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되어서 뭐하려고?

1. 긴 서문

오프에서의 저는 그닥 귀염을 떨진 않습니다.

오히려 주먹과 욕설이 오가는..

마음이야 리리안의 소녀이지만 실생활은 마스크쓰고 목도 든

긴 치마의 양아치나 마찬가지라..

(뭐 요즘은 회의실 의자 던지기나 

책상을 발로 차서 날려보내기는 안합니다. 병약해져서 -_-;;)

모르는 거 물어보면 세세하게 설명을 해주는 편이지만

이런 진로문제는 그야말로 냉소덩어리가 되지요.

딱히 일을 하찮게 여긴다가 아니라

어설픈 정보로 대강대강 덤벼들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장미빛 미래보단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그가 앞으로 20년동안 겪게 될 미래를 알려준 후

그래도 하겠다면 도와주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아주 오래 전 돌아가신 선생님들이 제자 받을 때 하셨다는

'자네 집은 자네가 안벌어도 먹고 살만한가?'의 21세기형 버전인 셈입니다.

만화가 황미나가 문하생 받을 때 그랬다지요.

계속 라면만 먹고 살 자신 있냐고요.

가끔 대학원만 가면 박사도 금방 따고 교수도 된다고 생각하고 덤비는 애들이 있어요.

정말 자기가 구한 업계(?) 정보도 없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는 일부 몰지각한 대학원생들이 

구름 위의 세계에서  홍차나 마시며 호호호하면 다 된다고 뻥도 칩니다.

그리고 선생님들도 학부생들한테야 부드럽게 대하시니

그 분들이 유치원 보모인줄 알고 맘 편히 들오오기도 합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인생의 길을 선택하려는 친구들을 위해 이걸 씁니다.

2. 돈은 버냐?

경우에 따라 학회 일을 한다거나 프로젝트 잘하시는 분의 제자들이야

학비와 책값, 밥값을 벌 때도 있지요.

인문학계열의 연구비는 이공계나 사회과학 계열보다 적지만

제가 아는 분들은 거의 결벽증에 가까워서

가장 문제가 많다던 분도 다른 곳에 가면 털어도 먼지가 안나오는 정돕니다.

하지만 어디에나 공짜 점심은 없듯이 그 일 하다보면 공부 못해요.

게다가 공부에 매우 까다로운 분을 만나면 피를 토할 각오를 해야죠.

(이 바닥에서도 까다롭단 소릴 들을 정도면 그야말로 ㅇㅁ..)

한가하게 홍차?

뻥치는 色姬들치고 진퉁은 없다. 아님 막들어와서 분위기 파악 못했거나..

그리고 친구들 돈을 벌 때 자기는 친구들이 밥사줘요. 거지라고..

처음에야 좋겠지 나중에는 그것조차 괴로운 고문이 될껍니다.

그래도 열심히 공부해서 자리를 잡으면 돈을 벌겠죠..라는 분들을 위해

더 아픈 이야기는 다음 장으로..

3. 직장은?

몇 년 전에 광고쪽 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분은 이른 나이에 학교에 자리를 잡으셨는데 좋겠어요 하니 그러시더라구요.

그랬더니 40넘어가면 알아서 나와야해..라고 하시더라구요.

그쪽 일이야 뭐 자리도 있겠지만 인문학, 정말 순수문과쪽은 그런 자리가 없어요.

가끔 입학하고 졸업하면 교수 시켜주지 않나요란 질문을 하는 친구들을 보는데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라면 왜 다들 보따리장사(시간강사)나 하겠어요.

그런 생활을 오래 지내다 좀 이상해진 분들도 봤어요.

그분들은 하라는 공부 안하고 약이나 빨다가 그리 되었겠나요??

문제는 이 바닥에 자리가 그닥 많지 않고

(그나마 역사는 문학이나 철학보다 아주 약간 낫습니다)

또 학문의 특성상 오래되면 오래 될 수록 깊이가 더해지니

늙었다고 책상 빼앗을 수 없어요.

더욱이 80년대 초반에 급격히 사학과를 늘리면서 

갓들어간 박사과정생들도 교수임용이 되는 바람에

그 분들이 집단 은퇴를 하지 않는 한 자리가 없고

설령 그분들이 다 떠나셔도 그동안 적체된 인력이 적지 않다는 게 문제죠.

게다가 다들 그렇게 노인들도 아니고 건재하시죠.

예전엔 앞으로 나란히 줄세우면 현해탄에 다리가 생길꺼라고 농담했는데

요즘은 로스엔젤레스까지 갈 지도 몰라요.

교수가 아니면 전문대 전강(전임강사), 그것도 아니면 연구소라도 가자.. .

언젠가 '나는 어디 저 구석탱이 지방전문대 한국사 전강이라도 되면 좋겠어요'란

말을 했다가 그 주위의 선배들이 '너, 야심가구나', 

'젊으니까 패기 넘치네'라고 말했다는 슬픈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다들 그 생각 안한 건 아니죠. 거기도 이미 꽉 찼어요.

연구소? 이공계 연구소 생각하시면 곤란해요.

사람이 그렇게 필요한 구조도 아니고(거기서 태권V라도 만들까요?)

만약 무슨 학문적 업적이라도 없으면 할 수 있는 게 뭐겠어요.

그나마도 비정규직.

4. 그래서 어쩌라구요. 이 19세야.

대학원 가면 학비도 주고 용돈도 주는줄 알고 들어간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또, 고등학교 초반에 박사딸 때까지 얼마나 걸림 돈은 얼마나 드는지,

첫 월급은 언제 타는지 다 계산하고 들어간 사람도 알고 있습니다.

전자야 서서히 적응해갔구요. 후자도 그걸 알고 들어갔으니 어쨌거나 살아가고 있습니다.

둘의 초반의 차이는 컸지만 지금 현재 공통점은 둘다 환상은 없다..입니다.

위키백과나 뒤지고 인터넷 블로그 몇 꼭지 읽고나서

나는 이 부분을 공부했다고 뿌듯해하는 분들에게

아마 이 바닥이 매우 만만해보일런지 몰라요.

공부 좀 했다는 애랑 키워를 했는데 내가 발랐다구..

그 바닥은 별거 아니군 내가 가도 되겠어.'구헤헤헤헤헤헤헤헤~'

이런 생각까지하고 들어간다면 좀 폭탄이 되어버리겠군요. 주위분들에게..

정말 그 사람들이 전력으로 승부해주고 처참하게 패한 것일까요?

저번에 아는 분 블로그에 겁대가리 상실한 대학 초년생이

당신의 글이 맘에 안드니까 내가 논문을 발표해서 밟아주겠어..라는 소동이 있었는데

그게 끝났나 했더니 새로운 형태로 진행되더군요.

저같으면 회의실 의자로 갈겨버릴텐데.. 참 용케 참으시네 했네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몰라서, 잘하지 못해 틀리는 놈은 사랑으로 감싸줄 수 있어도

주제파악 못하는 놈은

지근지근 밟아서 숨도 못쉬게 하는 게 인정을 베푸는 것이다.

(좀 잔인한지 모르지만 여러 사람 피해주는 거 오냐오냐 봐주면 폭탄이 됩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요즘은 저도 그래요)은 그냥 피곤해서 빠지는 겁니다.

아니면 가까운 사람은 도시락이라도 싸겠지만

얼굴도 모르는 넷에서 스쳐지나가는 사람에게 인정을 베풀만큼

그렇게 한가한 동네가 아닙니다.

학문에 매진하니 다 리리안의 여학생들같을 것이다.

답사를 가거나 술자리에서 만난 선생님들은 선배들은 따뜻하고 위트있더라.

학문의 길을 걷는 낭만이 있더라...

어이~ 이봐요. 그들도 나름의 전장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5. 환상을 아주 버리고 제발 정보 좀 찾아다녀라.

언젠가 교육대학원에 들어가는 사람과 대화한 적이 있습니다.

거길 왜 가냐고 했더니 자격증 주고 임용고시 칠 기회가 있잖느냐고 하더군요.

이미 임용고사도 전문 고시학원화했고 나름 장수생들도 버글버글하던 시점입니다.

처음에 역사교사를 뽑는 수를 듣고 제가 잘못 들었나 했어요.

어느 해던가 전국에서 한자리수를 뽑더군요.

하지 말라가 아닙니다. 

무슨 공부나 학교도 카스트제도가 있겠어요?

제 말은 적어도 매우 처참할 정도로 정보를 파고 들라는 겁니다.

어디 날라리 리뷰 글보고 혹해서 애니 하나 다운받았다가 기분잡치면

딱 고만큼의 손햅니다.

적어도 읽지 말아야 할 리뷰어 목록이라도 남죠.

평생을 좌우할 선택을 잘못하면요?

우리 인생은 저장도 안되고 불러오기도 안되잖아요.

만약 이 바닥에 발을 걸치고 싶은데 정보가 없다.

어설프게 홍차애호가 흉내내는 사람 말고도 좀 냉소적인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어느 곳이나 그런 사람 한 둘쯤 있을 겁니다.

학비의 마련(요건 그나마 장학금이 많아진듯하더군요), 앞으로의 진로,

공부의 어려움.. 등등 뻥안치고 말해줄 사람요.

그러고도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뛰어드는 겁니다.

날자, 날아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