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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검군 02 - 조직의 논리 본문

삼국사기를 읽어보자!/신라이야기

검군 02 - 조직의 논리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2. 7. 14. 23:05


오늘은 너무 커서 이렇게 변화를 주었습니다.


원문

劒君出至近郞之門 舍人等密議不殺此人 必有漏言 遂召之 劒君知其謀殺 辭近郞曰 “今日之後 不復相見” 郞問之 劒君不言 再三問之 乃略言其由 郞曰 “胡不言於有司” 劒君曰 “畏己死 使衆人入罪 情所不忍也” “然則盍逃乎” 曰 “彼曲我直 而反自逃 非丈夫也” 遂往 諸舍人置酒謝之 密以藥置食 劒君知而强食 乃死 君子曰 “劒君死非其所 可謂輕泰山於鴻毛者也”원문


번역

검군은 (관아를) 나와 근랑의 문하에 이르렀다. 사인들이 몰래 의논하기를 ‘이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필히 말이 새나갈 것이다’라 하였다. 드디어 그를 불렀는데, 근랑은 그 모살(기도)를 알고 근랑에게 작별하며 말하기를 ‘오늘 이후 다시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라 하였다. 근랑이 이유를 묻자 검군은 아무 말도 안했는데 다시 세 번을 묻자 이에 그 이유를 간단히 말하였다. 근랑이 말하기를 ‘어찌하여 유사에게 말하지 않았는가?’라 하자, 검군이 말하기를 ‘자신이 죽는 게 두렵다고 여러 사람을 죄에 빠지게(처벌받게) 하는 것은 진실로 참을 수 없는 겁니다’라 하였다. (근랑이) ‘그렇다면 어찌 도망치지 않는가’라 하자, (검군이) 대답하기를 ‘저들은 구부러졌고 나는 곧은데 반대로 자신이 도망간다면 이는 대장부가 (할 일이) 아닙니다’. 드디어 (그들에게) 갔다. 여러 사인들이 술상을 차리고 사과하는데 몰래 음식에 약을 쳤다. 검군은 그것을 알며 애써 먹고 죽었다. 어느 군자가 말하기를 ‘검군은 죽을바가 아닌데 죽었다. 가히 태산을 깃털보다 가벼히 여긴 자’라 하였다.


작년 7월 30일에 쓴 글의 마무리를 딱 1년에서 보름 앞두고 짓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야 댈 수 있는데

이 기록을 어찌보면 지나가는 기록으로도 볼 수 있지만

신라사회가 통일전쟁을 앞두고 어떻게 재편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화랑의 개념이나 중고기 신라의 사회변동을 이야기해야 하기에

검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은하영웅전설 한 권 쓸 각오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각오가 덜 되었는데 그냥 질러봅니다.

어쩌면 나중에 후회할 지도 모르지만요.


신라사회는 수평적인 사회였습니다.

물론 왕이 있고 그 아래 여러 계층들이 존재했지만 세상 내부의 질서는

공동체에 입각한 수평적인 사회였습니다.

현대 한국사회의 가장 큰 정치적 폐단 중 하나가 ‘우리가 남이가’였지만

그 시대의 ‘우리가 남이가’는 그럭저럭 좋은 말입니다.

영화 분노의 역류에 나오는 ‘You go, We Go!!’라는 대사의 원조랄까요?

예전에 인류학개론 수업에 자주 빼먹는 주제에

레포트 10개 내라는데 딱 하나 막가는대로 쓰면서 

말미에 ‘자꾸 교실에서 담배피시는데 당신이 마도로스냐’고 쓰고 

장렬히 자결용 권총 하나를 받은 적이 있지요.

(부러우시면 소주 잔뜩 먹고 새벽 3시에 쓰면 됩니다. 직장인은 사직서로 시도해보세요! 탕!!)

몇 번 출석 안한 수업에서 유일하게 건진 것이

누어족이라는 인류학에서 약간 유명한 부족의 교육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그냥 동년배 아이들을 풀어놓더라구요. 

마치 텔레토비처럼 지들끼리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어께너머로 배우고

(다행히 얘들은 머리에 안테나도, 배에 모니터도 없더군요)

더 많은 시간을 놀아버리며 성장해 가는데

그 무리에서 각자 성인이 된 후에 이루어질 그 부족의 내각이 만들어집니다.

대장과 참모, 행동대장 등이죠.

어쩌면 화랑의 원초적 형태도 저런 것이 아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저런 청년들에 대한 기록도 있었으니

지금도 가지고 있는 화랑에 대한 인식이 그날 이후 만들어집니다.

(저야 제 생각이니 믿어야 하겠지만 여러분이 동의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신라의 발전은 늦어서 다른 나라처럼 강한 힘을 가져 살아남으려면

변해야 하는데 기존의 질서가 너무 견고해 그것을 부수려고 하다간 

사회 전체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신라인들이, 산라의 집권세력들이 택한 것은 절충안이었습니다.

그것은 매우 현명하고, 현실적인 판단이었습니다.

그들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잘 버무리며 연착륙을 시도한 덕분에

신라의 제도를 연구하는 후세 학자들의 머리는 이웃나라 녹아버린 원자로 직전이지요.

화랑도 그런 수평적인 질서를 수직적인 세계에 맞추기 위한 하나의 제도적 장치입니다.

“임금님은 하‘느’님과 동기동창이시다. 깝치지 말자”

이런 말로 밀어붙이고 싶으셨겠지만 함부로 입밖에 내세울 수 없었겠죠.

“임금님과 아부지는 하‘느’님과 동기동창이시다. 깝치지 말자”

이렇게 신라인이 국가에 절대복종하는 국가를 만들고 싶은 속내는 중대에 들어서야 구현됩니다.


신라에서는 중고기에 들어 불교도 받아들입니다.

(달리 이야기하자면 불교의 신도조직을 국가 통치에 흡수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효경을 통한 수직적인 사회질서 구축에 들어갑니다.

부모에게 절대 복종이 구현되면, 그 다음은 국가에 대한 절대복종이 따르죠.

그러나 내부에선 다르게 돌아갑니다.

어느 기술관리는 ‘그딴 건 장식이죠. 높으신 분들은 모르신다니까요’라고 깐족대고 있었을 겁니다.

피가 물보다 진하다면 수평의 동료는 수직의 군사부보다 더 찐득찐득한 존재였을 겁니다.

사다함은 친구가 죽자 따라 죽음을 맞이하고 귀산과 추항은 패배에 맞서 당당히 달려갑니다.

전우의 죽음을 뒤로 하고 살아 돌아온 원술는 삼국지의 원술보다 더한 찌질이로 낙인찍혔고요.

관창이 죽고 목만 돌아왔을 때, 그 애비란 놈이 목을 쳐들고 그 피가 옷자락을 적시는데

‘내새끼 예쁘다. 이놈 얼굴이 살아있을 때랑 다를바가 없다’는 소위 약팔고 있을 때,

(관창전 원문을 도서관에서 읽다가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 것을 겨우 참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놈의 유신세력들이 지껄인 호국신화 개드립에 감동해서가 아니라

진짜 “전쟁의 얼굴”이 저와 마주하듯 다가왔기 때문이죠. 오라는 베르단디는 아니 오고)

신라의 병사들은 자기 조카, 동생 죽은 것 이상으로 흥분해서 패배의식을 걷어버리죠.

한참 후인 무열왕의 시대에도 밑바닥 정서만은 살아있었습니다.


이제 검군의 이야기로 돌아갈까요?

검군은 죽을 것을 알고 자기의 대장인 근랑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겨우겨우 사정을 알아낸 근랑이 왜 신고하지 않느냐고 묻자

검군은 나 하나 죽으면 될 일인데 여럿 다치게 하는 건 차마 할 수도,

그것을 참고 신고할만큼 나쁜 놈이 될 수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요즘과 같은 세태에 이런 검군의 대답은 정의감을 중요시하는 분들은 이해가 안되실 거지만

안치환의 노래처럼 그렇게 네놈에게 술을 사줬는데, 

인생 너님은 술 한 잔 안사주냐고 울고픈 서글픈 인생들은 

소주 한 잔 기울이며, 담배 한 모금에 살다보면 어쩔 수 없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개의 스피카의 아스미처럼 

‘어째서 어른들은 모두 저런 슬픈 얼굴을 하는 거지?’라고 물어도 어쩔 수 없죠.

너도 살다보면 다 그래.. 아 적고나니 기분 거지같네)


그런데 더 현대인이 납득할 수 없는 것은 근랑의 태도일 겁니다.

그래 조직은 무섭고, 그깟 의리는 천금과 같다니 검군의 이야기는 조폭영화, 마피아 영화같죠.

그런데 근랑은 결국 사정 다 듣고나서 한다는 소리가 도망은 안치냐는 것이죠.

그리고 자신의 낭도가 죽는데도 아무 행동도 취하진 않습니다.

그래도 권력자 자식이니 나중에 출세해서 그들을 조용한 방법으로 엿 먹였을 수도 있지만

국가 공권력에 의해 처벌하는 것은 택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21세기의 인간과 6~7세기의 인간 사이의 간격입니다.

국가의 재산을 횡령해도, 그것을 거부하는 자를 내부적으로 죽여도

조직의, 동료라는 의식이 너무 강합니다.

그 사이 법흥왕때부터 중국의 영향을 받아 열심히 중앙관청 세우고

불교 믿어라, 효경 읽어라, 화랑들은 세속오계 잘 지켜라 이런 공문 날려도

사람들은 결제란에 열심히 사인하고 도장찍고는 여전히 과거처럼 살아갑니다.

검군이 죽은 것은 그 시대인으로서 철저히 살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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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꼬리 : 

1. 이 시대 정서랑 가장 유사한 것을 보고 싶다면 일본의 전국시대물같습니다. 소설로는 그 유명한 대망이나, 가이온지 쵸고로의 하늘과 땅과, 그리고 NHK에서 매년 해주는 대하드라마(갠적으론 풍림화산을 추천합니다) 그렇게 한국사를 깔아뭉개던 제국주의 시절의 일본학자들이 화랑 좋아한 게 이해가 됩니다.

2. 이준익 감독의 황산벌은 6~7세기 신라사회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교과서입니다. 특히 전반부는 고대사 수업때 써도 될 정도입니다. 정말 이준익 감독에게 묻고 싶어요. 중고기 신라사를 석사 이상 공부하고 쓴 건지, 아니면 예술가의 감각이 번뜩인 것인지요. 이 영화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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