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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산상왕 즉위년 06 - 그래도 형제는 있었다 본문

삼국사기를 읽어보자!/고구려이야기

산상왕 즉위년 06 - 그래도 형제는 있었다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3. 1. 2. 18:30

원문

延優遣弟罽須 將兵禦之 漢兵大敗 罽須自爲先鋒追北 發歧告罽須曰 “汝今忍害老兄乎” 罽須不能無情於兄弟 不敢害之 曰 “延優不以國讓 雖非義也 爾以一時之憤 欲滅宗國 是何意耶 身沒之後 何面目以見先人乎” 發歧聞之 不勝慙悔 奔至裴川 自刎死 罽須哀哭 收其屍 草葬訖而還


해석

연우는 아우 계수를 보내어 병사들을 이끌고 (발기의 군대를) 막게 하였다. 계수는 스스로 선봉이 되어 패한 자들을 쫓았다. 발기가 계수를 보고 말하기를 “너는 지금 늙은 형을 해하려 하느냐”고 하자 계수가 형제에게 무정할 수 없어 감히 해치지 못하고 말했다. “연우는 나라를 양보함이 없으니 비록 의롭지는 못하다. 그러나 당신은 한 때의 분노로 조국을 멸하고자 하니 이는 어쩌자는 것이냐. 육신이 죽은 후에 어떤 얼굴로 조상들을 대할 것이냐?” 발기가 그 말을 듣고 뉘우침을 이기지 못하고 배천으로 도망가 스스로 목을 베고 죽었다. 계수는 슬퍼서 곡을 하고 그 시신을 수습하여 임시로 묻고 돌아왔다.


원문 첫머리는 연우의 延자로부터 시작하는데 그 글자는 앞장에 걸쳐있는지라 과감히 제낍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욱할 떄가 있어요. 그래서 옛사람이 그러잖아요. 참을 인忍 세 번 쓰면 사람도 구한다고요. 어느 성급한 사람이 그 말을 들었기에 언니를 찾아온 처제가 언니랑 한 이불 속에서 잠든 것을 보고 불륜으로 오인해서 살인내려던 것을 막았다지요.


앞서서 공손도에게 찾아간 발기씨는 3만 군사를 빌려, (또는 원래 자기를 따라 이탈한 3만호에 달하는 연노부涓奴部, 혹은 소노부消奴部 세력의 군대를 이끌고 공손도에게는 정치적 성원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고구려를 공격하여 무력으로라도 자신의 정당성을 찾으려고 하였지만 그의 무력행위는 실패로 끝납니다. 이제 왕이 된 연우는 동생인 계수를 보내어 그의 군사를 막게 하였고 계수는 형의 군대를 물리칩니다.


전장에서 형과 동생이 만납니다. 무슨 ‘태극기 휘날리며’의 전매특허도 아니고 늘상 있어왔던 일입니다. 같이 자란 형제, 우정을 나누었던 친구가 적이 되어 전장에서 만나는 일은 흔합니다. 이 기록이 그냥 이겼다면 그냥 지나갔을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 나오는 대사는 또한 절절합니다. 이것이 삼국사기를 읽는 이가 끝까지 손에서 놓으려 하지 않는 이유가 됩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에게 칼을 거두냐고 묻습니다. 늙은 형이, 그러자 답합니다. 어린 아우는, 셋째형이 치사하게 새치기한 것은 사실 옳지는 않다. 그러나 당신이 한순간의 욱한 것으로 조상의 나라에 칼을 겨누는 것은 잘한 것이냐. 나중에 죽어서 조상들 얼굴을 어떻게 보려고 이러는 것이냐. 형은 그제야 머리가 차가워졌나 봅니다. 동생 앞에서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가서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따라간 동생은 형의 시신을 앞에 두고 오열한 후 임시로 무덤을 만들어 묻어주고는 개선합니다. 그리 자랑스럽지도 않은 오만가지 만감이 스쳐지나갔을 것입니다. 고구려 역사상 가장 큰 내란은 그렇게 막이 내립니다.


정작 이 내란에 대한 기록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후대의 안장왕 사후 벌어진 왕위 쟁탈전이 더 알려져 있지만

그 사건 이상으로 이 내전은 심각한 국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545년의 내란이 수도에서 벌어져 패배한 측의 전사자가 2천명에 달하고

그 여진이 지방까지 몰아쳐서 몇 년간 혼란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551년에 신라군이 북진을 할 적에

승려 혜량이 날마다 여기저기서 싸워대니 나라 망하겠구나..라며

신라군에 귀순을 합니다.

(고구려 후기사에서 이 내란은 연개소문의 정변 이상의 파괴력을 갖고 있긴 합니다)

그러나 산상왕 즉위를 둘러싼 내란이 상대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고구려 역사에 더 심각한 결과를 낳을 뻔 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진수가 쓴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조에 이런 기록이 나옵니다.

(가끔 삼국지 위‘지’ 동이전이라는 표기를 보는데 이건 틀린 겁니다)


건안建安 연간(A.D.196~219; 고국천왕 18~산상왕 23)에 공손강公孫康이 군대를 보내어 고구려를 공격하여 격파하고 읍락을 불태웠다. 발기拔奇는 형이면서도 왕이 되지 못한 것을 원망하여, 연노부涓奴部의 대가와 함께 각기 하호 3만명을 이끌고 (공손강)에게 투항하였다가 돌아와서 비류수沸流水 유역에 옮겨 살았다. [지난 날] 항복했던 호족도 이이모伊夷模(산상왕)를 배반하므로 이이모는 새로 나라를 세웠는데 오늘날 [고구려가] 있는 곳이 이곳이다. 발기는 드디어 요동遼東으로 건너가고, 그 아들은 (고)구려에 계속 머물렀는데, 지금 고추가古雛加 박위거駮位居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 뒤에 다시 현도玄菟를 공격하므로 현도군과 요동군이 힘을 합쳐 [고구려에] 반격하여 크게 격파하였다.

- (국사편찬위원회, 중국정사조선전 해당 부분에서 인용)


발기는 패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연노부(또는 소노부)와 함께 

공손도에게 귀의한 후 비류수가로 돌아와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합니다. 

(저 기록에서는 공손강이라고 나오지만 197년의 요동군의 태수는 공손도였지요)

그의 아들은 고구려에 남았지만 

발기의 세력은 산상왕의 세력과 장기적인 대치를 합니다.

이것을 어디까지 봐야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고구려의 내부 기록과 중국사의 기록이 상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부식은 여기서 두 기록 중 내부 기록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다들 김부식하면 정줄 놓은 듕궉빠수니, 아니 사대빠돌이로 매도하지만

우리 기록과 중국기록이 상충할 시에는 우리 기록을 우선으로 두는 게 

그의 서술의 중요한 한 방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것을 다 따라가야 하느냐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무조건 하나를 버리기에 앞서 왜 상충되는가를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측 기록은 그 나름대로 악의적 왜곡하곤 거리가 멀긴 하지만

또 부끄러운 것은 가리려는 성향 또한 존재합니다.

적어도 고구려 중기(소수림왕 전후)에 고구려의 역사기록과 

왕실계보가 정리된다는 학계의 시각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가리고픈 흑역사인 것이지요.

우리 조상은 무오류다를 외치고 싶은데 

역사는 그렇지 못하니 자꾸 예쁘게 환경미화를 하고픈 욕망에 빠진달까요?

그리고 그 당시는 엄정한 역사의식따윈 개나 주는 시절입니다.

(온조왕 13년 – 내가 잘난 이유에서 이 이야기를 다룹니다)


또 중국의 입장에서 고구려는 벌레만도 못한 자식이지요.

왕망은 자기한테 대들었다고 하구려라고 부르고, 

(광무제가 후한을 건국하며 다시 되돌려놓기는 합니다)

후한 말, 삼국시대 당시에는 高句麗라는 국호가 있음에도 

가운데 짐승이름을 넣어 高駒麗라고 이름을 바꿔 표기할 정도입니다.

이 나라에 대해 칭찬하는 예는 극히 적지요.

좋게 써주기엔 관계가 매우 원초적 본능으로 망가져 있습니다.

(친하게 지낸 부여는 마도카고, 사이 나쁜 고구려는 그저 큐베개객기)

그러니 나쁜 일이 생기면 대서특필 해줄 것이지

‘친구의 허물을 들춰내는 건 온당치 않아’ 이런 생각 안합니다.

애초 친구도 아니고요.(친구가 적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 시리즈를 시작하게 한 동천왕기 기록에서 다룰 얘기지만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기록은 상당수 현지 조사를 거친 겁니다.

그냥 산해경처럼 판타지로 쓴 게 아니라

언젠가 조지고 부숴버리던가 항복받아야할 놈이니까

좀 자세한 정보를 얻어 정리한 일종의 정보보고서입니다.

(외교통상부나 국정원에서 내놓는 해당국가 편람이랄까요)

어쩌면 고구려는 가리고 싶은 흑역사라 후손들에게 말할 수 없고

중국, 당시 후한은(아직 안망했다능!) 요놈봐라 하며 기록한

역사적 사실의 흔적이겠지요.


어떤 분들은 형제간의 골육상정에만 귀 기울이실 수 있겠고,

또, 어떤 분은 배따라기를 떠올리며 

전반부의 야릇한 망상을 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눼, 삼국사기의 문장은 간결하고도 때론 맛깔납니다만 야설은 아닙니다)

고작 그것뿐이라고 생각하실 이유는 없어요.

다만 그 이야기에는 어른들의 사정도 숨어있다고 하고 싶을 뿐입니다.

어찌보면 고구려에 국한된 내분이고요,

또 달리보면 한반도 북부의 지배권을 확보하고픈 

중국의 욕망이 투입되어 확대된 국제사건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단, 공손씨의 모략으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소설은 지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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