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배를 북처럼 두드리며.. 본문

역사이야기/역사잡설

배를 북처럼 두드리며..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3. 1. 4. 14:02

복고가(腹鼓歌)로 친구가 혼자 술 마심을 조롱하다 


그대는 보지 못했나 부호가 자제들 화려한 집에 놀 적에/君不見豪家子弟宴華屋

종 치고 북 두드리며 간간이 줄 퉁기고 피리 부는 것을/撾鍾擊鼓間絲竹

성서 선생은 홀로 그렇지 않아/城西先生獨不然

취하면 노래 부르며 큰 배를 두들긴다/醉後高歌鼓大腹

이 안에는 수백 사람 들어갈 수 있고/是中可容數百人

또 삼천 섬의 술을 저장할 수 있다네/亦能貯酒三千斛

기름진 밭의 쌀로 좋은 술 빚었기에/膏田得米釀醇醅

며칠 만에 맡아보니 향내가 물씬물씬/數日微聞香馥馥

하필 틀로 걸러 진국물을 짜낼 것이 뭔가/何必壓槽絞淸汁

머리 위의 두건 벗어 내 손으로 거르지/頭上取巾親自漉

한번 마실 땐 문득 양껏 마시는데/一飮輒傾如許觥

야채나 고기로 안주를 하네/佐以辛蒜或腥肉

배는 북이 되고 손은 북채 되어/腹爲皮鼓手爲搥

둥둥둥 종일토록 소리가 이어 난다/登登終日聲相續

언덕 너머 궁한 늙은이 얻은 술이 적어서/隴西窮叟得酒少

납작집에 머리 숙여 학이 쪼듯 한다오/矮屋低頭鶴俛啄

배는 야자 열매만하건만 채우지 못하니/腹如椰子猶未充

보이는 것은 푸른 소반에 비름나물뿐이로다/只見靑盤堆苜蓿

잠시 장물로 채우지만 이내 곧 고파져/暫盛水醬俄復空

공에 바람이 빠지면 쭈그러짐과 같구나/有如蹶鞠氣出還自縮

어찌하면 주려서 꾸르륵거리는 이 소리 가져다가/那將雷吼飢腸聲

선생이 배 두들기며 부르는 태평곡에 반주 맞출까/往和先生鼓腹太平曲


- 이규보, 동국이상국집 중에서(번역은 민족문화추진위원회, 현재 한국고전번역원 출처)


어제 슬쩍 언급한 이규보의 시입니다.

자꾸 이규보는 가난한 문학청년 코스프레를 하는데

(뭐, 신선+선량한 자 코스프레하는 백정&도살자 정철보다야 낫지만)

그래도 좀 재미나니 봐줍니다.

맨날 앓는 소리 지끼싸는 죽립칠현 주당들도, 도연명도 읽다보면

뭐, 국세청에 찔리는 거 있는지 맨날 미노프스키 입자 살포하고 자빠지고 있죠.

요즘말로 하자면 쁘띠거니가 보일러 기름 땔 돈 없어서 

촛불 하나 켜놓고 기나긴 겨울 밤을 지새운다..랄까요?

(물론 그랬다간 저체온증으로 죽습니다. 요즘같은 때)

그래도 단표누항의 안회같은 이상이 있어선지, 부채의식이 있는 건지 모르지만

실생활은 어찌되었던 간에 말로야 뭘 못하리. 

무의식적인 저 너머 어딘가에선가는 그걸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죠.


꼭 이렇게 삐딱하게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재미난 시예요. 이건,

아직 죽지 않은, 권력에 붙어 살면서도 여전히 어딘가 남아있는

문학 청년의 재기가 날려보내는 생존신고거든요.

(이거 제가페인에서 카미나기 료코의 잃어버린 데이터 찾는 기분이네요)


물론 강화도로 천도했을 때 너무 쪼들려 노비가 도망갔다는 말을 하지만

당시 백성들의 삶은 20세기가 감히 명함도 못내밀 암흑기였으니까요.

고려 후기로 돌아가 살고 싶다는 친구가 있으면 병원으로 보내야 합니다.

하다못해 그때 최악의 왕이라는 충혜왕이 죽었을 때 백성들이 춤을 추었다죠.

(여기에다 대면 연산군은 애민 군주입니다.

뭐, 백성들은 안건드린 편이죠. 사대부만 조지고 부시고 했지)

그리고 연달아서 외적들이 쳐들어오고, 나라는 안지켜주고 세금만 걷어대는..

정말 헬게이트 열린 시댑니다.

그 시대에 이런 유쾌한 시를 백성들이 지었다면 초월주의 걸작이 나왔겠지만

가진 거 다 가진 사람이 이러는 건 좀 아니다 싶기도 합니다.


그냥 술을 좋아하는 문인들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또 우울한 이야기를 적고 있군요.

내 전뇌의 고스트가 오염되고 있거나 해킹 당하고 있다..인가.

병원에 다녀오니 오락가락 합니다.

지금 네코모노가따리의 오프닝을 듣고 있는데

어쩌면 고양이 괴이가 이런 정줄 놓은 글을 적게 하는지도 몰라요.


에잇! 짐순이보다 모에하다닛!!!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