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불국사와 석불사는 과연 개인적으로 만든 사원이었을까? 본문
오늘,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어제 학부 답사준비 세미나에 갔다 왔다.
답사자료집에 들어갈 내용을 미리 점검하는 자리인데
거기서 재미있는 발표가 두 건 있었다.
그중에서 불국사와 석굴사(석불암)에 대한 발표에서 의문점을 던졌는데
두 절이 가지는 미술사적 의미를 생각할 때,
일개 귀족이 고작 부모를 위해 짓는 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신심이 강하다한들 불상이나 조성하는 정도가 아니겠냐는 것이다.
먼저 결론을 이야기하면 그 건 틀린 생각이다.
먼저 불국사와 석불사가 아무리 위대한 건축물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국가 차원에서 관리할만큼 중요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위의 문장을 두 절의 가치가 없단 말로 오해 말기를 바란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절은 황룡사나 사천왕사, 흥륜사 등의
'성전'이 설치된 사찰들이다.
분면히 두 절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지워진 것이 맞다.
그리고 또 한가지 고대 귀족의 물질적 풍부함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었다.
인류사회에서 원시사회 이후 빈부의 격차가 가장 좁혀진 것은 20세기 후반이다.
(미국에서 최고경영자와 노동자의 임금격차가 1:50이었다던가...)
고대사회로 갈 수록 그 격차는 급격하게 벌어진다.
비록 20세기 이후보다 물질적인 풍요도 총량은 적겠지만
그것을 보유하고 있는 수준의 격차는 상상을 초월한다.
자동차 광고에서 1%를 운운했지만 고대사회,
통일신라를 예로 들더라도 1% 안에 들어도 사회적 지위가 아주 최상은 아닌 것이다.
통일신라의 정규관리 총원이 지방군 군관까지 합쳐서 3,600명이다.
그런데 그 것도 고위직으로 갈 수록 겸직이니 해서 실제 인원은 더 적다.
3,600명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사내, 거기에 가족들까지 포함해도
족히 수백만 단위는 되었을 인구 총원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
거기에 들어간다고 해도 진골이냐 6두품이냐에 따라 누릴 수 있는 혜택도 엄청 차이가 난다.
그리고 실제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보면
출궁당한 전 왕비가 왕실보다 더 값비싼 조영물을 개인 재산으로 충당하기도 하고,
거액의 재산을 희사하는 예도 많다.
불국사와 석불사가 매우 뛰어난 예술적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귀족이 전혀 엄두도 못낼 수준의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일 것은 바로 종교적 열정이다.
현대사회의 종교적 환경에서는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과거로 올라갈 수록 신의 절대성을 믿었고,
종교적 관념에 다른 '지식'이 가미될 여지가 매우 적었다.
세상에 대한 자연과학적 지식이 극히 적었던 시대로 올라갈 수록
낮에 해가 뜨고 밤에 어두운 것 조차도 설명이 필요하다.
당시의 지식으로 납득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여야할 때,
또, 무언가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될 때 강력한 종교적 열정이 필요한 것이다.
이래저래 몰라서 해결하지 못한 의문이지만
그래도 마냥 고개 끄떡이며 납득해버리는 것이 편할 것인데도
다른 해답이 있지 않을까 고민한 그 친구들의 노력엔 점수를 주고 싶다.
그들은 단지 그 부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지 못한 것 뿐이다.
뭐, 몰랐던 것은 배우면 된다.
다만 이런 의문을 가졌다가 해답을 찾았을 때,
그 지식이 각가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 자리에선 말하지 않았지만
답사에 나서서 그 친구들에게 설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친구들에게만은 불국사와 석불사라는 사찰이
교과서적인 설명과 다른 더 살아있는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까?
- 050323
--------------------------
05년이니까 좀 오래되었군요.
경주 답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부생들이 자신들의 주제발표를 하고 던진 질문이었는데
이런 질문이 나오는 것을 개인적으로 매우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그냥 개설서, 아니면 누군가의 논문을 철썩같이 믿고 와서
자신의 발표문이나 보고서에 그대로 녹여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적어도 이 친구들은 한 번 더 생각을 해본 것이잖아요.
그 질문에 대해 미리 원고정리 겸 해서 쓴 것이 위의 글입니다.
물론 답사 현장에 가는 길에 버스 안에서 설명을 해준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국고대사이야기 > 고대사 잡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대사회 왕의 한 성격 - 충성의 방향성에 대해 (2) | 2010.05.30 |
---|---|
혜공왕과 투탕가멘.. (0) | 2010.05.22 |
죽음의 행렬.. (2) | 2009.12.07 |
과연 조세는 공평한 것이었나? (0) | 2009.07.23 |
위만衛滿, 한 이방인 군주를 위한 변명 (2) | 2009.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