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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002. 구석기 시대의 한가한 아버지, 일상의 고투 본문

역사이야기/세계사 뒷담화

002. 구석기 시대의 한가한 아버지, 일상의 고투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2. 5. 8. 14:21

※ 2문제 중 1문제를 택하여 소설을 쓰세요.(1문제당 80점)

1. 당신은 선사시대 한 가정의 가장입니다. 어느 날 일어나보니 양식이 떨어졌습니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고 울고 있고, 부인은 어서 빨리 식량을 구해오라고 안달입니다. 

자, 어떻게 양식을 구하여 배고픈 가족을 먹여 살리시렵니까?

(2번은 삼국시대에 대한 항목이라 생략합니다)


언젠가 모학교의  대학생들을 상대로 교양한국사 수업을 진행할 적에 

중간시험 문제로 이런 것을 낸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내놓으시려는지요. 

수업의 대상이 역사하고 담을 쌓은 학생들이기에 

일부러 소설을 한번 써보라고 했었는데 학생들에게 개그의 신이라도 강림했는지 

전부 만점을 주고픈 답안들이 나왔습니다. 

(몇 개의 답안을 소개하고 싶지만 종종 써먹을 문제라 공개하진 않겠습니다)


자, 여러분은 어떤 답안을 적으시렵니까? 

제가 학생이라면 무시하고 잠을 계속 자겠다고 했겠지요. (B- 이상은 나오지 않을 답안입니다)

정말 타임머신을 타고 구석기시대 단체여행이라도 간다면 좋겠지만 

현재로서는 몇몇 지점에서 발견된 주거흔적, 발굴된 뼈와 도구들 등으로 

과연 어떻게 살았을 것인지를 추측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 안 되는 자료들을 매우 세심하게, 그리고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하면서 

심지어는 화로 주변에 흩어진 뼈 조각을 추려내어 고기 먹는 습관을 추정해내기도 합니다.

(물론 남의 나라 얘깁니다. 우리나라는 토양이 산성이 강해 수천 년의 시간이면 뼈도 삭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현재로서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의견을 정리해보자면 

현대에 비해서 노동 강도가 적었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구석기 시대의 인구가 매우 적다는 것인데, 

좀 더 알기 쉽게 이야기 하자면 굳이 농사나 목축을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산물만을 소비해도 먹을 것이 남아돌았다는 것이죠. 

사람이 소비하는 양보다 자연이 재생산하는 양이 더 많은 시대였으니까요. 

위의 지문처럼 부인이 바/가/지를 긁더라도 두어 시간만 돌아다니면 

일용할 양식을 쉽사리 구할 수 있었으니까요. 

설령 그 지역의 산물을 다 소비하더라도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면 됩니다. 

인류학자인 마빈 해리스의 추정에 의하면 프랑스에 1천 명가량이 살았다고 하는군요. 

단, 천 명이 프랑스 땅의 모든 먹을거리를 독차지 했으니 

사람보다 먹을 것이 더 풍부한 상황이지 않았을까요? 


매일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도 주말도 희생해야하고 

요즘에는 아예 휴가신청을 해놓고 출근해 일하는 

전산휴가란 말이 유행하는 시점에서 본다면 몹시 부러운 환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냥을 나가서 큼직한 고깃덩이를 어께에 짊어지고 돌아오면 

그야말로 아침밥이 달라지고 도시락에 계란반찬이 올라가는 대우를 받습니다. 

이런 상상만 해도 그 시절로 가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사람이란 현실의 어려움이 있을 때 과거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갖기도 하니 말이죠.


그러나 모든 일에 장단점이 존재하듯 구석기 시대 생활의 장단점도 있습니다.

항상 맑은 하늘 따사로운 햇살이 반겨주는 것은 아닙니다,

좀 경미한 수준의 기상이변으로도 천국은 지옥으로 바뀔 수 있었습니다.

금속으로 정련되었거나 화약의 힘을 이용하는 무기도 없는 빈약한 몸으로

거대 동물들과 먹이를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도 생기고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먹을 것이 사라지는 경험도 겪어야 하죠.

(이를테면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 가뭄, 폭설 등을 겪다보니 종교가 안 생길 리가 있나요)

게다가 더욱 이들을 애처롭게 하는 것은 비축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죠.

올해 먹을 것이 남아돌았다고 해서 그것을 온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고,

그것이 가능한 식량도 많지 않았습니다.

고기나 과일, 채소류는 쉽사리 썩어버리고

좀 오래간다는 견과류(호두, 땅콩 등)나 곡물류의 자연 상태는 사람이 먹기는 어려웠습니다.

현재 우리가 먹는 것들은 사람에게 해로운 독을 제거하였거나

본래부터 독소를 품지 않은 돌연변이들을 수천 년간 선택적 교배시켜 정선한 것이니까요.

(호주에서 땅콩에 알레르기가 있는 여학생이 땅콩버터 샌드위치를 먹은 남친과

‘주둥아리 접선’을 했을 뿐인데 사망했다는 사건이 몇 년 전에 일어났었지요.

아직 인간과 견과류는 아주 가까워진 것은 아닙니다.

때때로 견과류의 맛이 쓴 이유는 맹독을 지니고 있었던 시절의 흔적입니다)

그래서 풍족한 해는 열심히 먹고 즐기며 지방을 축적하고

빈곤한 해에 소량의 음식과 체내 지방으로 견디는 생활이 반복되었던 것 같습니다.


혹시 고고학 책을 열심히 읽으시거나 대학에서 고고학 강의를 들으셨던 분이라면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돌의 생리와 식물과 동물에 대한 지식이

현존하는 학자들 이상으로 풍부했다는 이야기를 접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시간이 남아도는 아저씨가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과

바가지 혹은 수다를 떠는 아내를 피하기 위해 숲 속을 거닐다 얻은 우연히 얻은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세상 사람을 구제하기 위한 풀을 찾느라 맹독성을 지닌 것까지 맛을 보느라

괴물이 되었다는 염제 신농씨의 전설만큼이나 절박한 상황에서 나온 지식이었습니다.

학교의 교육이나 가지고 다니며 볼 수 있는 책이나

언제 어디서나 쉽게 검색할 수 있는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자신과 가족들이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이야 다양한 종류의 지식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 담당합니다.

분업화랄까, 전문화랄까.

그러나 그것은 개체수가 많아 설령 하나의 개체가 소멸하더라도

다른 사람도 같이 하니까 지식이 끊어질 확률은 상당히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만한 면적에도 몇 가족 존재하지 않아

평생가도 가족 외의 사람을 만나기 어려웠을 시절에는 분업화도 쉽지 않아요.

그 많은 지식을 힘겹게 머리  속에 집어넣었어야 했겠지요.

 (차라리 전문화 시대의 학생들의 정보량이 가장 적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코끼리 무리를 이끄는 암컷이 경험이 많을수록 무리의 생존률이 올라가듯

사람도 동물 이상의 아는 것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요.

지식이 많은 자가 스머프 마을의 파파스머프처럼 권력이 없는 자문형 지도자가 되었겠지요.

(악독한 절대 권력자가 나오려면 매우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구석기 시대는 한가하거나 고민거리 없는 세상은 아니었습니다.

마빈 해리스는 “식인과 제왕”에서 이런 지식으로도 자연의 변화를 이겨낼 수 없어서

아이를 생산할 수 있는 밭, 즉 여아를 희생시키는 철저한 산아제한을 통해

입을 늘리지 않으려 노력하기도 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렇게 잔인하지 않고도 불규칙한 영양 상태로 인해 여성들의 임신과 출산은 힘들었을 것이고요.

십 수 년 째 가뭄을 겪는 아프리카에서 나타나는 현상처럼

아무리 굶어도 최소 영양분을 보유한 여성은 가임과 출산은 어렵지 않다고 합니다만

태내의 아기에게 밖에서 살아갈 영양분까지 보급해주지는 못해

조금만 연약한 체질이어도 바로 죽어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니 마빈 해리스의 말처럼 여아 살해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빈곤한 계절에 태어난 아이들은 운도 따르지 않아 살아남을 놈만 살아남았겠지요.

태어날 때부터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에게

한가한 아버지는 상상할 수 없는 개념이었을 것입니다.

누군가 묻겠죠. ‘한가한 아버지, 그거 먹는 거야?’라고 말입니다.


- 090305초고


다음주 화요일에는 “003. 아빠, 이제 휴일 없어?”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대는 시대의 눈물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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