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처용가와 부치지 못한 편지.. 본문
부치지 못한 편지라는 DJ. DOC의 신곡 하나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자기의 첫사랑이 다른 남자와 있었고,
또 그 다른 남자가 그녀와의 일을 떠벌린 것에 대해 분노하는 심정에서 나온 것인데
디스야 힙합의 한 문화요소이기도 하지만 다른 디스와 비교를 거부하는 파괴력이 있습니다.
그 개개인을 욕하기 보다 이런 노래로까지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뭐, 디스 문화가 그렇게 활성화하지 못한 대다수에게 낯 선 것은 사실이죠.
그런데 이하늘을 비난하는 목소리 속에는 쿨한 척하는 것이 보여
그다지 좋아보이진 않았습니다.
자기 일이 아니니까 쿨하게 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사람 일이 그렇게 쿨할 수는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게 자기의 현실으로 다가올 때 대체 얼마나 쿨할 것인지..
그 점에 있어서는 상당히 냉소적으로 보는 편인데 실제로 쿨한 사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 이에(어느날) 대왕(헌강왕)이 개운포開雲浦[학성鶴城 서남쪽에 있으니 지금의 울주蔚州다]에서 놀다가 돌아가려고 낮에 물가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해서 길을 잃었다. 왕이 괴이하게 여겨 좌우에 물으니 일관日官이 아뢰었다. “이것은 동해룡東海龍의 조화이오니 마땅히 좋은 일을 해서 풀어야 할 것입니다.” 이에 왕은 일을 맡은 관원에게 명하여 용을 위하여 근처에 절을 짓게 했다. 왕의 명령이 내리자 구름과 안개가 걷혔으므로 그곳을 개운포라 했다.
동해의 용은 기뻐해서 아들 일곱을 거느리고 왕의 앞에 나타나 덕을 찬양하여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했다. 그 중의 한 아들이 왕을 따라 서울로 들어가서 왕의 정사를 도우니 그의 이름을 처용處容이라 했다. 왕은 아름다운 여자로 처용의 아내를 삼아 머물러 있도록 하고, 또 급간級干이라는 관직까지 주었다. 처용의 아내가 무척 아름다웠기 때문에 역신疫神이 흠모해서 사람으로 변하여 밤에 그 집에 가서 남몰래 동침했다. 처용이 밖에서 자기 집에 돌아와 두 사람이 누워 있는 것을 보자 이에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물러나왔다. 그 노래는 이러하다.
東京 밝은 달에, 밤들어 노니다가
들어서야 자리를 보니, 가랑이가 넷이어라.
둘은 내해이고, 둘은 뉘해인고.
본디 내해지만, 빼앗겼으니 어찌할꼬.
그때 역신이 본래의 모양을 나타내어 (처용의) 앞에 꿇어앉아 말했다. “내가 공의 아내를 사모하여 이제 잘못을 저질렀으나 공은 노여워하지 않으니 감동하여 아름답게 여기는 바입니다. 맹세코 이제부터는 공의 모양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 안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나라 사람들은 처용의 형상을 문에 그려 붙여서 사귀邪鬼를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아들이게 되었다... .
- 삼국유사 기이2 처용랑망해사조.
바로 처용입니다.
속세의 흔한 진리로 오쟁이를 짊어진 남편이 가장 늦게 알아버린다는데
이 남자는 밤까지 놀다가(뭐하고 놀았는지는 며느리도 모릅니다)
집에 들어와 방문을 여니 이불밖으로 나온 다리가 넷임을 발견합니다.
원해 대로라면 자기 부인의 다리만 있어야죠.
그런데 둘이 더 있으니 유쾌한 상황은 아닙니다.
치정살인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남녀간의 관계에 사람 독하게 만들 일이 여럿 있는데
그중 하나의 상황을 맞이한 처용은 칼 뽑아들고 돌격 앞으로~해야 했나,
악즉참(사악한 것은 벤다~)을 외쳐야 했나의 상황인데
오히려 밖에 나와서 춤을 추지요. 게다가 노래도 불러요..
마누라 빼앗겼다.. 우짜노~.
뭐 처용의 정체라던가, 역신이라 불린 것의 정체가 무엇이나,
부인이 정말 사통한 것을 본 것이냐, 병에 걸린 아내를 위해 주술을 사용한 것이냐
역신이 빌 때 부인은 뭐했냐,
역신의 일방적 공세에 당한 거냐, 둘이 좋아 죽어난 것이냐를 논하는 것은 이 자리에서 부질 없는 것이고
주제와도 맞지 않습니다.
그냥 저 기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때 쿨함을 실천한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그 상황에 냉정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요?
뭐, 처용의 이야기와 유사한 이야기로
평소에 성격이 너무 급해 무슨 일이든 참을 인忍자를 세번 세어라란 말을 듣던 남자가
집에 돌아왔을 때 부인 옆에 가랑이가 둘 더있는 것을 보고 흥분해서 칼을 뽑았다가
참을 인자 세 번을 외고 찬찬히 살펴보니
언니를 보러왔던 처제더라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노.래.가.사.대.로.라.면 그 후로도 3년을 더 참아낸,
과거의 첫사랑을 욕하는 리플조차 분노하는 이하늘이 대인의 풍모를 갖고 있군요.
'한국고대사이야기 > 고대사 잡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726년의 어느 연회에서.. (2) | 2011.03.08 |
---|---|
고대에도 유행은 있다.. (4) | 2010.11.23 |
고대사회 왕의 한 성격 - 충성의 방향성에 대해 (2) | 2010.05.30 |
혜공왕과 투탕가멘.. (0) | 2010.05.22 |
죽음의 행렬.. (2) | 2009.12.07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