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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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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짜맞은 원고/한국고대사의 뒷골목

34 만약 현대의 군인들이 고대로 돌아간다면?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21. 12. 27. 17:57

이따금 ‘눈팅’을 하다보면, 현대의 군대가 과거로 전이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 가로 싸우는 것을 봅니다. 현대의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이긴다는 사람도 있으면, 어떤 이는 물자부족으로 전멸하게 된다고 반박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병력을 중대나 소대로 한정한 다음 물자를 무한보급하면 세계정복도 가능하다는 이세계전이물 같은 가정을 하기도 합니다.(뭐, 이웃나라에서는 자위대의 부대가 전국시대, 혹은 이세계로 전이하는 것이 종종 나오더니, 일본 열도 자체가 이세계로 전이한다는 수준의 작품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논쟁이 미국에서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누군가 책을 쓰고 그것이 영화화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약 2,200명으로 편성된 미국의 해병원정대MEU, Marine Expeditionary Unit가 전성기 로마로 전이할 경우 어떻게 되느냐를 가지고 영화를 만든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완성되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아직 소식이 없다면 엎어졌을 확률이 큽니다만) 그런 소재로 만든 것은 예전에도 있었습니다. 미항공모함 니미츠가 태평양전쟁 한복판으로 전이한다는 '최후의 카운트다운The Final Countdown'이런 영화도 있었지요.

현대의 군대가 과거로 가면 어떤 역사를 만들어낼까요? 사실 압도한다와 물량부족으로 전멸한다는 모두 맞는 말입니다. 역사적으로도 발달된 무기를 소유한 쪽이 그렇지 못한 쪽을 말 그대로 압살하는 것은 역사 속의 사례로는 넘쳐납니다. 서구의 식민지 개척의 역사가 그렇습니다. 그들의 발달된 화약무기는 활과 창, 때로는 약간 뒤떨어진 화포를 가진 원주민의 군대를 궤멸시켰습니다. 물론 뒤떨어진 무기로 이긴 몇몇 사례를 들어 반론을 드는 분도 계시겠지요. 하지만 그런 사례도 지형이라던가, 국제정세라던가 열세한 쪽이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하여 이긴 경우로 원체 드문 일입니다. 마치 사람이 개를 무는 것과 같습니다.

또 보급이 없어 전멸한다는 것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식량이야 현지조달을 한다고 하더라도 탄약과 연료의 소모가 문제입니다. 소총사격을 해보신 분은 알겠지만 단발로 사격하더라도 탄창 하나 비우는 건 순식간이지요. 자동으로 놓으면 방아쇠를 당기고 몇 초만 있으면 탄창이 텅텅 빕니다. 탄약고를 건물 채 뜯어가도 얼마 안가서 바닥날 것입니다. 무한 탄창? 그건 어디까지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치죠. 현대 무기가 가진 한 방의 위력은 과거의 무기가 결코 앞지를 수 없으나, 과거의 무기들은 물량이 동나도 다시 만들어 채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과거 어느 시대로 가던 간에 거기서 현대무기의 생산은 어려울 것입니다. 연료는 또 어디서 구할까요? 아무리 강력한 전차를 끌고 간들 한 두 번의 회전을 치루면 땅 위에 서있을 뿐인 큼직한 쇳덩어리가 될 뿐이죠. 그리고 전투가 끝나면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할 텐데 그것은 또 어쩔 것인가요?

과거로 간 현대의 군대가 이기느냐 지느냐, 무엇이 정답이냐고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물론 실현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알 수 없겠지만 보급과 정비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군인이 압도적으로 이긴다고 봅니다. 앞에서 둘 다 틀린 말이 아니리고 한 것은 그 논리가 합리적이라는 말이지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은 아닙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 한다면 역시 이긴다를 택하겠습니다.

탄약과 연료는 어쩔 수 없습니다. 무한보급이라는 치트키를 쓰지 않는 이상 그 한계는 명백합니다. 전쟁사를 공부하며 보급이라는 것에 상당한 가치를 두는데도 그것 때문에 진다고 하지 않는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그것만을 사용하라는 법칙이 있을까요? 왜 그런 규칙을 정해놓고 싸워야 하지요? 실전은 스포츠가 아닙니다. 자기 팔다리를 묶는 규칙을 정하고 싸움에 임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이 그러기는 했습니다)

현대의 무기는 과거 사람들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강력한 것입니다. 여러 번 상대가 납득할 때까지 위력을 보여주면 됩니다. 주구장창 탄창이 빌 때까지 보여줄 필요도 없습니다. 적의 지휘부, 핵심 전력이 사정권 안에 들어올 때 그것만 날려버리면 됩니다.(최근의 드론 기술은 전술단위에서도 적의 전력을 충분히 도려내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오히려 살아남은 사람들은 공포를 전달하는 수단입니다. 몇 번 보여주면 알아서 기가 죽을 것입니다. 자기가 총을 쏠 때는 잘 모르지만 주변에 있으면 매우 크게 들립니다. 현대인은 총이란 것이 뭔지를 알고 있기라도 하지만 그것을 잘 모르는 시대의 사람들이라면 훨씬 더 두려워 할 것입니다. 하필이면 인류 문명사에서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이 된 천둥소리와도 닮았습니다. 그게 연달아서 터진다면?

그 무기들이 소모되기 전에 공포는 전염될 것이고, 또 알아서 붙는 이들이 생겨납니다. 1531년 피사로가 이끄는 스페인 사람들이 잉카의 황제 아타우알파가 이끄는 8만 대군을 물리칩니다. 보통은 180여 명의 스페인 병사들이 그들을 궤멸시켰다고들 하지만(물론 스페인 병사들이 잉카의 병사들보다 압도적인 전투력을 갖고 있긴 했습니다) 여기에는 아타우알파에 반대하거나 잉카제국에 반기를 든 사람들이 대거 가담했습니다. 물론 금속으로 무장한 유럽인들이 강력하긴 했지만 꼭 그들만으로 싸우는 것은 아니란 것입니다. 알프스를 넘은 카르타고의 한니발은 로마군대를 연달아 격파할 정도로 강력했지만 이탈리아에서 동조자를 얻지 못해서 패했지요. 어느 나라의 사관학교에서도 전쟁에서 순수하게 군사력만으로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가르치잔 않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가 겪은 것을 회상하며 현대 장교들의 수준이 매우 떨어진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과거로 올라갈수록 장교들이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는 것은 대단히 드문 일입니다. 현대의 장교들이 모두 이순신이나 나폴레옹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의 원균이 될 확률은 더욱 낮습니다. 현대의 군인이라도 칼과 창, 활이 주무기였던 시대의 전술을 배웁니다. 적어도 전이 초반의 혼란상만 벗어난다면 정보가 부족하다는 것을 제외하고도 전쟁기계로 보일 수 있습니다. 현대인이 가진 사소한 지식도 때로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하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인터넷에서 현대의 군인들이 과거로 가서 무쌍을 찍네마네하는 이야기를 보며, 신이 나는 것은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매우 기분이 나쁩니다. 과거 사람들은 무슨 죄를 크게 지었다고 현대의 군인들에게 학살을 당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속의 적병처럼 마구 죽여도 될까요? 그들은 게임 속 픽셀이 아닙니다.

전쟁이 재미있다는 놈이 있다면 멱살을 잡고 솔로몬과 아 바오아 쿠 한 복판, 혹은 라인전선의 참호 속에 던져버리는 일이 최선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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