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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혜공왕과 투탕가멘.. 본문

한국고대사이야기/고대사 잡설

혜공왕과 투탕가멘..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0. 5. 22. 00:26
몇 주 전인가 일요일 아침에 디스커버리 다큐를 한 편 보았는데
투탕가멘과 그의 아버지 아케나톤에 대한 것이었다.
아시다시피 아케나톤은 범신론이 가득했던 고대사회에 최초로 일신교의 개념을 창시한 사람이다.
그가 아마르나에서 죽자 그동안 눌려왔던 세력들이 어린 파라오를 협박하여
아버지의 개혁을 없었던 것으로 하고 나중에는 투탕가멘도 죽인다.
그것을 보다 생각난 것이 바로 현재의 이집트.
그야말로 일신교인 이슬람교를 믿는 이가 대다수가 아니던가.
이슬람의 뿌리인 유대교도 그 시작은 아케나톤에게 배운 것이니
아마르나가 버려지고 아들은 피살당해도
결국 먼 시야로 보았을 때 아케나톤은 승리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좀 전까지는 아케나톤과 투탕가멘, 그리고 이집트만을 생각해 왔는데
방금, 혜공왕이 떠올랐다.
그는 왕, 아니 사내로는 태어나서는 안될 사람이었다.
아들을 얻겠다는 경덕왕의 무리한 욕심이 만들어낸 비극의 주인공이다.
여성성을 박탈당한 채 남자로 살아야 했다가 그마저도 이른 나이에 부정당한 사람이다.
그도 그의 아버지가 세운 한화정책을 포기해야 했었고
그 반대세력에 의해 목숨을 잃어야 했다.
순간적으로야 어린 왕은 목숨을 잃었고, 자기의 손으로 자기 아버지의 유산을 버려야 했다.
그러나 조금 멀리 돌아보면 경덕왕이 이루고자 했던 것은 
고려와 조선왕조에 들어서 완성이 되고 빛을 보았다.
과연 그들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을까?
역사는 그들을 어떻게 평가할까?

※ 혜공왕에 대해 알고 싶다면 기본적으로 이기백 선생님의 전설적인 논문인
  「신라 혜공왕대의 정치적 변혁」(『신라정치사회사연구』, 일조각, 1974)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 이런 글이라면 사실 개인 블로그에 올려야 하나 너무 글을 올리지 않은 관계로 여기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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