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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아주 오래간만에 삼국사기를 폈습니다.(물론 전혀 안 들쳐본 건 아닙니다. 이 블로그 글을 위해 펴든 것이 매우 오래전의 일이었다는 말이죠) 이 대목을 꺼내 든 것은 마침 "후한서 동이열전 연구"라는 책을 보기 위해 가평의 도서관까지 갔다가(삭주에는 없습니다) 마침 이 대목에 대한 언급이 나온 것이 첫째요. 마침 "남만 탐미다례 천년사"의 일로 시끄러운 형국이라 그렇습니다. 원문 二年春, 遣將襲漢右北平・漁陽・上谷・太原, 而遼東太守蔡彤, 以恩信待之, 乃復和親. 번역 2년 봄, 장수를 보내어 한의 우북평・어양・상곡・태원을 습격케 하였다. 요동태수 채동이 은덕과 신의로 대하니 이에 다시 화친하였다 - 삼국사기 권 14, 고구려본기2, 모본왕 2년조 일단, 눈에 들어오는 지역의 위치는 이렇습니다. 지금의 북경의 ..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느냐를 두고 수십년간 싸웠는데, 지금까지의 결론대로라면 결코 해결되지 않을 문제다. 한 문단의 기록에 요즘식으로 말하면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그리고 반일종족주의, 부카니스탄의 현대사 인식이 골고루~ 골고루 섞인 서술이 나온다. 방금 이 말이 선뜻 이해가 안된다면 행복한 닝겐이시라는 증거다. 그 옘병할 글을 안보는 것만으로도 아다마의 안위는 보장된다. 또 태극기부대는 무식하게 런승만과 부뚜막을 동열에 놓지만 시바스리갈 쳐마시다 뒈진 반신반인은 런승만을 증오하는지라 매우 모욕감을 느낄 것이다. 마치 양녕대군의 후예인 코리안 프린스가 충녕대군 후손의 왕실을 증오하던 것처럼,(어차피 가까운 시기에 갈라져나온 서자계열이라 양녕대군 계승이어도 기회는 없겠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