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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고대사에 대한 기록 중에는 고흥이라던가 이문진, 또는 김대문이라는 이름은 전해지지만 그들의 저작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필자는 화랑세기를 인정하지 않는 쪽에 위치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최소 김부식은 여러 종류의 사서를 본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중에서 중국사료들을 제외하면 남아있는 것이 없습니다. (김부식이 국내사료를 인멸하지 않았음은 다음 글을 살펴주세요 → http://rgm-79.tistory.com/8) 그래서 김부식이 서술한 삼국사기가 어떤 사서인지 비교할 대상이 없기에 각자의 마음 속에서 그리는 심국사기의 이미지가 너풀너풀 날아다니는 중이죠. 문제는 삼국사기 안읽고 하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진실처럼 포장된 상태로요. 그런데 삼국사기 안에는 약간의 흔적이 남아있기도 합니다. 김부식은 유달리 최치..
※ 현재 RGM-79가 모처에서 진행중인 한국사 수업에서 삼국사기에 대한 부분은 따로 설명을 하지 않고 넘어갔는데 여기서나마 대략적인 내용을 적어두려고 합니다. 어차피 삼국사기를 다루는 블로그니 이런 개략적 정리 하나쯤은 필요하겠지요. 김부식과 삼국사기 1. 김부식(1075~1151) : 신라왕실의 후예로 다른 집안과는 달리 뒤늦게 중앙정계로 진출. 김부식의 형제 4인이 모두 과거에 합격함. 문장에 능해 여러 차례 송에 사신으로 파견되었으며, 금의 압박이 거세지자 이자겸과 현실적인 외교관을 주장했으나 그의 전횡에는 반대함. 이후 수상의 자리에 올랐으며, 묘청일파가 서경천도를 주장하자 반대함. 1135년 묘청의 난이 일어나자 개경의 서경파를 제거하고 진압에 나서 1년 만에 토벌함. 윤관의 아들 윤언이와의 ..
삼국사기에 인용된 자료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우선은 확실한 인용이 있는 것만 추려보니 총 65건 이상이 발견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국내기록을 추려보면 아래 표와 같습니다.
시중에 돌고 있는 삼국사기에 대한 책의 상당수는 삼국사기에 대한 번역이거나 아주 전문적인 연구서들입니다. 많이 들어본 이름과 달리 친숙하게 접근할 수도 없죠. 예전처럼 논어 맹자는 유치원 때 다 읽었다는 시절도 아니니 번역서를 편다해도 그 생경한 단어들과 지금과 너무 다른 글쓰는 방식에 의해 편안하게 읽지는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읽지도 않은 사람들이 누군가 (역시나 제대로 읽지못한) 한 말을 이어받아 확대재생산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요. 게다가 인터넷의 보급으로 유사역사학이 더 활기를 찾아감에 따라 삼국사기는 그 실체를 잘 모르니 신비주의로 포장되기는 커녕 실체와 반대로 너덜너덜해지고 있지요. 전문서이긴 하지만 학부생의 수업용으로도 손색이 없는 책 한 권 소개하고자 합니다. 정구복, 『삼국사..
1. 들어가며 삼국사기는 한국고대사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문헌기록입니다. 동시대의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한계를 가지고 있지요. 김부식은 자료수집의 과정을 거쳐 전시대에 기록된 문헌자료를 수집하였을 것으로 추측되고, 또 내부의 기록 속에 인용한 자료의 이름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 인용서적은 중국의 사서오경부터 일본의 기록까지, 시문집으로부터 불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함을 보여줍니다. 이 글은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어떤 방법으로 쓰고 있는가를 알아보는 입장에서 국내자료, 특히 고려시대의 저술과 문집을 어떻게 이용하였는가를 찾아내보려고 합니다. 과연 김부식은 어떤 자료를 보았는가를 넘어서, 동시대인들이 편찬했을 다른 자료들을 어떻게 취급했는가에 관심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지요. 2. 삼국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