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사람사는 세상은 언제부터 불평등이 시작되었을까? 본문
남성과 여성은 오랜 기간 동안 불평등의 관계에 놓여있었습니다.
이 관계는 선사시대까지 올라갔지요.
생산도구의 지배 정도가 아니라
누가 더 생산에 있어서 더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느냐에 따른 격차가 벌어지지요.
수렵과 채집, 그리고 어로의 시대에는
사냥과 어로의 비중이 더 컸습니다.
아무래도 아이를 낳고 키우는 입장에서
여성들이 생산활동에 종사할 수 있는 것은 채집 뿐이었지요.
상당히 많은 사회가 채집에 많은 부분을 기대고 있었지만
단기적인 인상을 고려하면
확률도 낮고 시간이 걸리는 사냥보다 발언권이 떨어졌습니다.
그것이 농경의 시대에 와서는 더더욱 벌어지지요.
지금이야 개활지에서 살고 있으니 모르겠지만
처음 농경을 시작할 적엔 모두 숲이었습니다.
하다못해 나무를 베고, 뿌리를 걷어내고, 돌을 골라내는 작업에서
상대적으로 근력과 뼈의 골밀도 등에서 여성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서구에서는 1차와 2차 대전을 거치며 여성이 군수공장과 일부 군무에 종사하면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습니다.
(현 영국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도 참전용사입니다. 후방이지만 운전병으로 뛰었지요)
→ 후타바츠쿠시님의 지적에 따라 수송장교로 참전하였음으로 정정합니다.
한국도 해방 후 제헌헌법을 통해 여성의 투표권을 보장하고
나름 여성의 인권을 인정하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실질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안정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이지요.
자신을 성폭행하려는 사내의 혀를 잘라버린 여성이 오히려 범죄자로 몰려
법정에 서던 것이 80년대의 일입니다.
가해자의 부모는 피해자가 오히려 꼬리를 쳤다고 난리를 쳤죠.
남성과 여성의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한번 다룬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성의 차별이 아니라 부의 차별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사실 어느 역사수업에서나 신분의 격차가 생겨난 것은 청동기시대로 봅니다.
자연의 생산물을 그대로 가공하는 것이 아닌
형질을 변형시켜 결과물을 얻는 기술은 자연적으로 소수의 것일 수 밖에 없지요.
기술 자체가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것인데다
또 당장 먹을 것 걱정해야하는 상황에서 그 기술을 배우고
온갖 제조공정에 들어갈 사람들을 모으고 일을 하는 것이 쉽진 않죠.
지금처럼 스타트업이나 청년창업 같은 제도적 장치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석기야 누가 만들던 거기서 거기인 생산도구의 평등을 가져다주었지만
이런 신기술을 누가 소유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를 던져줍니다.
1만년 '부의 불평등' 이 화살에서 답을 보다
며칠 전에 읽은 한 기사는 여기에 대해 다른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기술을 가진 자, 계급의 상위를 형성한 사람은
어떻게 그 자리를 오를 수 있었던 걸까요?
그렇게 평등한 사회에서 어떻게 그걸 축적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겨난 걸까요?
지금까지 나온 책들에서 그 부분을 다루는 이는 적습니다.
신문기사에 인용된 사이언스지의 주장은 한가지 시사점을 줍니다.
선사시대에도 사람들은 불평등하게 살았다는 겁니다.
이는 선사시대의 세상이 지금보다 더 폭력적이었다는 연구결과하고도 연결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유적에서 전투로 인해 죽은 듯한 유골이 발견되고 있고
어떤 유적은 갑작스런 요인(주로 방화)로 인한 파괴를 보여주지요.
그동안 이런 부분을 영장류가 가진 원초적 폭력성에 기인한 것으로 보았지만
선사시대에도 먹고사니즘의 불평등은 골치아픈 문제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은 선사시대에도 경제력의 차이는 당연히 존재하였을 겁니다.
특히 먹을 것이 풍부한 지역,
또는 물이 쉽게 구해지는 곳은 쟁탈의 대상이 되었을 겁니다.
도구는 평등하지만 도구와 근육의 숫자는 평등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좋은 곳을 확보한 쪽은 더 강해졌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쪽은 계속 그렇게 살던가
다른 곳으로 이주하던가를 강요받았을 겁니다.
그런 정도의 불평등도 있었다는 것은 사실 당연한 것입니다.
인간이 아니라도 좋은 먹거리가 있는 장소의 쟁탈은 동물 세계에서도 흔합니다.
오히려 다른 것은 다 나누면서
단 하나의 '수컷'이 '암컷'을 독점하지 않는 것이 신기한 일이었죠.
(이는 강한 유전자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유전자를 공생시킬 수 있는 대단한 선택이라고 봅니다)
이 설명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라 전문가들이 넘겨버린 문제를 재환기 시키는 것이고
이것으로부터 논쟁이 싹튼다면 매우 유익한 것이 될 겁니다.
지혜로운 어르신들이 어린 소녀의 머리를 깨우쳐 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그런 점에서 이 기사는 짐순이에게도 흥미로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기사에 실린 주장에도 구멍이 있는 것이
아까 이야기한 차별의 시작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느냐는 겁니다.
더욱이 사회경제적 기반이 취약하다 못해
바늘끝에 서있고,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그 시대의 상황이
어떻게 현재까지 이어지는 항구적 차별과 연결될 수 있는가지요.
적어도 선사시대의 '흔한' 차별과
계급이 구분된 금속사용 시대가 어느 부분에서 이어지는지
그 설명이 있어야
진짜 누구나 수업시간에 이야기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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