.

역시 말은, 언어는 인류의 여명부터 중요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인간과 동물이 다른 존재냐에 목숨 거는 것이 과연 필요한 것인가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간이란 종도 지구란 별에 사는 수많은 종의 하나에 불과하단 사실을 놓고 보면

이런 행위가 인간우월주의를 학문적으로 정당화 시키는 것으로 보일 수 있겠지요.

물론 과거엔 그러한 의도로 수많은 궁리가 있었지만

순수하게 (현재까지는) 성공한 동물종의 성공요인 분석이란 점에서 보면

그렇게 불필요한 행위는 아니란 것입니다.

그렇죠.

이런 세상에서 불필요한 행위를 자발적으로 하는 건 인간 밖에 없지요.


- 090303 초고, 1200501 수정


다음주 화요일에는 “002. 구석기 시대의 한가한 아버지, 일상의 고투”로 찾아뵙겠습니다.

다음 글을 볼 수 있을 때까지 ‘그대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말꼬리 1 :

2009년 3월 30일자 한겨레21에 정말 좋은 글이 실렸습니다.

제 글은 그냥 주절거림이라면 이 글은 맛깔납니다.

하고자 하는 의도는 차이가 있으나

제 글로 더럽혀진 눈 정화하시라고 감히 링크를 겁니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4578.html


말꼬리 2 :

매트 리들리는 "이상적 낙관주의자"(김영사, 2010)에서 

위의 들었던 인류의 장점에 하나를 덧붙입니다.

개체별로 부족한 인간이 모이면 발생하는 집단지성.

요 이야기는 따로 해보기로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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