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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사료비판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본문

한국고대사이야기/고대사 잡설

사료비판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21. 5. 27. 00:24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느냐를 두고 수십년간 싸웠는데, 지금까지의 결론대로라면 결코 해결되지 않을 문제다.

한 문단의 기록에 요즘식으로 말하면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그리고 반일종족주의, 부카니스탄의 현대사 인식이 골고루~ 골고루 섞인 서술이 나온다. 방금 이 말이 선뜻 이해가 안된다면 행복한 닝겐이시라는 증거다. 그 옘병할 글을 안보는 것만으로도 아다마의 안위는 보장된다.

또 태극기부대는 무식하게 런승만과 부뚜막을 동열에 놓지만 시바스리갈 쳐마시다 뒈진 반신반인은 런승만을 증오하는지라 매우 모욕감을 느낄 것이다. 마치 양녕대군의 후예인 코리안 프린스가 충녕대군 후손의 왕실을 증오하던 것처럼,(어차피 가까운 시기에 갈라져나온 서자계열이라 양녕대군 계승이어도 기회는 없겠다만) 이걸 한세대 뒤의 닝겐들이 신화로 스까버려 역사라 한다. 그 맥락을 기억하고 전달받은 세대는 들으면 빡치겠지만 그러한 맥락이 거세된 시대의 사람들은 약간의 모순에 갸우뚱하면서 나름 합리적인 해답을 찾는거지. 다만 우리가 미래로 가면 곧바로 뇌손상을 입을 것인데,


보통 신라기록이 문제라지만 그건 국지적인 복잡함이고 고구려기록은 다국적으로 복잡하다.(백제는???) 이런 문제의 가능성은 생각치 않고 기록을 신뢰하느냐 마느냐로 싸웠으니, 정작 그 자료의 분석은 표피수준에서 끝난 셈이다. 삼국지와 후한서의 신뢰문제(이건 중국사학사는 아예 한 글자도 안봐야 가능한 거고),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각 파트별 해석 문제, 중국사 전공자라면 대번에 알아챌 수 있는 삼국사기의 편제, 삼국사기 각각의 기록이 어느 소스에서 나왔는가를 생각치 않는 상황에서 초기기록이 옳네 그르네, 믿어주네 마네, 고고학자료와 어떻게 연결시켜 진위를 입증할까 하는 것은 엉뚱한 사람 시체 가져다놓고 부검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문제는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삭주/명주 통틀어 가장 무식한데다, 만약 이 바닥의 한자알못 전국대회를 연다면 금방 전국재패를 할만큼 한자 모르고, 한문 읽기에 어두운 냔이라는 게 개그다.(진짜 교육부에서 정해준 한자도 다 몰라여)

말꼬리 --------------------------
언젠가 대우재단 건물에서 실경 17:1이라 표현해도 과하지 않은 대혈투가 있었는데, 아무리 헛점이 있다해도 거인의 수제자란 이름은 가챠로 얻은 것이 아님을 보여주더라. 그런데 믿어주자고요~가 반복되어서 문제였지. "신라골품제연구"의 족강 부분을 읽다가 진짜 족강당해본 것도 나름 그분 탓은 아니지만 덜덜 떨리는 경험.

아직도 후한서가 삼국지보다 늦게 만들어졌으니 후한서가 삼국지(동이전을) 베낀 것이라는 명제가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이 놀랍다. 1980년대는 그랬지만 2020년대에는 그러면 안되는 것이다.

장초금의 "한원" 고구려조로 한정한다면, 왜 삼국지가 더 중요한데, 정작 후한서를 주 택스트로 삼았을까? 그땐 이해가 안되었는데, 이제는 좀 감이 오는 것 같다.(다른 부분도 삼국지보단 후한서 우위다. 적어도 초당의 역사를 만지던 사람들이 왜 그랬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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