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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민들레, 그리고 민중, 역사학.. 본문

역사이야기/역사잡설

민들레, 그리고 민중, 역사학..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4. 4. 12. 12:48



짐순이는 사진을 잘 찍지 않습니다.

첫 디카는 망가질 때까지 4년간 500장 찍었던가..

어디 유적이나 가야 사진을 찍고 사람 안찍기로 악명을 떨치는지라

(사진도 안찍히려 노력합니다.. 단체사진 피하는 방법은 카메라를 드는 거더군요.;;)

사진 폴더 속은 항상 굳어있는 것에 머뭅니다.


그나마 이따금 봄이면 찍는 것이 민들레입니다.

위의 사진은 올해 처음 만난 민들레였습니다.

(w4로 찍었습니다.

그냥 손에 들고 다니는 게 그거니 사진 찍기 편하더군요..)

꽃이나 식물에 그닥 관심을 주지도 않는데

유일하게 정이 가는 게 민들렙니다.

가장 좋아하는 꽃이 또 뭔가 짐순이와도 관련이 깊더라구요,

인생에 있어서 그리 낙관이나 기쁨을 표시하지 않는데 

유일한 것이 이 꽃과 관렵됩니다.

어느 식사자리에서 몇 술 뜨시고는 식당 화단의 장미꽃만 찍는 분 정도는 아니지만

봄날에 카메라가 들려있으면 민들레를 찍습니다.

감상용이나 내보일 것이 아니니 구도니 뭐니 상관 없이 찍죠.

(사실 그게 뭔지도 이해를 못합니다..)


화단의 꽃보다, 사람의 발길이 치이는 거리의 틈새마다 꽃을 피우고

때로는 밟혀 으스러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하늘을 채우는 꽃가루로 욕을 먹기도 합니다.

살아갈 수 있는 곳, 아주 약간의 흙만 있어도 피어나는 꽃이건만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짐순이라도 사랑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어쩌면 저게 짐순이가 발견한 생명의 신비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도 집에 오는 길에 민들레를 발견하고 사진을 찍다 약간 기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짐순이가 역사공부를 하면서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건

화단, 온실속의 화초같은 사람들 입니다.

전쟁이나 정치제도같은 것외에도 신분제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주로 관심있게 보는 것은 그 가장 위층의 사람들입니다.

순간, 이거 어떤 모순이 아냐?

그런 생각이 들어버렸네요.

현재 사회적 위치도 마이너이고, 마이너한 것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정작 공부의 대상은 사회 0.001%에 치우쳐있다는 것.


80년대에 사람들은 민중사학을 외쳤더랬습니다.

어쩌면 한참 그 시절 역사학자들이 관심을 가졌던 사회구성체론도

어쩌면 그런 생각의 한 흐름이었어요.

(한참 후 세대인 짐순이는 민중사학에는 약간 부정적이고,

사구체론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의 입장이지요)

그래서 한때 고대사연구에서도 진성여왕 이후의 농민반란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었지요.

고대사에 한정한다면 

정말 흔적도 없던 고대의 민중을 연구자의 책상에서 발명하여 

근대 이후의 농민상에 코팅하는 행위를 그리 좋게 볼 수는 없다라구요.

물론 역사의 흔한 사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당연한 연구행위지만

성격이 다르고 그런 것에 대한 근거도 전무한 것에 

후대의 사실을 억지로 투영하는 것은 역사가의 만용이라고 보기 때문이었죠.

뭐, 고전문학쪽에서도 조선 중기의 기녀시조에서

페미니즘을 투영해보기도 했으니 이른바 시대의 조류였던가요?

(이른바, '그대는 시대의 눈물을 본다'죠. - 기동전사 Z건담 예고편 대사)

실질적으로 농업이 어업이, 수렵과 채집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런 것에 관심도 두지 않으면서

이론과 관념으로만 사회경제사를 연구하는 시절이었습니다.

(보, 본격 어르신들 디스!!!!)


그러나 기록과 유물로만 전하는 시대의 민중은 민들레와도 같습니다.

어디에나 존재하고, 어떻게든 살아남아 싹을 틔우는데도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김수영의 풀처럼 바람불면 흔들리고

딱 홀씨를 하늘에 뿌리면 제 수명 다하고 사라져 갑니다.

사회적이던 생물학적이던 원시적이거나 낮은 성능을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딱히 제 주장을 드러내지 않아요.

현미경을 들고 흙을 뒤져 그 보이지 않는 꽃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시도도 하지 않고

책상에 앉아 가상의 헤르만과 도르테아를 찾아내는 일.

그걸 싫어했던 것 같아요.

아직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는 것,

좀 더 자료를 모아야 알 수 있다면 그렇다고 말하는 것도

공부인 것 같습니다.



어제 찍은 민들레 사진입니다.

집에 오는데 길 옆에 피어있더군요.

집 입구의 화단한쪽 끝에도 올해는 민들레가 뿌리를 내렸습니다.

(민들레, 화단에 서다! 두둥!!)

이제 외출하면서 그걸 찍고 가야할 것 같습니다.


말꼬리 ---------------------

너무 어르신들의 연구를 깐 것 같지만

그 역사적 의의-사학사적-만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걸 지금에도 이어나가면 안된다는 것이죠.

다행히 고고학쪽에서 많은 자료를 발견하는 중이라

좀 더 축적되면 진짜 민들레가 살아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거의 유산을 거름삼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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