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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산상왕 즉위년 05 - 발기씨는 친구가 적다.. 본문

삼국사기를 읽어보자!/고구려이야기

산상왕 즉위년 05 - 발기씨는 친구가 적다..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2. 12. 25. 13:07


원문

發歧知難 以妻子奔遼東 見太守公孫度 告曰 "某高句麗王男武之母弟也 男武死 無子 某之弟延優與嫂于氏謀卽位 以廢天倫之義 是用憤恚 來投上國 伏願假兵三萬 令擊之 得以平亂" 公孫度從之 


해석

발기는 (일이 이루어지는 게) 어려움을 알고 저자와 함께 요동으로 떠나서 (요동)태수 공손도를 만나 말하기를 "나는 고구려왕 남무의 형제올시다. 남무가 죽고 자식이 없어 동생인 연우가 형수와 공모하여 즉위하였소. 천륜의 의를 저버렸으니 이에 화를 참을 수 없어 상국에 투항하는 바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데병사 3만만 빌려주셔서 그들을 쳐 난을 평정케 해주시오." 공손도가 이 말에 따랐다. 



역시 모자이크는 이 블로그의 특산품이죠~!!

빨리 어서 이 시리즈를 끝내고 싶어요. 주인공 이름을 부르기 참 민망해요. 소드마스터 척준경이 드라마나 영화화 안되는 이유가 있어요. 오직 그의 친구 한 명의 이름이 문제죠. -_-;;;


발기씨가 욱하는 성질에 한 번 칼을 뽑았는데 아무도 따라주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당대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약간 다른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어요. 발기가 형이 되지 못해서 삐치자 연노부涓奴部의 대가랑 그 집단 3만명과 요동군에 항복을 한다고 나옵니다. (소노부消奴部의 오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건 또 삼국지의 판본문제라 건드리기 싫군요)


이때 옆동네에선 그야말로 온갖 혼란의 올림픽이 날마다 개최되고 있었지요. 저 요동 태수의 이름을 듣고 바로 떠오르는 게 있다면 아마 맞을 겁니다. 삼국지2로 치면 1번땅 양평의 군주지요. 이때 요동군의 특수성은 그야말로 한 권의 책으로 써야할만큼 복잡하지만 간단히 요약하자면 동방세계를 아우르는 핵심적인 군현입니다. 후한 후반에 주가 실질적인 행정구역이 되기 전에는 군이 지방지배의 최고 단위였지요.(초창기의 주는 군보다 낮아서. 지방통치의 감시역인 자사의 관할 범위입니다. 주 자사는 태수보다 급이 훨씬 낮았습니다. 태수가 2천석급이라면 자사는 6백석입니다) 태수는 황제에게 직소가 가능할 정도입니다. 


본래 군과 군은 동등한 것이지만 동방세계를 관장하기 위해 세운 여러 군현은 모두 요동군의 지휘통제 하에 있었습니다. 낙랑군이나 현도군, 대방군 등의 태수는 황제에게 직접 통해 통치를 수행한 게 아니라 요동태수의 통제하에 여러 정책을 수행한 겁니다. 아예 낙랑군이 처음 세워질 때는 관리도 구하기 어려워 자체적으로 한인 세력이 안착하기 전에는 요동에서 관리를 파견해서 임명하였죠. 삼국지에서야, 특히 조조가 화북을 먹은 이후로야 양평의 공손씨는 엄백호로 통일하기 보다 더 어려운 난이도를 자랑하지만 실제 위상은 어지간한 군소 군주보다 더 낫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당시 그가 관장하던 동방세력들은 황제에게 조공을 한 게 아니라 요동군에 하면 거기서 수도로 전달해주던 땝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발기씨가 공손도에게 갔다는 것은

동방세계의 조정자로서 요동태수의 권위를 빌어 해결하겠다는 거지요.

고구려의 내부에서 지지를 얻지 못하자 어떻게든 해결하겠다는

우리 주인공(맞아???)의 의지!

이런 의지가 지나치면 동료를 왕따시켜놓는다던가

어느 별세계의 거대로봇처럼 우주 자체를 포맷해버리는 결과를 낳습니다.

(T의 의지!! 이데의 의지!!)

3만이나 되면 아주 적은 것은 아니라지만 전체 인구를 볼 때

발기씨는 친구가 적었습니다.



삼국지연의의 피해자 공손도. 하지만 12편의 일러는 좋군요. 저작권은 코에이사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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