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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산상왕 즉위년 02 - 불발된 배따라기 본문

삼국사기를 읽어보자!/고구려이야기

산상왕 즉위년 02 - 불발된 배따라기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2. 11. 20. 23:02


원문

初故國川王之薨也 王后于氏 秘不發喪 夜往王弟發歧宅 曰 "王無後 子宜嗣之” 發歧不知王薨 對曰 "天之曆數有所歸 不可輕議 況婦人而夜行 豈禮云乎" 后慙 便往延優之宅


해석

처음에 고국천왕이 돌아가셨을 때, 왕후 우씨는 (죽음을) 비밀로 하고 상을 공표하지 않았다. 밤에 왕제 발기의 집에 가서 말하기를 "왕에게는 후사가 없으니, 그대가 마땅히 물려받아야 합니다"라 하였다. 발기는 왕의 죽음을 알지 못하고 대답하여 말하기를 "하늘의 운은 반드시 돌아갈 바가 있으니 가벼이 논할 것이 아닙니다. 하물며 부인으로서 밤에 돌아다니는 것이 어찌 예에 맞는다 하겠습니까"라 하니 왕후는 창피하게 여겼으나 다시 연우의 집으로 갔다. 



오늘은 모자이크 없다! 귀찮아!!!

고국천왕이 죽었습니다. 국가의 안정을 위해서 빠른 정권이양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왕비 우씨는 왕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일체 봉쇄하고 밤에 몰래 첫째 시동생인 발기의 집에 갑니다. 


왕의 죽음을 알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만난다..라, 뭔가 특이한 경우입니다. 지도자/지휘자의 죽음을 알리지 않는 경우는 그 조직이 약간 혼란, 또는 어려움을 겪는 경우, 그리고 뭔가 집중해야할 때입니다. 최근 북한에서 김정일이 죽었을 때 곧바로 하지 않은 것은 전자일 것이고,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남긴 유언은 후자의 예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고구려가 혼란스러운 상황이거나 전쟁 중이었을까요? 그렇지 않는다면 제3의 가능성은 누군가의 권력욕이 작용했을 때입니다. 여기서는 바로 우씨가 그 중심에 서겠죠. 그렇다면 우씨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고국천왕 2년에 왕비가 된 우씨는 연나부라는 유력 집단 출신입니다. 이런 신분의 결혼은 아무랑 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나 이 시대의 왕의 결혼에는 왕비족이라는 존재가 보이는데, 명립답부가 차대왕을 죽이고 신대왕을 세우면서 입지가 강화되었지요. 나중에 별도로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겠지만 아직 초월적인 권력을 갖지 못한 왕이 유력 집단을 런닝메이트로 삼는 겁니다. 결혼을 매개로 자신의 부족한 힘을 채워서 국정에서 지분을 크게 만드는 겁니다. 그러나 이때의 왕비의 집안은 때때로 발목을 잡았습니다. 왕 12년(190년)에 친척인 좌가려와 어비류가 왕후의 권위를 믿고 권력형 비리를 저지르자 숙청을 모색하고, 그 이듬해 이들은 반란을 일으킵니다. 이러고도 왕비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면 그 지분의 비중을 익히 짐작할 수 있겠지요.


왕후 우씨는 집안도 세지만, 개인적으로도 권력욕이 있어 보입니다. 왕의 죽음을 모두에게 알리지 않고 바로 첫째 시동생인 발기에게 밤에 몰래 찾아갑니다. 왕과 나에게 자식이 없으니 유사시 당신이 이어 받아야 한다고 말하지요. 발기는 당연히 그 말에 반발합니다. 하늘이 정하는 것은 무겁기 그지 없는데, 임자 있는 몸, 그러니까 형수가 밤에 몰래 와서 시동생에게 왕의 부재라는 사항을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지요. 아마 제 생각에는 예가 아니다란 표현은 후대의 삽입일 것입니다. 유교적 윤리관이 박혀있던 시대가 아니거든요.


이 문맥만을 보자면 우리의 발기씨는 상당히 눈치 없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흔한 말로 '줘도 못먹는 色姬'인거죠.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봅시다.

발기는 말그대로 형의 죽음을 모릅니다.

게다가 그 형은 고구려의 왕이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형의 죽음 후에 일어날 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목숨을 건 행동입니다.

특히나 많은 자료들이 생략된 것으로 보이는데도 고구려 왕자들의 삶은 순탄치가 않습니다.

유달리 격한 느낌을 보여주는 긴장가득한 왕실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데

이것은 그야말로 골육생쟁을 일으킬 수 있는 문제를 야기한다는 겁니다.

뭔가 드셀 것 같은 형수,

그것도 상당한 세력을 뒤에 업은 형수가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

곧이 들었다가는 다음 날 아침 머리가 창에 꿰여 성문 앞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름 값 못하는 사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읽으면 읽을 수록 발기라는 인물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게다가 자식이 없는 형의 다음 동생,

이는 유리할 수도 있지만 어떤 점에서는 가시방석입니다.


결국 이 날의 선택이 형제와 왕실, 국가의 운명을 갈라놓는 대사건의 분기점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결국 부끄러워하긴 했지만 왕비는 또 다른 곳으로 행합니다.


※ 

1. 친구 하나 잘 둔 덕분에 한반도 최강의 무력괴인 척준경의 일대기가 사극이 안되고 있죠.

2. 오늘의 주인공 역시 뭔가 에로에로하긴 한데 행동은 청교도.

3. 참고로 발음만으로는 일본 아가씨들이 잘 먹는 과자 이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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