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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강화도 문수산성은 신라때 처음 세워진 것 본문

한국고대사이야기/고대사 잡설

강화도 문수산성은 신라때 처음 세워진 것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4. 7. 5. 09:48


지난 6월 중순에 이 기사를 접할 적에 기사에는 

통일신라 때 세워진 강화도의 혈구진과 연결시키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수정된 것인지 오늘 링크를 거는 기사에는 그 내용이 사라져 있군요.

아니면 지금처럼 KTX에서 멍때리다 본 기사라

뇌내 망상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문화재청의 보도자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현장설명회가 한참 지난 오늘도 아무것도 올라와 있지 않으니

강화도나 문화재청, 그리고 해당 발굴기관과 연이 없는 짐순이로서는

"한국의 고고학" 다음호라도 기다려야할 판입니다.

(만약 그 계간지에도 소개되지 않으면!!!!!!!)


이 기사를 보자마자 떠올린 것이 

문성왕 6년(844)에 강화도에 혈구진을 설치한 것이 떠올랐는데

현재로서는 이 성이 통일신라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라

혈구진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추측밖에 할 수 없습니다.

자료가 더 구체적으로 나오고

또 문수산성이 가지는 전략, 전술상의 위치가 복합적으로 이해될 때

그에 대한 결론이 나오겠지요.

강화도를 수차례 다녀왔지만 정작 문수산성은 가보지 않았으니

짐순이도 무어라 단정을 내릴 수는 없겠습니다.

다만 가능성은 높다. 

이 정도로 마감지어야죠.

다만 기사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패강진이나 청해진만 다루는 상황에서

문수산성에 대한 조사가 혈구진에 대한 연구로 이어진다면

(설령 이것이 혈구진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하여도!)

기존의 통일신라의 관방체계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합니다.


원래는 기사가 나오자마자 글을 써볼 계획이었는데

기다리던 자료들이 올라오지 않아 

머리 속에서 지워지기 전에 서둘러 잡글로 대신합니다.



말꼬리 -------------------

1.

이 기사를 작성한 김태식 기자는 

고고학과 고대사 관련 전문기사를 뽑아내는 기자입니다.

특히 풍납토성과 관련한 논쟁에도 참여하였지요.

뭐, 모 대학 대학원 석사과정까지 다니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러저러한 일로

고고학자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인물입니다.

일단은 전문성을 갖춘 기자라는 점에서 점수를 주어야 하는데

(구석기시대쯤에 전공 공부를 아예 제끼고 기자준비만 한 

어느 고고학과 출신 기자덕에 고고학계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어서..)

불호쪽에서는 아는 놈이 이런다는 쪽입니다.

하지만 이분이 남긴 최고의 업적은...

문화재청 반세기, 어떻게 흘러왔나.

지난 대선시 이른바 십알단과 관련하여 성지가 된 기사의 본작성자지요.

아마 본인의 기사가 이렇게 본의 아니게 명소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김기자에 대해 불호에 가까운 지인들에게 이걸 알려주면

아마 배꼽이 사라지거나 허파 파열로 병원신세를 지겠지요.

2. 

그런데 정도전도 끝났는데 아침에 200대를 넘기고 있습니다.

대체 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설마 환'파'들의 정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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